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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지금 Jan 14. 2024

감기약을 끝까지 먹기로 했다

어제부터 감기약을 먹기 시작했다.

워낙 오랜만에 먹는 감기약인지라 몸이 어떻게 반응할지 약간 염려가 앞서기도 했지만 지끈거리는 두통에 온몸을 휘어잡는 오한의 아픔이 훨씬 더 컸기에 까슬까슬한 입맛에도 약을 먹기 위해 야무지게 밥도 챙겨 먹고 식후 30분 안내도 착하게 잘 지켜서 꼬박꼬박 감기약을 챙겨 먹었다.


처음 약을 먹고 나서 땀을 많이 흘렸다. 그리고 사흘여만에 잠다운 잠을 잘 수 있었다. 약기운에 의지해 잠이 더 깊게 든 것일 테지만 나에게는 절실했던 휴식이었다. 입고 있던 옷이 땀에 흠뻑 젖어 오히려 한기가 느껴지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 보니 오후에 누웠는데 이미 초저녁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가만히 내 상태를 살피니 지끈거리던 두통도 한결 가벼워졌고 마치 채찍처럼 찌르고 움켜쥐는 듯했던 오한도 잠잠해져 있었다.


다 나은 건 아니지만 회복이 시작된 것이다. 예전에는 몸이 좀 나아졌다 싶으면 더 이상 약을 챙겨 먹지 않았다. 약이 영양제도 아니고 일순간에 몸이 나아질 정도면 얼마나 약성분이 강하겠는가 싶은 기우까지 앞세워 내 마음대로 약을 끊어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기로 했다.  의사 선생님의 전문가로서의 진단과 처방을 더 신뢰하고 이왕 진단 받아먹기 시작한 약이 그 기능을 다 하도록 지켜보기로 했다.


더 궁극적으로는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더 실감하게 되었기에 더 내 느낌 내 기분을 의지하지 않게 되었다.


한때는 무얼 먹어도 무얼 해도 내 몸은 내가 하는 대로 나를 따라와 주었다. 그래서 내 몸은 내가 어떻게 해도 되는 나의 소유라고 늘 여겼다.

그러나 이제 내 몸은 자신의 주장을 확실히 한다.


"이 음식은 안 맞아. 이걸 먹으면 불편해. 이건 안 받아줄 거야. 입안에는 들어올지 몰라도 위는 좋아하지 않을걸. 장이 불편 해할 테니  먹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게 좋을 텐데..."


이 이야기들을 무시한 채 먹거나 무리하게 일을 하면 몸은 뿔이 나서 마구 항의를 표한다. 머리가 아프고 소화가 안되고 지금처럼 감기로 하루 일과에 파업을 선포한다.


이제야 나는 내 몸이 이 땅을 사는 동안 조물주가 입혀주신 옷이며 다시 그분께 돌아갈 때 고이 벗어 내려놓아야 하는 그분의 소유임을 인정한다.


내 것이라 착각하고 내 마음대로 함부로 몸을 대한 시간들을 후회하며 가만히 어깨며 팔이며 다리를 주무르며 몸에게 말을 건넨다.


"미안해. 소중하게 대하지도 존중해주지도 못해서... 함부로 대했던 것도 정말 미안해. 이제 좀 더 아끼도록 노력할게. 같이 해줘서 고맙다."


감기가 폭풍우처럼 내 몸을 훑고 지나가고 있다. 이 폭풍우를 내 몸은 나와 함께 담담히 통과하는 중이다.


내가 배운 이 지혜를 잊지 않고 내 몸을 귀한 손님 대하듯 존중할 때 우리는 이 폭우를 다 맞은 후 더 단단한 한 팀이 되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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