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릿씨 Feb 21. 2024

중고차를 한 대 사야겠다.

카이로에서 운전에 자신감을 얻었다.

카이로의 교통은 카오스다. 

카이로에 없는 것 중에서 특히 교통과 관련된 것이라면 차선, 신호등, 횡당보도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신호등이 생긴 곳이 좀 있기도 한데, 도로에 차가 없어도 신호등 빨간 불이 꺼질 때를 기다렸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한국사람의 입장으로 보면 혼돈 그 잡채이다. 

도로에는 차만 다닌다는 편견을 버리자. 관광객을 태우고 달려가는 말이 끄는 마차와 과일, 채소 또는 쓰레기 등을 실은 당나귀도 함께 달리는 이색적이고 흥미 뿜뿜인 곳이다. 

좀 더 시골로 가면 거친 포장과 비포장 사이 그 어디인듯한 도로를 날아가는 듯 달리는 버스가 양 떼, 소떼를 가볍게 추월하며 못 말리는 짱구의 방귀처럼 점점 멀어지는 동물들을 향해 검뿌연 배기가스를 날려주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무한디신에 있던 집에서 사무실이 있는 도끼까지 약 2.2km, 도보로 30분이 조금 넘는 거리였다.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걸어갈만하기도 하고, 택시도 많이 다니는 중심가이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다음의 사실에 대해 너무 안일했다.

* 도보 이용 시

- 인도가 연결되지 않고 높낮이가 달라 무릎이 아프다. 

- 차도를 걷다 보면 '나 지나가~'라며 호의?!로 알려주는 클락션에 수시로 깜짝깜짝 놀라 심장에 큰 무리가 간다. 

- 매연과 모래먼지로 콧구멍은 시커메지고, 입이 텁텁하고 목이 아프다. 

-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나라로 아침 일찍 해가 뜨면 30도를 쉽게 넘기며 가리지 못한 곳에는 기미와 잡티를, 가린 곳에는 땀으로 축축해진 찝찝함을 안겨준다.


* 택시 이용 시 

- 평일에는 항상 극심한 정체로 걷는 시간보다 더 넉넉하게 출발해야 해서 아침잠을 줄여야 한다. 

- 일반 택시를 타면 의사소통의 한계를 초월한 기사님들의 무차별 질문 세례를 인내해야 한다. 

- 우버를 탈 때는, 멈추고 오지 않거나 기다림의 한계에 닿은 폭발 직전에 취소를 당해 기어이 '분노조절장애'라는 질병에 걸린다. 



'미단'이라고 불리는 회전교차로 앞에서 여전히 오지 않는 택시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택시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쪽을 향해 목을 쭉 빼고 있었다. 내가 서 있던 코너에는 나름 맛집으로 유명한 레바논 식당이 오픈 전으로 닫혀 있었다. 식당 옆에 주차된 자동차 안에는 사람들이 몇 명 있는 것 같았다. 마땅히 거리에서 쉴 곳을 찾기 힘든 여기서는 차에 모여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흔하다. 

아침이라 달리는 차가 거의 없다. 택시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도로 위에는 길을 모르는지 천천히 달리는 자동차 한 대가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퍽", "쿵", "쿠당탕", "덜덜덜" 

한적한 도로 위를 느리게 다가오던 차가 코너에 주차되어 있던 자동차 앞쪽을 치며 지나갔다. 자동차 앞쪽 범퍼가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사고를 낸 차주는 덜덜거리며 약 3미터 정도를 더 가서 멈춰 섰다.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나왔다. 가족인 것 같았다. 

차가 많은 땐 자동차 3대 정도는 한 번에 지나가는 도로이다. 길도 텅 비었는데 뭔가 비현실적인 상황이다. 

떨어진 범퍼를 다시 붙여 보기도 하며 뭔가 심각한 의견이 오고 가는 것 같다. 사고 낸 차의 차주는 아직 본인의 차 안에서 내리지 않았다. 창문으로 빼꼼히 내다볼 뿐이다. 나는 오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며 지루한 시간에 흥미롭게 양쪽차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사고를 낸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 때처럼 천천히 멀어져 간다. 범퍼 떨어진 차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끼리만 심각하다. 


워낙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많은 곳이다. 나도 타고 가던 택시가 앞 차를 치거나, 뒤차에 받히거나 한 적이 몇 번씩 있다. 골목을 걷는데 지나가던 차 사이드미러에 치여 본 적도 있다. 길에서는 운전자들이 싸우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말린다. 길을 걷다가 차에 살짝 스치는 정도로는 사과는커녕 운전자가 누군지도 확인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경찰이나 보험사에서 처리를 하러 오는 건 보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서 있던 차의 박고 범퍼를 망가뜨리고 유유히 사라지고? 신경도 안 쓴다고??


나는 운전에 자신감을 얻었다. 

면허를 따고 갱신을 한 번 했지만 면허딸 때 학원을 다닌 이후로 한 번도 운전대를 잡아보지 않았다. 

나는 급격하게 오지 않는 택시 이용의 불편한 점들과 도보 이용 시의 불편사항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졌다. 

중고차를 한 대 사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날이 좋으면 누워 보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