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돈이 없었다
그럼에도 부끄럽지 않은 것은,
가진 게 없는 게 당연한 나이이기 때문일까
당장 이루어낸 게 없어도,
수중에 돈 몇 백만원이 없어도
아무도 나를 손가락질하지 않고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
열아홉이었다
돈도 없으면서 꿈만 컸다. 돈도 없으면서 무려 유럽으로 떠나고 싶었고, 기왕 프랑스로 들어가는 거 파리도 여행해보고 싶었다.
*참고 : 내가 걸은 길은 프랑스길(Camino Francés)로, 프랑스 생장(Saint-Jean-Pied-de-Port)에서 출발해 국경을 넘어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코스이다.
그러나 내 통장은 텅장이었다. 여러 후기를 찾아보니 순례길에서는 넉넉하게 400만원(항공권 포함)이 필요하댔다. 고민에 빠졌다. 파리 물가 장난 아니라던데, 파리에서 4박 5일을 마음껏 여행하려면 최소 80만원은 더 필요할 터. 그래도 나 어떻게든 갈 거거든, 무조건 갈 거거든. 마음 먹었거든.
3월부터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변수가 있었다. 나는 새내기였다. 과잠, 학잠, 학생회비, 학과비, 모임, 약속 등을 고려하면 돈이 금방 증발되곤 했다. 분명 돈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보면 없었다. 당시 나는 편의점 알바생으로 주 10시간, 최저시급으로 근무를 하고 있던 때였다. 용돈과 편의점 알바비를 합하면 매달 고정 수입이 있었으나, 그만큼 고정 지출도, 유흥비도 미친듯이 빠져나가고 있던 때였다. 약속을 줄이는 방법으로 유흥비를 아끼려고 해도, 도저히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했다. 당장 오늘 하루, 한 달의 생계가 위태로운데 순례길은 무슨, 턱도 없을 것 같았다.
도움을 요청한다.
"엄마, 제가 지금 이렇게, 저렇게, 총 얼마를 모으려고 하는데 여름에 단기 알바 구인공고가 올라올지조차 확신은 못해서요. 항공권 비용만 지원해주시면 안 될까요? 돌아와서 갚을게요."
"그래, 너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까 항공권은 지원해주마."
7월 10일자 파리행 비행기표를 끊고 계획을 수정한다.
일단, 항공권 제외 400만원 모으기
운이 좋았다. 생활비 대출은 150만원 한도 내에서 대출이 가능한데, 내가 대출을 신청했던 2023학년도 1학기는 물가 상승으로 인해 2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했던 때였다. 장학재단 생활비 대출은 금리가 1.7%으로, 그 정도는 나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5월 XX일,
무려 200만원이라는 (적어도 나에게는) 거금이 내 통장으로 들어왔다. 나조차 나를 믿을 수 없었다. 한순간에 탕진해버릴 것만 같아, 그 돈을 수령하자마자 엄마 통장으로 보내버렸다.
또, 운이 좋았다. 종강을 앞둔 기말고사 기간이었고, 마침 새벽에 당근 알바 구인 게시판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세븐일레븐 단기알바 구합니다.'
2주 단기 편의점 알바였다. 아무래도 단기 알바다 보니 세븐일레븐 경험자를 구하고 계셨지만, 그래도 나는 CU 알바생이었다. 포스기만큼은 잘 다룰 자신이 있었다. 공고글을 보자마자 패기 있게 지원서를 보낸다.
2주 간 오전 7:30 출근, 오후 5시 퇴근 일정이었다. 이참에 순례길 걷기 연습을 해보겠다며 일주일 동안 매일 아침 5km을 걸어서 출근했다. 물론, 2주 차에는 체력적으로 지쳐서 버스를 탈 수 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 2주 간, 긴장감에 매일 새벽 5:30이면 눈이 떠졌다. 오픈 타임 알바라는 것에 큰 책임감과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늦잠을 자버리면, 편의점 매출 피크타임을 내가 망쳐버리는 것이기에.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근무하던 세븐일레븐 바로 앞에 여고가 하나 있었다. 세븐일레븐은 학교 앞 유일한 편의점이었고, 등교시간에 여고생들이 물밀듯이 밀려와 삼각김밥과 에너지 드링크를 사가던 곳이었다. 내가 늦잠을 자버리면 매출은 물론, 배고픈 여고생들의 아침을 망치게 되는 것이었다. 매일같이 만나는 내 또래들을 보며 활기를 찾았다. 2주 본 게 다였으면서, 몇몇은 얼굴도 외워버려 혼자 내적 친밀감을 느끼곤 했다. 이렇듯 오전 시간대는 가장 바쁜 시간대였을지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었던 시간대였다.
'아!! 삼각김밥 팔아야 돼!! 늦으면 큰일 나!'
웃기지만, 실제로 매일같이 되뇌던 한 마디였다. 주말 CU 알바도 병행하며, 2주 간 세븐일레븐에서만 115시간 근무로 108만원을 벌었다
떠났다
사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체력적으로 힘든 건 정신력으로 버티는 방법 뿐이었다. 삼각김밥을 생각하면 강한 책임감에 매일같이 침대를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장시간 근무라는 게 말이 쉽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일도 오늘만큼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에 잠도 잘 못 자 스트레스성 트러블로 얼굴이 뒤집히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 몫이었다. 그래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 정신력으로 버텼을 뿐이다.
7월 10일, 400만원 가량을 들고 파리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