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꽃길만 걷자’는 말을 축복처럼 건넨다. 가만 생각해 보면 과연 꽃길만 걷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그 길만 걷는 게 정말 좋을까도 반문해 본다. 아무런 걱정 근심 없는 평화로운 상태, 이것이 행복이며 꽃길이라 말한다.
꽃길을 걷기 위한 대가는 각자 삶의 무게만큼 다양하게 주어진다. 그래서 어떤 이는 꽃길인지 광야길인지도 모른 채 그냥 걸어가기도 한다. 꽃길을 광야처럼, 광야를 꽃길처럼 여기는 이도 있다. 마치 수많은 감사의 조건들을 알아채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그렇다면 이 길이 꽃길임을 알아채는 것이 지혜일까.
여러 이유로 양봉업을 시작하면서 우린 꽃길을 기대했다. 하지만 지금 광야를 가고 있다. 힘겹게 농지를 구하고 농가등록까지 마쳤는데 곳곳에 적군들이 포진해 있다. 꿀벌들을 잘 키운다는 것은 어린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만큼 힘들다.
지금은 말벌과의 전쟁이다. 녀석들이 호시탐탐 꿀벌들을 낚아채 가는 모습을 보면 가슴 시리다. 며칠 전에는 세상 태어나 그렇게 큰 두꺼비는 처음 보았다. 벌통 앞에 떡하니 앉아 날아다니는 꿀벌을 날름날름 맛나게 먹고 있었다. 이미 두꺼비 배는 만삭이었다.
적군이 두꺼비뿐이면 다행이다. 개미, 진드기, 심지어 잠자리들까지. 꿀벌들은 오늘도 생존을 위한 투쟁 중이다.
꿀벌을 건강하게 잘 키워야 우리에게도 꽃길을 걷는 즐거움이 주어진다.
무엇보다 꿀벌의 습성을 알고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가 아픈지 잘 살펴야 한다. 아직은 초보라 꿀벌이 우릴 키우는지 우리가 꿀벌을 키우는지 모를 지경이다.
여왕벌 한 마리 탄생까지 40여 일의 여정이 있어야 한다. 그 여정을 잘 통과해야만 튼실한 산란의 여왕이 될 수 있다. 60여 개 왕대(여왕 애벌레집)를 구입해서 시도했지만 겨우 10마리 정도 성공했다. 참 갈 길이 멀다.
오늘은 1년 중 더위가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대서(大暑)이다. 장마의 끝을 알리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불볕더위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과일과 곡식을 여물게 하는 자연의 섭리기도 하다. 머잖아 선선한 가을이 한 아름 꽃을 들고 올 거라는 소식을 전해준다.
이제 보름 지나면 입추(立秋)이기 때문이다. 큰 더위 대서를 맞이하면서도 입가엔 살짝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가을이 다가오는 설렘 때문일까. 우리 꿀벌들에게도 조금만 참자 힘내보자고 토닥이고 싶다.
인생살이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다. 지금 내가 걷는 이 길이 꽃길이라 믿고 싶다. 예상치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햇살이 쨍하다가 어느 순간 비바람 휘몰아친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씨앗도 심고, 사랑도 심는다.
아무런 대가 없이 주어지는 꽃길은 진정한 꽃길이 아니다. 나와 같이 광야를 걸으며 꽃길이 되어줄 꿀벌들에게 큰소리 내어 한마디 해본다.
“꿀벌들아, 힘들지? 우리 한번 잘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