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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아 Nov 15. 2024

하리라만 먹어도 되는데, 쿠스쿠스도?: 알제리 음식


알제리에 가면 뭘 먹지? 쿠스쿠스, 타진, 하리라, 쇼르바, 메르게즈, 부렉, 착츄카… 사람에 따라 입맛은 천차만별 다양하지만, 개인적으로 알제리 음식을 좋아한다. 담백한 편이다. 돼지기름 라드를 쓰지 않고 식물성 올리브유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튀김조차도 기름지게 느껴지지 않는다. 고기도 굽지 않고 푹 익히거나 쪄내기 때문에 먹기 부드럽다. 커민, 강황, 계피 등 향신료를 쓰지만 내 입맛에는 과하지 않고 적당하다. 베트남 국수 위에 얹어 나오고 중국 요리에도 많이 쓰는 고수 혹은 향채도 가끔 수프 위에 얹어 나오는데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잘 먹는다.  


알제리 식 식사는 격식이 비교적 간소하다. 거의 한 번에 모두 차려 놓고 먹는데, 요리를 음미하는 이야기를 별로 나누지 않아 먹는 데 진심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코스가 바뀔 때마다 ‘딜리셔스’라고 연발해야 하는 프랑스인들의 풍습과는 대조적이다. 식탁에 앉아 있는 시간도 별로 길지 않다. 손님을 초대한 식사에서는 여러 코스가 나오지만 둘러앉아 긴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가깝다고 생각하고 격식을 생략할 때는 쿠스쿠스를 쟁반처럼 넓은 접시에 내놓고 숟갈만 준다. 숟갈로 같이 자기 앞에 부분부터 양껏 먹는다. 


식사 시간이 길지 않은 것은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이다. 고기 요리에는 대개 소주나 맥주를 같이 마시는 우리나라 사람들로서는 매우 유감스러울 수 있지만, 한 두 병 독주를 호주머니에 넣어 간다 해도 도저히 혼자 마실 수 없는 분위기이므로 ‘건조 체제’에 익숙해지는 방법밖에 없다. 술 대신 오렌지나 레몬 같은 과일향이 들어간 탄산음료를 마시는데, 단맛이 식욕에 별로 도움 되지 않아 차라리 물을 마시는 것이 낫다고 여러 번 생각했다.    

이슬람 사회에서는 술을 마시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7세기 예언자 무함마드가 남긴 어록인 꾸란에는 술을 마시는 데는 장점보다 단점이 많아 권장하지 않는다고 했을 뿐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엄격하게 금지하게 되었다. 사실 무슬림은 술을 마시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하루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것이 신도가 반드시 해야 할 다섯 의무 중 하나인데, 취기가 있을 때는 기도할 수 없다는 단서가 붙으니 술을 마시기 어렵다. 다음 기도 시간까지 깰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날씨도 긴장을 풀고 술을 마시기 어렵다. 건조하고 뜨거운 날씨에 다니다 보면 시원한 맥주 생각이 간절하지만, 취기가 빠르게 오를 것 같고 일정 양을 넘으면 쓰러져 사망 신고 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음주를 금하는 것은 사막 지대에서 발생한 이슬람은 이러한 위험을 충분히 의식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알제리는 한 때 대규모 포도주 생산지였다. 식민통치를 하고 있었던 프랑스인들이 자국의 포도나무에 전염병이 돌아 죽어버리자 알제리에 포도밭을 조성하고 포도주를 생산해 가져갔다. 알제리 북부 평원은 넓고 넓은 포도밭이었다. 지중해 북부에는 지중해 햇살을 받아 당도가 높은 포도의 즙을 짜서 발효시킨 포도주의 긴 전통을 자랑하는 전문가들과 애호가들이 많지만, 남 지중해 아프리카 해안에 사는 무슬림은 과일로 먹거나 말려고 건포도로 먹을 뿐이다. 프랑스인이 떠나고 난 뒤 알제리인들은 포도나무를 베어 버렸다. 이제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래도 알제리 사람들은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 땅에 이제는 스프링클러를 돌려 감자나 밀을 심는다.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돼지고기도 금지되어 있다. 소시지, 햄, 소시쏭과 같은 마른 소시지 등등 유럽의 식료품 가게를 채우고 있는 그 많고 다양한 돼지고기 가공식품이 전혀 없다. 삼겹살을 애호하는 우리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자기 나라를 떠난 무슬림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돼지고기가 조금이라도 들어가 있는지 탐색해야 하니 고달플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을 한식당에 초대할 때는 돼지고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미리 체크하고 그 대신 다른 요리를 준비하도록 말해두어야 한다. 한 번은 알제행 에어 프랑스 안에서 갑자기 소란이 일었다. 여기저기 남자들이 벌떡 일어나 항의했다. 샌드위치 안에 햄이 들어 있었다. 스튜어디스는 그 햄은 식물성 재료로 만든 인공육이라고 말해주었지만 잠잠해지지 않았다. 샌드위치를 반납하고 허기를 불평했다.   


