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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Choi Nov 23. 2023

피아노 앞의 슈베르트

Danke! - 슈베르트, 음악에 부쳐

음악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어째서 음악을 좋아하는 것일까? 나의 경우는 음악이란 당연한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었고, 어느 순간부터 악기를 연주하게 되었다. 만약 나의 목소리가 미성이었다면 성악을 전공했을지 모른다. 지금도 그 점을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음악가가 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음대를 졸업하고 나서는 무언가 인생의 바람이 바뀌었다고나 할까? 자연스럽게 뱃머리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여러가지 다른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매순간, 음악은 언제나 내 옆에 있었다. 거의 악기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마치 매일 숨쉬는 공기처럼 음악은 나의 삶에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음악은 힘들 때마다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혼자 있을 때는 세상의 번뇌를 잊게 해주는 치유제였고, 말 못 하는 세상에서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였고,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게 해 주는 기회를 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악기를 손에 잡지 않게 되었다.


세상에 정이 떨어졌달까?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음악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하는 회의감에 사로잡혀 점점 깊이 바닦으로 침체되어 갔다. 게을러지고, 듣기조차도 안했다. 클래식 방송이 나오면 꺼버리고, 악기는 방구석 어딘가에 쳐박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물먹는 하마를 옆에 놓아주면서 알아서 잘 견디길 바랬다.


그리고 코로나가 끝나면서 서서히 악기를 손에 잡았다. 누가 뭐래도 방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그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평생 손에 잡은 악기와 평생 읽어온 악보는 누가 뭐해도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다. 굳은 살이 사라져 처음엔 손가락에 현이 박히면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손가락이 아플수록 가슴이 아팠다. 그러다 점점 아픔에 익숙해지면서 손가락과 팔의 근육이 풀리고 용기가 생겼다. 아...다시 할 수 있구나.


점점 다시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하고, 음악회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무대에 다시 서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오년이란 시간은 너무 길었다. 어떻게 무얼 할 수 있을까? 악기를 연주하면서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타인과 같이하는 합주에 있다. 다양한 악기가 모여 교향곡을 연주하며 마지막 피날레를 그을 때의 짜릿함이란!!!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여기서 IT기술이 나를 도왔다. 나의 연주를 들은 핸드폰은 알고리즘의 힘으로 나를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인스타그램에 한 오케스트라의 입단 광고가 떴다. 프로와 아마추어가 같이 연주한다니, 가볍게 첫 발걸음으로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케스트라의 이름은 "파시오네트", 열정이라...먼 기억 속으로 사라진 아련한 단어다.


첫 연습부터 젊은 지휘자의 패기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스탭들이 열심히 준비했을 깔끔한 악보를 보니 기분이 좋고, 거기다 음악만 연주하고 헤어지니 부담이 없었다. 잘 연주되지 않는 쇼스타코비치, 라벨, 거슈윈 곡들을 연주하니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오케스트라를 할 때 제일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숫자를 세는 것이다. 4분의 4, 4분의 3, 8분의 6, 박자를 세면서 다른 악기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즐거운 마음이 들며 행복해졌다.


그렇게 시작한 조그만 발걸음이 지난 주 일요일에 결실을 맺었다. 모두 어떤 마음으로 모였는지 직접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냥 연주를 들으면 알 수 있다. 음악이 좋아서 모였다는 걸 말이다. 같이 연주하고 그 기쁨을 타인과 나누는 것, 그 것이 음악인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


슈베르트의 "음악에게 (An die Musik)"이라는 곡이 생각난다.

 

너, 사랑스러운 예술아, 얼마나 많은 회색빛 어두운 시간 속에서,

내가 인생의 거친 회오리에 휘말렸을 때


너는 따뜻한 사랑을 나의 심장에 지피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를 이끌었지,

더 나은 세상으로!


자주 너의 하프소리에 탄식이 세어나왔지만,

너의 달콤하고 신성한 화음이,


나를 더 나은 시간의 천상의 세계로 이끌었지

너 사랑스러운 예술아, 너에게 감사한다.

너 사랑스러운 예술아, 너에게 감사해!


클림트가 상상해서 그린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슈베르트"를 보고 있으며 쓸쓸했던 그의 인생이 나의 생각처럼 그다지 고독하고 슬프지만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심각한 생활고와 병마에 고통받았더라도 그의 주변에는 늘 그를 도와주고, 그의 음악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인복이 좋았던 것일까?


그에게 어쩌면 음악이란 하나의 구원이자 살아가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음악없는 삶이란 공기가 없는 숨막히는 인생이었으리라. 그림 속의 슈베르트는 슬퍼보이지도, 외로워 보이지도 않는다. 따뜻한 촛불과 사랑하는 친구들에 둘러쌓여 피아노를 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행복감과 안정감이 영원하길, 음악이 영원히 자신과 함께 하길 바라지 않았을까? 모 시트콤의 마지막 대사처럼 말이다: "시간이 이대로 영원히 멈췄으면 좋겠어요".


그림 속의 슈베르트가 어떤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지 모르겠다. 그는 아름다운 수 많은 가곡을 작성했으니, 그 곡 중 하나일 수 있고, 어쩌면 다른 이들의 작품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음악에게 (An die Musik)"을 연주하고 있지 않을까? 이 자리에 그들을 하나로 모아준 음악에 감사하면서 말이다.



곡의 중간중간마다 단원들의 시선은 제각각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타악기 소리에 박자를 맞춰보기도 하고, 저음의 첼로의 멜로디를 들으며 들어갈 타이밍을 엿보기도 한다. 하지만 마지막 지휘자의 지휘봉이 올라가는 순간 온 단원의 시선은 거기에 고정이 된다. 아드레날린과 엔돌핀이 섞이면서 감정이 최고조에 달하고 모두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지휘봉이 내려가는 짧은 순간에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마지막 화음을 그으며... Du, holde Musik, ich danke dir...und bleib bei mir ew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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