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름숲 Nov 15. 2023

아줌마? 와 비혼 아줌마의 중년.

제1화. 두 아저씨 이야기.

톡으로 보내준 사진을 보며 '와~~!! 암벽을 탄다고?? 대단하다!!! 아직 젊나 보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비혼 아줌마의 30년 지기 남자사람 친구 아저씨다.


아저씨 친구는 20대에 같은 교회에서 섬겼다. 비혼 아줌마가 청년부 부회장일 때 임원이었다. 회장이었던 오빠 소식에 혹시?! 하는 마음이 들어 만났다. '알리지 말라네' 소리가 돌아온다.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 헤아리다 보니, 슬퍼졌다.


슬픔에 옛 시절 웃으며 함께 다녔던 떡볶이 집을 갔다. 있을까?....... 어?? 있다!!!!! 그 시절의 주인 어르신들은 다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옛 시절 경험한 정서적 관계를 전이(transference)하는 장소가 되어 주므로 기쁨을 주었다. 이러한 전이 과정은 어린아이가 엄마와의 정서적 관계를 덮고 자는 담요에서 찾으며 심리적 안정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장난스레 '혼자 오면 스테이크다' 했던 회장 오빠다. 교회 동생들이 따라다니던 비혼 아줌마에게 떡볶이를 사주며 그랬다. 월급날에는 햄버거도 사주면서 말이다. '아휴, 매주 교회에서 젊음을 불사르다니?!!!' 투덜대면 '네 젊음, 그나마 교회니 받아주지?' 놀렸다. 비혼 아줌마의 서툴던 반주에도 신이 나는지, 찬양도 열심히 부르며, 말이다. 


20대 청춘이었기에, 관심 주는 대상이 보이면, 괜스레 따라도 다녔다. '아니 왜요?!!!' 하면,  '저 회장인데요' 엉뚱한 답을 하며, 그랬다. 그 기억이 나는지 '지휘자는?' 하고, 아저씨 친구도 묻는다. '둘이 그렇게 따라다녀 놓고는?!!' 눈을 흘기니, 껄껄 거린다. 


집에 갈 차를 기다려주고, 차가 생기면 태워다 주던 두 아저씨다. 비혼 아줌마를 태운 차가 떠나기 전에는 먼저 가지도 않았다. 손을 흔들면 그제야 어색하게 손을 저으며 갔다. 그랬던 한 사람, 회장 오빠를....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너라도, 죽기 전에 봐서 다행이다' 하니, 아저씨 친구가 씁쓸히 웃는다. '아줌마는?' 근처에 사는 아줌마 친구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낸다 하니, 승진도 하고, 사장도 된 아저씨 친구들 소식을 제일처럼 전한다. 다 좋으면 좋으련만...., 중년의 힘듦에 매달려 있는 아저씨 친구들 소식도 있어, 한동안 또 머문다. 


어쩌랴..., 또 잘 헤쳐가겠지!!! 하는 기대로 우리는 현재도 마주한다. '사진 보자' 하니, 멋쩍게 웃으며 보여준다. 오~~ 아저씨, 아내와 찍은 사진이 다정하다. '잘 살고 있나 보다', 하니 흐뭇해한다. 교회 장로님도 되셨단다. '성경에 금도끼, 은도끼 얘기도 있어!!?' 하던 친구였다. 장로님 될 만 혀다고 느끼며 축하해 주었다.


현재를 마주했음에도 회장 오빠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나, 보다. 꿈을 꾸었다. 프로이트(Sigmund Freud)에 의하면 꿈은 무의식의 상징이다. 현실에서 바라지 못하던 소망이 출현한단다.  꿈의 이면에 나타난 그 소망이 무엇인지, 잠시 들여다보았다. 


운동장에 아이들이 놀며 웃는다. 햇빛이 가려진 벤치에 머문 회장 오빠가 보인다. 체크 남방에 편안한 바지 차림이다. 좀 말랐지만, 운동장의 아이들을 가로질러 중앙까지 걸어온다. 아내와 동생을 마주한 것이 보인다. 환한 빛이 따사롭다.   

   

어? 좋은 일이 생기려나, 빛이 밝은데......, 하며, 건강하길 바라는 소망을 부여잡는다. 그러면서도 꿈은 수용할 수 없는 욕구(id)를 반영함도 기억한다. 현실에 맞게 이끄는 자아(ego)의 기능은 떠나려나..., 하는 마음도 슬며시 안겨준다. 비혼 아줌마는 놀며 웃던 회장 오빠를 다시 보길 소망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