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와 만남의 세계라 할 수필문학이다. 평소 이미지를 인식하는 ‘상’과 이것을 의미하는 ‘정’ 등 두 가지 축을 이룬 게 수필문학이라고 주장하곤 했다. 때론 엉뚱한 상상력에 나도 모르게 함몰하곤 했다. 마치 꿀벌이 제가 딴 꿀에 풍덩 빠지듯 말이다. 어느 땐 혼자만의 괴이한 생각을 머릿속으로 되새기기도 하니 바람직한 상상력만은 결코 아닌 듯하다. 이는 어느 경우엔 상식에 기반 한 사고思考의 궤도를 이탈하게 이끌기도 해서다.
풍부한 상상력은 글 창작의 자산이 되기도 하잖은가. 어찌 보면 모든 예술의 밑그림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면 지나치지 않으리. 하지만 풍부한 상상력도 유분수다. 몇 해 전 한낱 어느 광고 문구를 대한 후 야릇한 생각에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순간이 떠오르자 얼굴이 화끈하다. 그러고 보니 평소 성인군자인양 자처하면서 원초적 본능만큼은 숨길 수 없었나보다.
다소 민망 하다할 본능을 자극 받은 곳은 어느 가구점 앞이다. 수 년 전 일이다. 길을 걷다가 가구점 매장 쇼윈도 위에 붙은 큼지막한 광고물 사진에 발길이 머물렀다. 광고물 속 주인공은 당시 섹시 남으로 정평 나 있는 모 남성 연예인이다. 그가 특유의 표정으로 손가락질 하는 곳에 폭신한 매트리스가 놓인 침대 사진이 있다. 그 위엔 이런 문구가 한껏 상상력을 촉발 시켰다. ‘자봤으면 알 텐데’가 그것이다. 뜻과 의미를 정확하고 오묘하게 표현하는 글자로선 우리 한글이 세계 으뜸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는 문구랄까.
이 글자는 모 가구 회사에서 자사自社 제품의 광고 문구다. 침대를 구입한 소비자들이 사용 후 그 품질의 우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을 전제하에 만들었다. 그럼에도 문인의 생각은 천리를 뻗는다고 했던가. 이 내용 앞에 갑자기 달큰하고 에로틱한 감정에 젖는 자신이었다. 다름 아닌 ‘자봤으면 알텐데’라는 글자가 안겨주는 묘한 분위기에 빠져든 게 그것이다.
나만의 은밀한 사고에서 출발한 연상 현상 작용이었을까? 광고물 사진 속 남성은 배젊다. 언젠가 그가 출연한 애정 영화를 본 적 있다. 영화 속 상대 배우 역시 젊은 여배우였다. 당시 영화 속 두 남녀의 베드신은 너무 노골적이었다. 그 때 두 배우의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던가. 그 광고문을 대하는 순간 그 섹시한 남자 주인공이 맡은 영화 속 배역 장면을 다시금 보는듯한 착각에 절로 빠졌다.
이로보아 가슴이 젊은 날 못지않게 여전히 푸르렀다. 침대 광고 모델 남성 연예인의 은근한 눈빛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이었잖은가. 그러니 ‘자봤으면 알텐데’ 라는 그 문구를 본 후 지난날 영화 속 베드신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위한 변명이라고 치부해도 좋다. 어쨌거나 ‘자봤으면 알 텐데’라는 광고문은 에로틱함을 발흥發興케 하고도 남음 있는 문구였다.
이렇듯 인간의 두뇌는 참으로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단순한 구조인가보다. 침대 모델 남성 연예인에 매혹돼 격렬한 남녀 사랑 행위 장면을 상상하였다. 뿐만 아니라 잠시나마 황홀경에 빠져 들었으니 말이다. 인간 본능은 속물과 거룩함에 우선한다는 생각이 잘못은 아닐 것이다. 수 초 동안의 첫인상이 상대방 이미지를 만든다. 하지만 또한 좋았던 첫 인상도 하찮은 일로 인하여 절연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을 보면 우리네 두뇌 속에는 모순이 일정한 자리를 잡고 있는가보다.
경험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광고 문구 속 침대 위에 잠을 자본 소비자들의 경험담이 못내 궁금하다. 과연 이 광고 문구처럼 잠을 자본 결과 안락함을 느꼈을지 아니면 광고 문구에 속았다고 후회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자봤으면 알텐데’라는 문구와 보기에도 편안한 침대 사진이 로맨틱한 관능적 감정을 한껏 견인해 주었던 게 사실이다. 시각적으로 그것이 안겨주는 이미지에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만하잖은가.
이즈막 그 때 일을 다시금 돌이켜 본 결과다. 문구와 침대 사진이 풍기는 섹시한 뉘앙스에 현혹돼 잠시 야한 감정에 사로잡혔었음을 솔직히 시인한다. 한낱 광고 문구에서 섹슈리얼티를 감지하여 에로스적인 황홀함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고정 관념 탓 아닌가. 실은 남녀의 사랑은 침대 위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전부였으니…. 에로틱 하긴 하나 결코 창의적인 발상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