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탈 때다. 그것을 타는 순간 친정어머니가 문득 생각났다. 엘리베이터는 참으로 편하다. 고층 건물도 단숨에 오를 수 있어서다. 이로보아 세상은 점점 기계화 되어 신속성과 편리함이 삶 속에 깊이 침투해 있다. 이에 맞물며 때론 1분 1초의 촌음을 다투며 살기 예사다. 이런 세상에 살다보니 마음마저 여유를 빼앗겼다. 무슨 일을 행하려면 항상 빨리 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가슴을 짓눌러서다.
그러나 지난날 어머닌 요즘의 나와는 딴판이었다. 어머닌 매사 나무 늘보였다. 물론 성격도 느긋하고 꼼꼼해서 일지도 모른다. 무슨 일을 결정하기 전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돌다리도 무수히 두드려보고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따른 여러 요인들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길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어머니의 DNA를 물려받지 못했나보다. 걸핏하면 감정적 포로가 되곤 한다. 무슨 일이든 마음이 가리키는 대로 즉흥적으로 행하기 일쑤 아니던가. 또한 어머닌 사람을 대할 때 ‘상대방이 원하는 게 무엇일까?’를 염두에 두고 관계를 맺곤 하였다. 그리곤 항상 최선을 다하여 상대방에게 이익을 안겨주는 일에 주저치 않았다. 이런 유전 인자는 나 역시 물려받은 듯하다. 걸핏하면 타인 일에 스스로 자처하여 소매를 걷곤 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덕기德氣 있는 성향을 닮기엔 늘 역부족임을 느낀다. 말 한마디라도 가슴에 비수를 꽂는 사람은 끝내 용서 못하잖는가. 어디 이뿐인가. 때론 선의의 거짓도 필요한 게 인생사인데 무엇이든 곧이곧대로 언행을 행하곤 한다. 요즘은 쓰디쓴 진실보다 달콤한 거짓이 처세술엔 최고란다. 원칙을 지키고 정도를 걸으면서 쓴 소리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고루한 사람으로 치부되기 일쑤란다. 한편 까탈스럽다는 말로도 평가한단다. 어쩌면 이 말이 맞는 성 싶다. 나 역시도 진심어린 충고보다 달착지근한 감언이설에 매료되곤 하잖은가. 그럼에도 무엇이든 원형과 본질은 숭상한다.
여자라도 불의를 보면 주먹을 불끈 쥐곤 하는 게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옳은 일이다 싶으면 아무리 남의 일일지언정 나서서 당당하게 바른 말을 하곤 한다. 사진도 포토샵을 하여 얼굴을 변형시키거나 수정 및 보완 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얼굴에 주름살이 있는 것은 나이 들면 당연한 이치다. 이것을 마치 다리미로 다린 듯 감쪽같이 없애고 팽팽한 얼굴로 거듭 태어나게 하는 사진 고침은 왠지 내 얼굴 같지 않아 매우 불편하다.
음식도 그렇다. 파스타, 돈가스 이런 음식보다 박 나물, 깻잎 김치, 애호박 전, 된장찌개가 입에 맞는다. 나이 탓이런가. 사람도 상대해봐서 종잇장처럼 얄팍하고 가면을 여러 장 준비한 사람은 대할수록 온 몸에 피로감이 엄습해와 피하곤 한다. 그래 마당발은 못된다. 이런 내게 평소엔 무소식이다가도 서로 생각이 나면 만나는 지인이 있다. 그녀를 만나면 삶에 찌들었던 묵직한 가슴이 깃털처럼 홀가분해 지는 느낌이다. 서로 견제하거나 시새움 및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을 행하지 않은 채 순수한 인간적 만남이라서 더욱 그렇다.
어머닌 어려서 사람을 사귀어도 신의를 지킬 수 있는 항심恒心을 지닌 사람과 사귀라고 타일렀다. 이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무엇으로든 타인을 곤경에 빠트릴 수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표리부동함 때문일 것이다. 요즘 이런 어머니 교육을 대물림해 딸들에게 말하자 장난삼아, “ 엄마는 35년생 외할머니께 배운 케케묵은 가정교육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라고 하면서도 이 말에 귀를 기울이곤 한다. 이렇듯 딸들이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눈치라 고맙다. 딸들이 사람답게 사는 이치며 법도가 바로 선 게 무엇인지를 깨닫는 듯해서다. 딸들 말을 듣고 보니 35년에 출생 한 어머니의 밥상머리 교육에 영향 받아 여태 삶을 꾸려온 듯하다.
말 한마디라도 발설할 때 입안에 침을 세 번 삼키고 하는 것은 물론, 눈앞에 이익을 위하여 남의 눈을 가리지 말라는 것이며, 은혜를 입으면 무엇으로든 갚도록 노력하라는 말씀 등, 어찌 보면 요즘 세태와는 동떨어진 어머니의 가정교육이었다. 눈만 뜨면 생존 경쟁에 시달리는 현대인이다. 어머니의 이런 가르침은 그야말로 구태의연한 맹자 왈 공자 왈이 되기 십상 아닌가. 자신을 키워준 부모 가슴에 칼끝을 들이대는가 하면, 자식을 살인하는 친모 및 친부가 있는 세상 아닌가. 정도와 원칙, 윤리와 도덕, 심지어는 천륜마저 저버린 세상에 어머닌 왜? 걸핏하면 내게 겸손과 겸허를 강조할까?
요즘도 인지 저하 증에 시달리는 35년 생 어머니는 아직도 이 세상이 옛날인양 착각하시나 보다. 외출 하는 나를 붙들고 걸핏하면 어머닌, “ 얘야, 남하고 다투지 마라. 남이 발을 밟으면 발을 밟혀 죄송하다고 먼저 고개 숙여라.” 한다. 평생 타인과 겨루거나 대항하는 법을 몰랐던 어머니다운 가르침이다. 세파에 시달린 나로선 이런 어머니 말씀을 들을 때마다 왠지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