알제리 사람들의 단백질 공급원은 주로 양고기와 닭고기다. 소고기를 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소를 키우기 어려운 것은 넓은 목초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소는 풀을 너무 많이 먹는다. 무슬림 축제 때 집집마다 한 마리씩 먹는다는 양은 수가 엄청나다. 2천만 마리가 넘는다니 인구의 절반 정도 숫자다. 마른 풀만 여기저기 보이는 스텝 지역에 가면 사방에 보이는 것은 양 떼들이다. 양고기는 다양하게 요리하지만 작은 조각을 꼬치에 꿰어 불에 굽기도 한다. 정부 장학생으로 한국에 와서 공부했던 사덱은 내가 알제리에 갈 때마다 자기 집에 초대해 주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나를 옆에 앉히고 양 기름으로 돌돌 말아 구운 양고기 조각을 먹게 했다. 가장 귀하게 먹는 음식 같았다. 낙타 고기도 있지만 사막 지대에서나 먹을 수 있다. 낙타는 물기 없는 사막에서 사니 고기가 뻑뻑할 것 같았지만 푹 익혀서 그런지 우리 장조림 비슷하게 부드러워서 놀랐던 경험이 있다.


‘메슈이’는 내가 아는 한 제일 맛있는 양고기 요리다. 어린양을 통째로 약한 숯불에 굽는다. 나무를 태워 불길이 잡힌 숯 위에서 양 한 마리를 통째로 긴 막대에 꿰어 돌려 가며 한 사람이 붙어서 거의 하루 내내 굽는다. 기름기가 완전히 빠진 연한 고기와 바삭한 껍질이 환상이다. 구운 고기는 손으로 뜯어먹는다. 맛은 기가 막히지만 양 한 마리가 압도적 볼륨으로 눈앞에 그대로 있어서인지 많이 먹지 못한다. 우리처럼 고기를 작은 조각으로 잘라먹던 사람들은 덩어리 고기를 잘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중간에 그만 먹으려면 너무 섭섭하다. 남은 것을 싸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메슈이를 먹을 때면 사람들이 많아 그런 말은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


지중해 해안가 항구를 제외하고는 생선이 별로 없다는 것도 우리 식탁과 다른 점이다. 그들의 바다인 지중해는 다른 바다보다 수온과 염도가 높아 어족이 빈약한 편이고 생선의 개체수도 풍부하지 않다. 어업과 수산물 양식을 장려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해안을 벗어나 내륙으로 가져갈 정도로 수산자원이 풍족한 것은 아니고, 날씨도 생선을 이동시킬 만큼 시원하지 않아 해안을 벗어나면 수산물이 거의 없다. 게다가 이슬람에서는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비늘 없는 생선이나 오징어와 같은 연체동물을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해산물 요리가 다양하지 않다. 흔히 볼 수 있는 생선은 다른 지중해 지역과 마찬가지로 정어리와 멸치 그리고 대구, 도미 등이다. 주로 불에 구워 레몬즙을 뿌려 먹는다. 예컨대 생선찜이나 조림은 없다.  


‘쿠스쿠스’는 알제리 대표음식이다. 중세기 베르베르인들이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지중해 유역 중동지방에도 널리 알려진 요리다. 바다 건너 프랑스에서도 국민이 즐기는 음식의 3위다. 건조한 지역에서 자라는 듀럼밀 혹은 마카로니 밀이라고 부르는 곡물이 베이스다. 2단으로 된 냄비로 조리하는데, 아래쪽에는 고기, 야채를 볶다가 물을 넣고 양념해 소스를 만들고, 윗단에서는 밀을 찐다. 쪄낸 밀을 듬뿍 담고 그 위에 고기와 호박, 당근, 감자, 작고 둥근 무, 병아리콩을 얹어 소스를 부어서 먹는다. 병아리콩이나 건포도를 얹기도 하는데, 간간히 씹히는 단맛이 나쁘지 않았다. 노란색 좁쌀과 비슷해 보이지만, 깔깔하지 않다. 매일 먹는 음식은 아니고 손님을 초대했을 때나 금요일 기도 날 가족들이 모였을 때 먹는다. 블리다의 산꼭대기 퇴임한 교장 선생님 댁에 초대받아먹었던 쿠스쿠스가 가장 맛이 있었는데, 다시 한번 맛보고 싶은 황홀한 맛이었다. 안주인이 새벽부터 준비한 것이라니 그런 수고를 또 하게 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쿠스쿠스를 먹을 때면 우리가 국수 같은 밀 것을 먹을 때처럼 금방 내려가니 많이 먹으라는 소리를 늘 듣는다. 


