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논에 물 대기

둘의 어릴 적을 뭉쳐서-호연

by 호연

어떤 우연함으로 인해 애써 제 힘 발휘해, 나를 기록해 봅니다. 내 글은 나의 기록 그리고, 나의 유언입니다. 마지막을 경건히 받아들이는 일. 침묵과 고요를 깨고 용기 내어 소리 내는 일.


어느 귀인이 불쑥 내게 찾아와,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 이야기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어떤 흉터를 보고 하는 이야기 같진 않았습니다.


나는 곧, 내 마음을 헤아린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누군가에게는 흔한 한 마디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나는 진정 마음을 어루만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도움을 청하지 않았던 나는, 누군가 내게 베푸는 선행에 대해 막연함 의심과 경계가 잇따르기 마련이었습니다. 인간은 믿을 존재가 되지 못한다 생각했으니까요.


믿음은 ‘사랑’이라는 초연함을 벗어난 감정으로도 회복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니까요.

무엇이든 믿음이 우선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바라본다면 인간의 존재는 모순이자 오답이지 않을까 ー 그러나 생각을 하고 지내왔으니까요.


내게 손을 건네준 귀인은 외람되지만 몇 가지 이야기해주고 싶다며 운을 떼었습니다. 감정에 솔직해지자는 마음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감정은 지나치게 새것이었고, 그에게 든 생각은 그저 ’ 감사‘였습니다.


엄마는 내게,

꼭 고슴도치를 닮았다 이야기했습니다.

위협을 느낄 때 뾰족한 가시를 세우곤 하지만, 귀엽다는 단순한 이유였어요.


마음을 비우고 다시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믿을 존재가 되지 못한다】라는 일방적 일반화를 수긍하고, 인간은 저마다 각자에게 믿음의 벨트가 존재한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그 귀인에게, 소중한 그분께

가시를 세우지 않고 활짝 웃을 수 있었지 않았나.

그렇게 시나브로 마음을 열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현재’에 살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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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꿈같은 시간을 잠시 경험했습니다.

저에게 꿈을 갖게 할 만큼 희망적이었어요.


사실 그날, 엄마 아빠의 과거 이야기(自害의 유경험)를 듣고 스스로를 수없이 비난하고, 포장했습니다.


엄마도 그랬으니까,

아빠도 그런 적이 있으니까,

날 이해해줄 거야.

내 상처는 대물림이자, 운명이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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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저에게는 아마, 부모의 상처를 어루만지기보다 ー자신의 상처에 대한 합리화가 우선이었을 거예요.


엄마, 그때 왜 그랬어?

아빠, 그때 아프진 않았어?

엄마 아빠는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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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묻지 않았던 것이겠죠 ー 그래서 질문보다, 나를 감싸 안기 바빴겠죠. 흘러가는 시간과 세월에 초조했으니까요.


엄마의 과거 한 줌,

아빠의 과거 한 줌,

그리고 나의 과거(自害) 한 줌

모두 한 곳에 모아


제가 대신 묻어둘게요.

우리 모두의 힘으로도 꺼낼 수 없게 아주아주 깊은 곳에 묻어서, 다시는 꺼내지 않기로 해요.


잘했어. 괜찮아, 잘하고 있어.

잘해왔어. 죽지 않고 살아남아줘서 고마워. 생각을 바꾸고 돌아와 줘서 고마워. 내 엄마 아빠여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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