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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릿씨 Feb 21. 2024

날이 좋으면 누워 보세요.

런던에 가고 싶은 이유

날씨 요정이에요?


추위를 많이 타서 따뜻한 날씨를 좋아한다. 심한 곱슬머리라서 날이 흐리면 초라해 보이는 탓에 외출을 꺼린다. 내가 선택할 있는 여행을 가게 되면 최대한 날씨가 좋고 따뜻한 곳으로, 최대한 비가 오지 않는 날씨를 검색해서 신중하게 선택한다. 

 

영국은 나의 여행 리스트에 선발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유럽 출장이 잦은 일을 하게 되면서 런던을 종종 방문하게 되었다. 지난해 나의 런던 방문을 돌아보면 갈 때마다 날씨가 참 좋았다. 런던에 갈 때마다 만나는 친한 동생은 나를 만날 때마다 항상 날씨가 좋다며 "날씨 요정"이냐며 질문형 별명을 붙여 주었다.  


런던은 '셜록'의 배경으로 나오는 흐리고 축축한 날씨가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그래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궂은 날씨를 별로 경험하지 못했다. 흐리지만 비가 오지 않거나, 비가 내리더라도 내가 체류하는 동안 맑은 날이 꼭 하루는 있었던 것 같다.  


런던에서 날이 맑으면 무조건 공원으로 간다. 런던은 공원이 많아 조금만 걷다 보면 쉽게 공원을 찾을 수 있다.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과거 귀족들의 정원이었거나, 사냥터였다는 넓고 멋진 공원들이 많다.  


날씨가 좋은 날 공원에 가면 마음이 정말 차분해지고 여유로워진다. 초록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런가? 이미 여유로운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가? 나는 그저 내 마음이 편할 수 있는(사람들과의 적당한 거리두기) 곳을 찾아 자리를 잡으면 된다. 처음엔 많이 어색하다. 그래도 태연함으로 가장하고 하늘을 향해 누워 본다. 그때부터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찾아온다. 잠시 눈을 감는다. 1분에 몇 번씩이나 감았다 뜨는 눈인데 맘을 먹고 눈을 감으려니 긴장이 된다. 눈을 감고 잠시 있는다. 살랑이며 다가오는 바람과 따뜻하게 톡톡이는 햇살의 애교를 둥그런 미소로 받아준다. 힐링의 시간이다.


한국에 돌아와 현실을 살다 보면 금세 여기를 벗어서 빨리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진다.

그 어디론가는 어디일까?

나에게 가장 그리운 시간이 있는 곳.

현실에서는 하기 어려운 것을 할 수 있는 곳.


나에게는 어느 지역, 어느 장소가 아니다. 나에게는 '여유의 시간'이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초록으로 둘러싸인 공공의 장소에서 너도 나도 자유롭게 누워 하늘 보며 눈 감을 수 있는 일상의 장소.

바람과 햇살을 누구의 눈길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줄 수 있는 곳.

돗자리를 챙기고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아도, 일부러 시간을 낼 필요 없이 햇살이 좋은 날마다 하늘을 보며 누워있고 싶다.

런던에 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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