식사는 양이 푸짐하다. 1인분으로 나오는 쿠스쿠스는 처음 볼 때는 다 먹을 것 같지만 대체로 1/3 정도밖에 먹지 못했다. 양이 많으니 하루 한 끼는 필사적으로 가볍게 먹어야 했다. 이 때는 수프 한 그릇하고 쫄깃한 전통 빵이나 바게트를 곁들이면 점심이 충분히 해결된다.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친구를 기쁘게 하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수프로 식욕이 생겼으니 쿠스쿠를 먹겠냐고 물어보면 거의 죽을 것 같다. 


수프는 ‘쇼르바’와 ‘하리라’ 두 종류다. 양고기가 닭고기가 베이스로 야채와 통밀 으깬 것을 넣어 걸쭉하다. 우리처럼 약간의 고기와 야채만 넣고 맑게 끓인 수프는 없다. 쇼르바는 특히 라마단 금식월에 하루 종일 물도 만 마시고 굶은 뒤 해가 넘어가면 빈 속을 달래주는 수프다. 그리고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한다.   

 

‘타진’은 자주 보지 못했던 음식이었다. 베르베르 전통에서 유래한 음식이라서 그런지 모로코에 갔을 때 더 많이 맛보았다. 깊지 않은 받침 그릇이 있고 그 위에 뾰족한 고깔 모양 뚜껑이 덮여 있다. 음식 용기도 타진이라고 하고 담긴 음식도 타진이다. 고기와 채소에 양념을 해서 담아 낮은 불에 오래 동안 익힌 후 식탁에 그대로 내어 나누어 먹는다. 우리의 찌개와 비슷하지만 국물이 흥건하지 않고 채소를 잘게 썰지 않고 큼직하게 그대로 둔 것이 다르다. 야채는 토마토, 당근, 호박, 감자들인데, 쿠스쿠스와 마찬가지로 들어가는 재료나 양념이 지방마다 다르다.


식사를 끝내는 디저트 코스에는 페이스트리가 자주 나온다. 여러 종류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설탕이 듬뿍 들어가 내게는 거의 살인적인 단맛이다. 크산티나의 명물이라는 ‘누가’를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흰 설탕을 봉지째 거꾸로 붓는 것을 보고 아! 하고 내심 낮은 비명을 질렀던 적이 있었다. 멀리 황량한 벌판이 보이는 유적지를 방문했을 때 먹었던 꿀을 듬뿍 바른 과자도 기억에 남아 있다. 정확하게 누가 잠들어 있는지 밝혀져 있지 않은 큰 무덤이었다. 우리 왕릉 비슷하게 하단은 일정한 높이로 석재가 둥글게 둘러져 있고 그 위에는 둥근 봉분이 올려져 있었다.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었는데, 너무 좁아서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무덤을 둘러보고 설명을 듣고 나자 넓은 곳을 찾아 돗자리를 펼치더니 작은 상을 놓고 커피와 박하차를 내놓았다. 간두라 차림의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밀가루를 튀겨 꿀을 바른 큰 과자가 접시 위에 얹혀 있었다. 누군가 하나 집어서 맛보라고 집어 주었다. 거절할 수 없었다. 아, 그 높은 당도는 밥맛을 완벽하게 삭제하는 것이었다. 


알제리의 식탁은 우리 식탁과 정말 대조적이다. 주변에 무성한 풀의 싹과 가지와 잎을 꺾고 뜯어 삶고 말리고 불리고 무치고 볶아 반찬으로 늘어놓는 우리 식탁과는 정말 다르다. 기후가 건조해 녹색 식물이 다양하지 않다. 물론 신선한 야채에 올리브를 뿌린 샐러드가 항상 곁들여지기는 하지만. 식탁의 차이에 대해서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다르지만 나름 맛있다고 하고 싶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지도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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