디자인 없는 여성복
이모와 엄마가 나를 옷가게로 끌고가시었다… 나는 옷이 너무 너무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차림새와 체면을 중시하여 어디를 갈 때면 한복을 꼭 따로 챙겨 가셨다는 외할머니의 딸들의 눈에 나는 어디 가서 얻어먹지도 못할 '못 차려 입은 거지'일지도 모르겠다.
옷은 왜 이렇게 많고, 고르기도 어렵고, 지구 반대편에는 코끼리가 버려진 옷더미를 먹고 있다는데… 그리고 나는 정말정말 옷이 넘치게 많은데… 그러나 뭐가 마음에 드느냐고 저것이 어울리겠다고 밀어부치시는데 환경 이전에 뭘 사야 할지도 모르겠고, 왜 이렇게 비싼지조차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모와 엄마가 지정해준 자켓과 슬랙스를 입고 나왔는데 뭔가 이상하다. 일단 자켓 길이가 너무 짧아서 주머니가 존재할 수조차 없다. 아마 다리를 길게 보이게 만들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런데 바지에조차 주머니가 없다. 뒷주머니도 페이크다. 이러면 대체 뭘 어떻게 들고 다닐 수 있다는 말인가?
주머니가 왜 없냐고 물어보자 점원은 원래 그렇게 나왔다고 말한다. 아니, 바지도요? 그러면 이건 어떻느냐고 주머니가 있는 다른 자켓을 보여주었다. 팔을 집어 넣고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니 이게 웬걸. 주머니가 아랫배도 허리도 아닌 거의 8번 갈비뼈에 달려 있어서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면 손목을 거의 꺾어야 한다. 이걸 주머니라고 할 수 있나?
점원이 난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주머니 있냐고 물어보시는 분은 처음이에요."
아니, 옷에 주머니가 있어야 뭘 넣고 손이 자유로울 것 아닌가. 항상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하는 건 질색이다. 이모가 멋쟁이들은 불편함을 감수한다고 하지만 이게 무슨 오뜨꾸뛰르도 아니고, 남성복에는 다 주머니가 있잖아. 그것도 깊고 실용적인 주머니가. 아무도 주머니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당연한' 거니까.
안주머니 유무에 대한 기사가 2021년, 주머니 크기가 남성복의 절반이라는 기사가 2020년발이고 지금은 2024년인데 이제 아예 주머니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여성복의 '프리사이즈'는 M사이즈보다 작으며, 남성복의 7%가 '프리사이즈'임에 반해 여성복의 39%가 '프리사이즈'라는 것은 자명한 비밀인 상황이니, 주머니가 왜 없냐거나 주머니가 필요하다거나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해될 법했다.
디자인Design의 어원은 '윤곽을 잡다', '계획하다'의 뜻을 지닌 라틴어 데지그라네Designare에서 유래했다. 결과를 만들고 영향을 미치는 시발점이 바로 디자인인 것이다. 최근 각광받는 배리어프리 디자인BarrierFree Design,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가 표방하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란 사실 편협한 기준Standard을 확장함으로써 디자인 본연의 임무를 되찾는 것에 가깝다. 인간을 위한 계획이 인간을 소외시킨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인간의 삶에 기반이 되는 의/식/주 중 '의'에서부터 아직까지도 이 '자유'가 왜곡되어 있다는 것은 좌절을 넘어 2024년에, 21세기를 살아가면서, 정말, 지치는 일이다.
두 손을 자유롭게 만들어 달라. 우리에게 호주머니를 달라. 남男들과 같은 호주머니를 달라. 인간은 두 손을 쓰면서부터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었기에 두 손을 허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인간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이 되면
주먹 두 개 갑북 갑북
윤동주, <호주머니>
윤동주는 빈 호주머니를 통해 가난과 고난을 형상화하였다. 가진 것 없어 빈한한 호주머니지만 추운 겨울에는 두 주먹으로 가득 찬다. 동시에 추위에 떠는 손을 미력하나마 감싸 줄 수 있다.
그러나 호주머니가 없다면? 칼바람 같은 현실이 손을 할퀴는데도 넣을 호주머니가 없다면? 추위에 곱은 손이 서럽게 얼어가기만 하는데. 호주머니 없는 옆 사람과 손을 잡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