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식 Oct 04. 2023

뜨거운 난로 위의 시간


                                       

 젊었을 땐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게 왠지 싫었다. 누군가 나이를 물어오면 실제 나이보다 한, 두 살 보태어 말하곤 했다. 그럼에도 제 나이로 보였나보다. 상대방은 쉽사리 필자의 거짓말에 속아주지 않았다. "무척 애띠어 보이는데…” 라며 고개를 갸우뚱하기 일쑤였다. 요즘은 어떤가. 필자 나이보다 서 너 살은 아래로 봐주길 고대한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늘 빗나간다. 제 나이로 보인다는 말을 들어서다. 이때만큼 마음이 허탈하고 낭패감이 든 적이 없다. " 벌써 이렇게 늙었나?" 라는 생각 때문이다. 시간과 나이를 논하노라니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절감한다. 책상 앞에 놓인 일력은 벌써 올해도 절반을 넘겼잖은가.

 그러고 보니 시간이야말로 금보다 더 귀하다. 지인은 매일이다시피 손녀를 봐준다. 어느 날 지인 딸이 회사를 하루 쉰다는 연락에 왠지 신이 나더란다. 모처럼 집 테라스에 앉아 자신 만의 시간을 갖게 되어서란다.

 이 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이 참으로 알차게 느껴졌다고 했다. 따끈한 커피를 앞에 놓고 바라보는 먼 산 신록이 이처럼 아름다울 줄 몰랐다고 한다. 미뤘던 집안일도 했단다. 또한 백화점에 들려 패션 유행 추이도 눈여겨봤단다.

 그동안 손녀 돌보는 일에 매달리노라 정신없었다고 했다. 마치 세상과 담쌓고 사는 기분이었단다. 단 하루만의 시간일지언정 그 족쇄에서 헤어나니 날아갈 듯 기쁘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호젓이 자신 만의 시간을 갖고 보니 다시금 시간의 중요성을 깨닫는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이렇듯 현대인의 삶은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스마트폰이 보편화 되지 않았던 지난날 만 하여도 그렇다. 친구에게 집으로 전화를 걸면, "시간 없다”라는 말이 첫인사였다. 그러나 코로나19 창궐 후 사회적 거리로 집에 칩거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지난 시간은 너무나 암울하고 코로나19 종식의 기약조차 없어서일까. 흡사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둡고 음습한 기나긴 터널을 걷고 있는 듯했다. 이런 두려움과 불안감은 지금도 여전히 끝이 안 보인다. 그동안 잠시 수그러들던 코로나19가 오는 늦가을엔 또다시 반등할 기세여서이다.

 희망이 있다면 현재 겪는 삶의 이 고초를 언젠가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뿐이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물가가 서민의 삶을 위협하고 있잖은가.

 이런 시국을 견디노라니 언젠가 읽었던 신문 기사가 문득 생각난다. 1월1일 오전 8시 59분 59초와 9시 0분 0초 사이에 윤초가 추가 됐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는 지구 자전 속도가 몇 년에 걸쳐 1초씩 늦어지기 때문에 이를 보정(補正)하기 위해 윤초(閏秒)를 집어넣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때 휴대폰 시계는 전파를 잡아 표준시를 나타내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안다.

 시간의 중요성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시간은 돈'이라는 등식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를 증표 하듯 아르바이트 현장에서도 시간은 엄격히 적용되잖은가. 아르바이트 급여를 산정 할 때도 시급이라고 말하잖은가.

 지난날 큰 딸아이 음악 공부를 시킬 때 수업료로서 시간 당 고액을 치렀다. 그 때 부모 마음에 선생님이 단 몇 분 만이라도 딸아이 음악 공부를 더 가르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단호했다. 수업 시작 후 한 시간이 되면 여지없이 끝내곤 하였다. 단 몇 분을 거저 가르치는 법이 없었다. 돌이켜보니 실은 그 선생님 시간이 곧 고액의 음악 레슨비나 같은 맥락이었다. 이로보아 비록 1초의 윤초 보정일망정 이 시간을 하찮게 여길 일이 아니다.

 시간은 때론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 한다. 커피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은 단 5분도 지루하다. 그러나 재미있는 영화 감상이나 독서를 할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기 예사다. 즐거운 일에 빠졌을 때와 따분할 때의 시간은 똑같지가 않다.

 오죽하면 아인슈타인도 상대성 원리를 설명 하는 자리에서, "미녀와 함께하는 1시간은 1분 같고, 뜨거운 난로 위에 1분은 1시간 같다.” 라고 했을까. 인간은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고 흥미로운 일을 추구하며, 호기심이 많은 존재여서인가. 아인슈타인의 이 언명에 공감이 깊다.

 젊은 날엔 심장이 뜨겁고 맥박과 호흡이 빨라서인가보다. 당시엔 하루가 참으로 길고 느리게 간다고 생각했다. 반면 신진대사가 느려진 요즘이어서 인가. 저녁나절 주황빛 노을이 서녘에 번질 때마다 하루해가 저무는 것을 못내 아쉽게 생각한다.
 

 시간을 허비(虛費)하는 일은 돈 낭비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타인의 시간을 상업적으로 이용 하지 말아야 한다. 걸핏하면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 보험 가입 및 휴대폰, 인터넷, 신용 카드 바꾸라는 권유로 아까운 시간을 빼앗고 있잖은가.

 이런 일은 필자 같은 경우 그야말로 '뜨거운 난로 위의 시간' 보다 더 길고 곤욕스럽기까지 하다. 내 것이 소중하면 타인의 것도 귀하잖은가. 시간은 누구에게나 돈보다 귀하다.♣                     

작가의 이전글 날개 달린 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