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미곰미 Jan 18. 2024

할머니의 네모난 세상

점점 작아지는 세상 속이라...

오래전 재밌게 들었던 노래 중에 '네모의 꿈'이란 노래가 있었다.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을 보고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신문을 보며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학교에 간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지구는 둥근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통 네모라고...


라라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핸드폰을 어버렸다.

병실로 들어서는 날 보시더니 핸드폰을 누군훔쳐갔다고 하셨다. 설마 그러겠냐 하며 침대모서리  여기저기며 서랍장 하나하나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병원에도 몇 번 얘기해 보고  간호사나 보조 조무사에게도 얘기를 했지만 찾아보겠다거나 분실물 보관 쪽으로 알아보고 연락이 오면 찾아주겠다는 대답만 반복해서 왔다.


아무래도 입원하신 후  몇 번 병실을 옮기는 와중에  침대시트를 정리하거나 밑에 깔려있던 패드를 정리하다가 같이 딸려가서 버려진 거 같다고 한다.

오래된 아이폰이라 돈이 되지도 않을 텐데 누가 훔쳐갈 리가 없을 거 같은데 할머니는 이것들이 크리스마스 때라 팔아먹으려고 훔쳐간 거라며 확실하지 않은 대상과 이유로 역정을 내셨다.


할머니에겐 이 핸드폰과 TV가 '세상'이다.

거의 방에만 계시다시피 하시, 오는 전화라야 가끔 전화하시는 구 한분과 동네 아주머니 한두 분이다. 

한국에 형제들이  있긴 한데  가끔 아주 가끔   통화를 하시는듯하지만 한 번도 본 적은 없다.

주로 아들, 딸 그리고 나 정도가 일상에서 통화를 하는 사람들이다.


전화로 하실 수 있는 것도 전화를 받으시는 용도 외에는 거의 사용을 안 하신다.

유일한 소통 수단인 전화기를 잃어버린 할머니는 너무 예민해지셨다.  따님이 주말에 새로 개통해서 가져온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한숨을 푹푹 쉬시면서  훔쳐간 사람(?) 욕을 하시더니 갑자기 신경질을 내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셨다.


딸이 퇴원하신 할머니를 위해 두 달 동안  주 1회 방문간호사를 보내주었다.  할머니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려 온 간호사가 혈압을 재고  키와 몸무게를 여쭈어보았는데 다짜고짜 네가 뭔데 그런 걸 물어보냐며 화를 내시더니 나가라고 하시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다.

간호사는 오늘 할머니가 기분이 안 좋으신 거 같으니 다음에 오겠다고 하고 돌아갔다.

할머니는 아무도 우리 집에 못 들어오게 문도 잠그라고 하셨다. 

이제 퇴원해서 집에 있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전화를 할 수도 없으니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지신 할머니는 딸이 오지 않고 간호사를 보내는 것도 맘에 안 드신 거였다.


간호사가 나가자 아들과 딸에게 전화하라고  소리를 지르셨다.  지금 일하는 중일테니 나중에 하시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역정을 내셔서 할 수없이 내 전화기로 전화를 했다.

일하다가 전화를 받은 아들도 할머니가 대뜸 소리부터 지르시니 결국 화를 못 참고 짜증을 냈다. 그리고 전화기 준비하고 있으니 성질 좀 죽이시라고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딸은  다음날 중고전화기를  찾아서 개통하고 할머니께 밤에 갖다 드리고 난 후에 연락이 없었다.

전화기를 갖다 드린 날도 할머님이 하도 예민하게 구시고 내 전화기로 계속 일하고 있는 아들, 딸에게 전화를 하셔서 할 수 없이  다음날 급하게 온 거였다. 

 전화기가 없으니 너무 불안해하셔서 급한 대로  옛날에 썼던 아이폰을 겨우 찾아서 개통을 해드렸다고 했다.


딸이 전화기를 가져다 드린 날 밤에 라라할머니는 내게 전화하셔서 기분 좋은 웃음을 허허 웃으시며 자랑을 하셨다.

딸이 그 멀리서 밤에 갖다 줬다고... 감기가 잔뜩 들어서 마스크를 쓰고 왔다고... 사위도 같이 왔다고... 둘은 여전히 사이가 좋은가 보다라며 여전히 못마땅한 사위에 대한  비아냥거림도 곁들이셨다.


딸은  중고전화기를 찾아서  할머니께 밤에 갖다 드리고 난 후에 한 번도 연락이 없었고 새해가 되어도 오지 않았다.

새해가 되었고 작전이 성공했다고 생각했던 할머니는 퇴원한 후 일주일도 안 지나 아직 온전하지 않은 상태인데도 떡국도 끓여놓고  갈비도 준비해 두고 기다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자 나에게 연락을 했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전화기가 이상하다고 내게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결론은, 아들은 전화기 사건과 입퇴원 과정을 거치며   화가 나서 전화를 안 받았고 딸은 아예 차단을 한 상태였던 거였다.


할머니에게 전화기는 유일하게 세상과의 연결고리인데 그걸 잃어버렸으니 단절로 인한 불안함과  두려움이 컸을 터이다.

할머니는 아침저녁에 산책하자고 해도 아파트에서 사람들 마주치는 게 싫으시다고 안 나가신다.

가까운  요양센터에 어르신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고 아파트로 차가 오고 가는데  그것도 싫다고 안 하신다.


그렇게 점점 좁아진 할머니의 세상은 이제 네모난 티브이와 네모난 핸드폰이 전부인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 네모난 세상마저 점점 더 작아져가는 듯해서 안타깝기만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머니의 사생결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