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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릿씨 Feb 21. 2024

캐나다 사는 친구 만나러 쿠바에 다녀왔습니다.

네. 쿠바요.


[눈을 뜨면 하늘하늘 흔들리는 야자나무 잎 사이로 눈부신 햇살과 파란 하늘이 보이고 눈을 감으면 썬베드에 누워있는 피부에 살랑이는 바람이 간지러워요. 이런 곳이 천국일까요.


처음 며칠은 인터넷이 안돼 뭔가 잘못될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어요.

순간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기에, 그나마 카메라 역할은 하고 있지만요. 여기서 휴대폰은 그저 카메라일 뿐 이제 더 이상 시계도, 알람도 아니에요. 해변에 있던 사람들이 거의 사라졌다면 식사 시간이에요. 파랗던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들면 무시무시한 모기떼가 몰려오기 때문에 빨리 소금기를 씻어내러 가야 하는 시간이고요. '이제 그만 자고 좀 나가라'는 강렬한 눈빛 메시지를 발사하며 "Oh, I'm sorry ma'am"를 외치는 메이드가 다녀가면 알람이나 모닝콜 없이 일어날 수 있어요.]



"나 캐나다 놀러 갈게."

캐나다 토론토 근교에 사는 친구와 십여 년 만에 연락하다가 혼자라도 그곳에 다시 가기로 결정했다.

학생 때 함께 유학했던 친구들과 다시 같이 가보자는 말이 나왔지만 여러 사정으로 친구들은 하나 둘 포기했다. 나는 기왕에 마음먹었으니 '이때다'라는 생각으로 10월 초에 유럽 출장 뒤로 캐나다 일정을 붙이기로 했다.

연락을 주고 받은 친구는 예전에 함께 유학을 한 후에 그곳에서 만난 캐나다 사람과 결혼해 살고 있다.

우리의 대화는 주로 인플레이션대한 것이었다. 친구는 코로나 이후에 엄청나게 치솟은 캐나다 물가와 프랜차이즈에서도 팁을 강요하는 변화된 분위기에 분노를 쏟아냈다.

나도 거스름돈을 돌려받을 정당한 권리와, 나의 선택이어야 할 의사결정권을 '팁이죠?'라며 무참히 침탈한 뉴욕 어느 한식당에서의 불쾌한 경험을 끄집어내었다. 최근에 읽은 미국에서 30% 넘게 팁을 내야 한다는 기사 내용을 떠올리며 '물가 미친 거 아니야?!'라는 친구의 말에 동조했다.


      

"우리 거의 같이 있잖아. 할거면 10달러만 해."

 올인클루시브 리조트에서 현금이 필요한 경우는 거의 팁이 유일하다.

바와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다. 최근 최악의 경제상황으로 돈을 벌기 위해 24시간 교대로 근무를 한다고 한다. 대부분 카드결제가 가능한, 아니, 오히려 '카드 only'를 선호하기도 하는 국가들에서 바로 넘어가다 보니 소액권 준비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친구는 10년 넘게 남미국가로 휴가를 다녀본 실력으로 최저가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최저가 타임은 보통 출발 1~2주 전인데, 하와이에서 큰 불이 난 여파로 하와이 대신 멕시코로 휴가족이 몰려 금액이 떨어지질 않았다. 심지어 친구가 찜해놓았던 리조트 몇개가 연달아 매진되어 버리자 우리는 칸쿤을 포기해야 했다. 경제위기로 물자가 많이 부족해 퀄리티가 많이 떨어진다는 그래서 친구는 선호하지 않는다는 쿠바의 리조트들도 칸쿤을 점령하지 못한 휴가족에 의해 평소보다 비한 금액으로 예약해야 했다. 친구는 미처 하와이 화재가 휴가지에 끼칠 영향을 예측하지 못한 것에 자책하며 예상보다 비싸게 왔다며 나의 팁까지 모두 본인이 해결하고자 했다.


친구와 함께 있지 않을 때도 팁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나는 약간의 돈을 환전하기로 했다. 남은 일정을 고려해서 가지고 있던 가장 작은 단위의 지폐인 20불을 환전했다.

520 쿠반 페소. 20에 520?! 숫자 차이만으로도 너무나 만족스러운 환전이다.

공항-리조트 가이드부터 리셉션 직원까지 쿠반페소는 가치가 없으니 직원들에게 팁을 주고 싶다면 달러나 유로를 주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빨간 눈의 직원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친구는 매해 결혼기념일 등 시간이 날 때마다 남미에서 휴가를 보낸다고 했다. 내가 캐나다에 가기로 한 10월은 결혼기념일이 있어 칸쿤 여행을 계획 중인데 신혼도 아니고 매해 다니는 여행이며, 크리스마스 즈음에도 남미 휴가계획이 있으니 결혼기념일을 신경 쓰지 말고 함께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남편이 함께 있는 게 불편하면 남편 빼고 나와 둘만 가자고, 남편과 먼저 다녀온 후에 나와 둘이 또 가도 좋다고 했다. 아니면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내줄 남편의 친구를 구해볼 테니 같이 가서 남자끼리 여자끼리 따로 놀자고도 했다.


친구에게 들은 캐나다 물가를 고려해 토론토 10일 여행 경비를 따져보았다. 가성비가 여행의 핵심인 내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1일 100달러 이하로는 어렵겠다. 아니 최소 하루에 150달러는 잡아야 숙박과 식사, 간식, 음료, 교통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년간의 경험을 가진 실력자 친구가 장담하건대 칸쿤은 10일, 쿠바는 5일 토론토 여행 경비만으로 꽤 괜찮은 5성급 올인클루시브 패키지여행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모두 포함하는 패키지니 호텔에서 주는 3식 제공 및 무제한 술과 음료, 왕복 항공, 현지 교통비가 포함이다. 가성비 최고다.  

쿠바

헤밍웨이가 바라 본 그 바다

캐나다 사는 친구 만나러 쿠바에 가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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