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일. 컴퓨터의 시계가 2월 19일 23시 59분에서 20일 0시 00분으로 바뀌자 선배가 말했다.
”자 이제부터 인턴, 전공의 없다. 노티는 000 교수님한테 해야 해 “. 전공의 파업이 시작되었다. 퇴근길에 엘리베이터 앞에 익숙한 얼굴의 전공의들이 모여 웅성대고 있었다. 동기와 그들을 지나치며 괜한 반발심에 “다 같이 쉬니 좋겠네. 엠티라도 가려나.”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전공의와 인턴들이 떠난 병동은 의외로 평소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오히려 비상식적인 일부 전공의들과 일하지 않아도 돼서 기쁘기도 했다. 일분일초가 바빠 정신없고 간호사들에게 화를 투사하는 전공의들보단 교수들이 더 지성인이었고, 말이 잘 통했다. 몇몇 간호사들은 교수님들이랑 일하니깐 오히려 더 좋다는 평도 했다. 그렇게, 걱정했던 것보단 수월한 일상이 흐르고 있었다.
파업이 시작되고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점점 재원 환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항상 만석이던 응급실은 텅텅 비어있고, 코로나 병동인 우리 병동은 병상 10개가 있지만 환자가 1명인 채로 일주일이 넘게 지나갔다. 특히 코로나 환자 감소로 새로운 환자가 배정되지도 않았다. 환자는 1명인데 간호사는 6명인 상황. 할 일도 없고, 윗사람들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교수님이 우리 병동에 오더니 말했다.
“여기 병동, 없어질 수도 있겠는데요. 교수님들이 여기까지 와서 환자 보기 힘들고, 여기 격리 환자 보는 와중에 다른 병동 환자들을 신경 쓸 수가 없다고 하시네요.”
속으로, 그 정도 이유로 병동을 닫는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싶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도 그날, 교수진들과 간호부의 회의가 열렸다. 회의가 끝난 오후 6시, 동기들 단톡방에 카톡이 쏟아졌다. 집에서 환승연애를 보던 나는 카톡을 확인하고 뒤통수가 아렸다.
“우리 병동 다음 주 폐쇄. 모두 원부서로 복귀하래.”
병동 폐쇄가 결정되었다. 우리 병원에선 파업 이후 최초였다. 몇 년간 코로나가 점점 잠잠해지며 코로나 환자를 주로 받는 우리 병동이 없어진다는 소문은 자주 있어왔다. 그럴 때마다 불안에 떨었지만 병동이 없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교수들 몇 마디에 병동이 없어지다니. 코로나 시기에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이곳이 이렇게 초라한 마무리를 맞는다니 슬펐다. 간호 본부장은 회의에서 이런 식으로 병동을 없애고 간호 인력을 이리가라 저리 가라 소모품 대하듯이 하면 간호사들이 얼마나 소모되고 상처받는지 아냐며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할 말이 없어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녀가 소리를 질러봤자, 이미 병동은 없어지고 간호사들은 자리를 옮길 상황에 처한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병동이 폐쇄되며 이 병동에서 쌓아온 승진 기회들과, 병동에서 노력하고 이루어온 것들이 물거품이 되는 간호사들이 많다. 나 또한 그렇다. 간호사 업무와는 별개로 부서 내에서 또 다른 직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병동이 없어지며 내 자리도 없어졌다. 나름의 열정을 가지고 하던 일을 빼앗기니 허무했다.
병동 폐쇄되기로 결정된 날을 지나 그다음 날까지도 부서장은 이렇다 할 공지를 하지 않았다. 이런 중대 사항을 건너 건너 알게 된 것도 기가 찼다. 내가 쉬었던 이틀 동안 출근했던 동료들에게 병동의 상황을 듣자 하니 부서장과 팀장이 간호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한 교수는 병동에 찾아와 미안하다며 현재 상황이 어떻게 되는 거냐 물었고 간호사들이 모두 부서이동을 해야 하는 상황임을 듣자 다시금 미안하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도망치듯 사라졌다고 한다.
폐쇄 하루 전, 이브닝 근무가 끝나갈 오후 9시 무렵. 나는 우리 병동 최후의 환자 1인을 간호하고 있었다. 그는 87세 할아버지였고 이따금 섬망이 오는 환자였다. 밤이 되니 조금씩 헛소리를 하시며 섬망이 시작되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몸에 붙어있는 모니터링 장치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놀란 나는 말리며 다시 모니터링 장치를 부착하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갑자기 나를 때리려 하며 말했다.
“이게 미쳤나...? 하지 마, 저리 가!”
“이거 하셔야 해요. 몸속에 산소 얼마나 있는지 봐야 해요.”
“하지 말라고. 안 한다고!!!!”
그는 고유량 산소를 하고 있는 환자여서 모니터링이 꼭 필요했다. 나는 그가 모니터링 장치를 떼내지 못하게 억제대를 하려 했으나 87세 할아버지의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셌다. 온몸의 무게를 실어서 그를 제압하려 했지만 난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아 바람 빠진 풍선인형처럼 허우적거렸다.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를 듣고 달려온 남자 간호사와 같이 할아버지를 제압했지만, 온 힘을 다해 발차기를 하는 그를 말리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둘이서 할아버지 다리 하나를 잡고 제압하다가 발로 명치를 맞았다. 꽤 아팠다. 그는 계속 소리를 질렀다.
“도둑이야~~~ 도둑이야~~~ 도덕이야!!!”
가까스로 사지를 억제해 놓고 산소마스크를 제대로 씌우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 퉤 퉷 퉤 “
그가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아니, 너무하잖아요 할아버지. 전에는 나한테 손주 소개해 준다더니 이래도 돼요?”
진정제를 가까스로 투약하고 조금 힘이 빠진 할아버지를 뒷턴 간호사에게 인계 주고 나왔다. 마스크와 페이스 실드가 가리지 못한 목덜미에 튄 침을 알코올솜으로 박박 닦았다. 명치가 아팠다. 마지막 날을 이렇게 마무리한다니. 내 처지가 여기저기서 당하고만 다니는 간호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간 일어난 일들로, 간호사는 결국 쓰고 버리는 소모품 취급을 받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의견은 무시하고 여기에 필요하면 여기. 저기에 필요하면 다시 저기에 가라는 병원조직. 의사 인력이 부족하니 간호사 업무 범위를 넓혀 의사 일을 시키자고 하고, 간호법 제정은 그렇게 반대하더니 이제 와서 간호사가 필요하니 써먹으려 드는 정부. 그리고 간호사를 지키지 못하는 간호본부. 이 모든 게 환멸 나서 구직사이트를 뒤적거리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