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글래머
10년전 대학교 재학 시절 페이스북에 푹 빠져 살았었다. 일거수일투족을 업로드 했으며, 좋아요와 댓글에 집착했었다. 사진을 올리고 반응이 없으면 전전긍긍 했으며, 정말로 반응이 없으면 몰래 삭제하기도 했다. 눈 뜨자마자 새로 온 피드가 뭔지 확인하고 좋아요! 누르는 것이 하루를 시작하는 일과였다. 그렇게 페이스북에 중독되었던 내가 하루아침에 끊을 수 있었던 것은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의 말 덕분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잘 지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나한테 왜 연락안했는지, 나 어떻게 사는지 안 궁금했는지 조금은 섭섭한 마음에 질문했더니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 너 어떻게 사는지 안궁금했냐고? 너 페북에다가 맨날 글 올리고, 사진 올리잖아ㅋㅋ 너 어떻게 사는지 모르는 사람 없을껄? 너 안만나도 다 알아~ 흥미없어.
흥미가 없다라. 그렇다. 매일 올리는 글과 사진 때문에 나를 모르는 사람, 나와 연락한지 오래된 사람들이 나에 대해 궁금해 할 점이 없어진 것이다. 매력적인 사람이란 자기가 가진 것을 다 드러내서 '나 좀 한번 봐줘!' 라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알아가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 이후로 카카오톡을 제외한 모든 SNS를 10년간 끊었다.
그러다 정말 우연한 계기로 인스타를 시작하게 되었다. 삶이 정체되어 있고, 게을러졌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소소하게 잡은 목표들을 달성하면 인스타에 올리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올렸고, 테니스 대회에 입상한 것을 올리고, 다이어트 한 결과들을 올렸다. 인스타에 올려야 한다는 루틴 덕분에 내가 매일 목표한 것들을 꾸준히 성실히 지켜나갈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인스타에는 어떤 사진과 글들이 올라오는지 궁금해졌다. 돋보기를 눌렀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 든 생각은 연예인들만 사용하는 앱인줄 알았다. 돋보기에 나온 여성분들은 모두 피부가 희고, 마르고, 컬러풀한 옷을 입고 감각적인 인테리어의 공간에서 모델처럼 사진을 찍고 있고, 남자분들 역시 배우 뺨칠 얼굴과 몸매로 인스타를 채워넣고 있었다.
- 와. 이 분은 처음 보는 사람인데 팔로워가 30만이나 되네? 이 사람은 진심 연예인 아닌가? 너무 예쁜데?
왜 전세계가 인스타에 빠졌는지 느낄 수 있었다. 눈길을 끄는 사람들이 정말 끝없이 인스타를 도배하고 있었다. 한편으론 나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보기만 해도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재밌어서 10년전 페이스북에 빠졌던 것처럼 인스타도 살짝 중독이 되어 버렸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뭐가 기억이 나질 않았냐면 인스타를 한창 넘기다가 문득 방금 봤던 그 아름다운 분의 아이디가 뭐였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그 남자분이 어떤 머리스타일이었는지 헷갈렸다. 보면 볼수록 다들 비슷한 머리, 얼굴, 옷, 필터, 장소, 음식을 사진에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만 팔로워가 하는 것을 50만 팔로워가 따라하고 있었고 50만 팔로워가 하는 것을 30만이, 30만이 하는 것을 10만이 따라하고 있었다. 인스타 세계에서 먼저 시작한 사람은 모든 것을 앞장서서 선도하게 되고 남들을 따라오게 만들 능력을 가진다. 뒤늦게 따라가는 사람들은 옆 사람보다 먼저 나가기 위해 안달나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갑자기 100년전 얘기를 왜 꺼내냐고 하겠지만 이해를 위해 잠깐만 얘기하자면,
일본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도련님'이라는 작품을 선보인다.
작품 주인공의 별명은 '도련님'이다. 정직하고 솔직하며 뒤를 보지 않는 성격이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덜 사회화된 어린 아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회 생활을 하려면 적당히 거짓말도 하고 적당히 뒷담화도 해야한다. 얌체 같아 보이는 행동도 성공적으로 일을 성사시킨다면 상사에게 영리하다는 칭찬을 듣는다.
우리 도련님은 인간들의 그러한 이중적인 면모에 치를 떨었고 직장 동료를 마구 때려준다음 일을 그만둔다.
나쓰메 소세키가 이 책을 냈을 때 일본사회는 도덕, 예의, 인정, 공동체적 삶 등 동양적 가치관을 자본주의, 효율, 능률, 개인주의라는 서양적 가치관이 대체해 나가던 시기였다.
사회 생활을 하려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려면 남들이 살아가는 것에 어느정도 동조해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남들과 비슷한 것을 먹고, 비슷하게 입고, 비슷하게 생각하며 살아가야한다. 개인주의가 대세로 떠오른다면 나도 어느정도 개인주의적으로 살아야한다.
그런데 도련님은 개인주의적 가치가 떠오르던 시기에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을 응징함으로써 남들을 따라하며 살지말고 자기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100년이 지난 오늘 인스타를 보며 도련님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졌다.
'머리스타일은 이렇게 해야해, 표정은 이렇게 지으면 시크하고 필터는 이거를 써야해. 요즘 장소는 여기가 힙하고 이 음식 올리고 여기 식당 태그하면 사람들 많이 들어와. 이 문구랑 동작이 요즘 제일 핫하니까 무조건 넣어야해.'
그렇게 해서 남는건 결국 다른 사람을 따라한 나이지 진짜 나는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
따라해서 받은 좋아요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면, '잘 따라해서 예뻐요, 멋있어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물론 지금 시대는 나쓰메 소세키의 100년전보다 다른 사람을 의식 안하는 것이 훨씬 어려워진 사회이다. 유튜브, TV, 틱톡, 인스타 등 내 손 안의 플랫폼에서 초단위로 수많은 영상과 콘텐츠가 뿜어져나와 시선을 빼앗아가고 정신을 혼란하게 만든다. 어떤게 예쁜 것인지, 어떤게 멋있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잘 나가는 것인지 숨쉴 틈없이 나에게 제시한다.
그런데 한 번뿐인 인생이라면, 한 번뿐인 인생 정말 잘 살고 싶다면, 남들 따라만 하다 늙는 것에 목표를 갖지말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저 사람 따라하는게 내가 태어난 이유나 목적이라면 별로 안 멋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