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는 내게 불필요한 것을 제하고 비우면서 점차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만을 선별하여 남기는 것이고 이를 통해 점점 기본 즉, 본질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과정이다.
나에게, 그리고 나의 삶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이 질문은 인생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충분히 확장될 수 있다. 고작 물건 하나 비우면서 질문이 너무 거창하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비우다보면 이 질문에 누구나 도달하게 된다.
한창, 미니멀 라이프에 열을 올리며 물건 비우기에 집중하던 때. 갑자기 친정집에 여전히 가득 남아있던 옛 물건들을 이제는 비워야 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쩌면 이제는 비울때가 되었고 비울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드디어 생겨났다 라고 봐야할 것이다.
따로 시간을 내어 친정에 들러 몇시간에 걸쳐 옛 물건, 추억이 켜켜히 스며있는 일기장, 사진, 편지, 엽서, 작은 소품들을 비우기 시작했다. 사진들은 최종 남길 것만 빼고 졸업앨범까지 다 비웠다. 편지와 카드, 촘촘히 써내려간 일기장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읽고 가위로 잘라 쓰레기 봉투에 넣어 비우는 과정은 의외로 크게 힘들지 않았다.
그 시간을 겪으며 나는 깨달았다. 과거의 나는 사진과 일기와 주고받은 편지안에 박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 놀라운 것은 옛 기록들을 다시 읽으며 내가 현재 기억하는 과거의 나와 그 기록속에 남아있는 나는 조금 혹은 많이 달랐다는 것이다. 결국 현재의 나에게 유의미한 '과거'는 기록과 사진이라는 물건 자체에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이 '순간'만을 살 뿐인 나의 현재 마음 어딘가에 '과거'라는 이름표를 달고 생생히 그것만의 순간을 살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냥 두면 때가 되어 소멸될 것은 자연히 사라지고 혹시 현재에 이르러 해결되어야 할 끝맺음이 아직 남았다면 그 또한 지금 이 '순간'의 선상에서 직면해야 하는 것이었다.
물건이 내 유의미한 '과거'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나니 내 앞에 빛바랜 채 먼지가 내려앉은 옛 기록들은 더 이상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내 과거의 물건들을 비우며 나는 내가 나에게 허락된 '순간'만을 살 수 있는 존재이며 이런 나에게 어떤 형태로든 '과거 혹은 미래'를 어떤 유형의 물건에 담아두려는 시도는 큰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한 발자국.나라는 존재의 중심에 다가간 것이다.
사람마다 자신의 중심, 그 본질에 가장 필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은 각기 다를 것이다.
이 물건을, 이 사진을, 이 기록물을 비울것이냐? 남길 것이냐?
라는 질문을 할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나에게 과연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있고 앞으로 살고 싶은가?
내 눈앞의 물건 하나를 비운다고 생각해보라.
볼펜 한 자루.
처음에 왜 구매했고 그리고 이제는 왜 필요가 없어졌는가.
그 순간과 지금 이 순간은 어떻게 해서 이다지도 다른가.
결국, 물건이 나를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다.
순간만을 살 뿐인 우리에게 그 순간에 집중해서 가장 충만하게 나 스스로로 살게 해주는 것. 그것만 있으면 되는 거였다. 정직하게 나를 나타내고 나로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그것을 찾고 남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