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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나단 Jul 26. 2023

집 나간 탕자가 돌아왔다.

사회복지사의 가족

남처럼 생활하며 데면데면하던 어머니에게 전화가 다.

오랜만에 듣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불안감이 묻어난다.

“잘 들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부고 소식, 그러나 전혀 놀랍거나 슬프지는 않다.

“일단 집으로 내려와야겠다. 네가 있어야 해”

잊고 살던 가족, 하나뿐인 아들인 나는 상주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왜 내 머릿속엔 직장의 밀린 업무만 떠오를까?


난 아버지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없다고 말해왔다.

“바로 출발해야지 뭐 해? 내가 다 처리해 둘게 뒷일 생각하지 말고 일단 다녀와”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도 왜인지 무덤덤한 내게 팀장은 타이르듯 말한다.


어제는 사회복지사로, 오늘은 상주로 앉아있다.

존재도 부정하던 영정사진 속의 남자, 그의 마지막을 지다.

‘내 아버지는 저렇게 생겼구나.’

아버지의 지인일까?

얼굴도 모르는 조문객들이 상주인 나를 찾아내 위로해 댄다.

난 그때마다 말없이 고개를 숙일뿐이다.

‘괜찮아요. 전혀 슬프지 않으니까’

하늘 아래 피를 나눈 사람으로서 마지막 의리라 생각하고 불편한 자리를 지킬 뿐이다.


나의 아버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어린 시절 그는 우리를 떠났다.

그 뒤로는 소식도 존재도 모르고 살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나는 어렸으니까.

내가 모르는 문제 앞에서 어머니는 가정이 중요했고

아버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이유는 그것뿐이다.

‘나에게도 가정이 생긴다면, 나는 좋은 아버지가 될 거야’

하지만 나는 좋은 아버지가 뭔지 모른다.

그걸 알려줄 사람은 이제야 영정사진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두 남매를 홀로 키웠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돈이 되는 물건은 모두 팔아버렸다.

그리고 어머니는 닥치는 대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를 가장 불편하게 했던 것은 먹고 싶은 것을 맘대로 못 먹는 것이 아니었다.

아직은 어렸던 나에게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며 들이미는 서류들,

그것을 받아 들 때 내 손은 떨려왔다.

‘행방도 모르는 사람의 동의를 무슨 수로 얻어내?’


이유도 모르는 아버지의 공백 그가 우릴 떠났던 이유라도 알았다면 마음이 좀 더 편했을까?

“분노와 원망은 너에게 해로울 뿐이다.”

어머니는 원망을 키워가던 나를 타이르곤 했다.

하지만 대상이 사라진 나의 원망은 가족들에게

특히 어머니에게 향한다.

나는 어머니가 답답했다.

‘왜 이렇게 답답하게 살아야 하는 거야?’


성인으로 분류되기 시작한 나이.

이제 연고도 모르는 사람의 의견 따윈 필요 없었다.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죽기 전까지 만날 수 없었으면 좋겠어”

결국 난 이 한마디와 함께 가족 곁을 떠났다.

독립을 가장한 가출, 그 후의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이딴 방법으로 다시 모였다.

어두운 장례식장 귀퉁이에 한 여인이 구겨져있다.

‘나의 어머니, 많이 늙었구나’

집을 나와 수 년이 흘렀으니 당연한 일이다.

팀장은 몇 시간을 달려 장례식장에 찾아왔고 여인의 눈치를 살피며 날 위로한다.

“어머니 잘 위로해 드리고 올라와”

하지만 몇 년을 남처럼 대했던 어머니에게 말 한마디 건내지 못했다.

그때 팀장의 말을 따르지 않았던 것을 지금도 후회한다.


지금 난 가출을 마치고 내 가족 옆에 돌아왔다.

물론 내 의사는 아니었다.

청천벽력 같은 사고를 계기로 가족의 곁으로 피난 온 것이었다.

완치까지 1년이 필요했던 사고.

척추부터 시작된 골절로 움직일 수도 없는 난 한순간에 백수가 되었다.

‘가족에게 돌아온 탕자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지금의 난 나름 건강하고, 다시 사회복지사로 생활한다.

변한 것이 있다면 난 가족 곁에 그대로 눌러앉아버렸다.


“그래도 집이 편하잖아요~”

남들에게는 너스레를 떨지만

장례식장 구석에서 앉아 절망하던 어머니를 보고도 한마디도 못한 후회

남의 가족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내 가족은 애써 외면했던 죄책감

남의 가족에게 행복을 기원하면서도 가족사진 한 장 없던 것의 아쉬움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화창한 휴일, 난 살가운 자식은 아니지만 늙어버린 어머니를 모시고 근교로 나가본다.

사실 친구를 만들거나 취미에 집중하고도 싶다.

하지만 남의 이야기를 듣고, 죽은 사람과의 의리도 지키던 내가 가족과의 시간이 아까우랴


나는 사회복지사다.

남의 가족에게 관심을 가져야 했던 내가

나의 가족에게도 관심을 갖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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