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설마 왕정으로 돌아가자고?: 프랑스

by 스토리아
hommage-louisxvi-nice-20230121.jpg.webp


왕정으로 돌아가다니, 이 무슨 시대착오적 망상인가! 그런데 왕을 다시 모셔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믿기 어렵게도 유럽에서 제일 잔인하게 왕과 왕비를 처형하고 공화정을 수립했던 프랑스에서 그렇다. 농담이 아니다. 루이 16세와 마리-앙투아네트를 단두대에서 처형한 날이 되면 매년 백여 명이 모여 위로의 미사를 올린다. 2025년 올해도 1월 21일 파리 한 성당에 모여 미사를 올렸다. 망해가고 있는 프랑스를 왕이 구해야 한다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까지 있다. 그들만이 아니다. 프랑스 국민의 17%, 즉 약 천만이 넘는 인구가 왕정복고에 찬성한다. 드골 대통령도 루이 16세의 후손 ‘파리 백작’을 왕으로 추대해 왕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했었다. “프랑스인들에게는 귀족주의 취미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유럽 여러 나라가 왕정을 유지하고 있다. 네덜란드,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벨기에, 스페인, 룩셈부르크 등등. 리히텐슈타인, 안도라, 모나코처럼 작은 나라들도 왕정이다. 해외 토픽 난에 간간이 뉴스로 등장하는 왕가의 혼인과 장례식이 그들의 존재를 상기시켜 준다. 파리의 치과나 고급 클리닉 같은 곳에 가면 대기실에서 왕가와 귀족들의 소식만 소상하게 전하는 잡지들을 읽을 수 있다. 독자들이 제법 있다는 뜻이다.


영국 왕실은 유럽 왕실을 대표한다. 통치 지역이 넓어 많은 관심을 받는다. 영연방에 속하는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를 포함한 14개국, 1억 3천5백만 인구가 영국 왕실의 통치 아래 있다. 2022년 96세에 사망한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을 TV로 지켜본 전 세계 시청자가 10억 명이다. 왕실의 핵심 멤버들은 최고 연예인 급에 속한다. 사진이 잡지 표지를 장식하고 일거수일투족이 가십 기사로 등장한다. 왕자 찰스와 여자친구, 다이애나 왕비와 남자친구들, 윌리엄과 해리 두 왕자의 불화와 결혼, 샬럿 공주나 루이 왕자의 재롱 등은 별로 재미도 없고 아무 짝에도 쓸데없지만 무언가를 계속 올려야 하는 언론에서는 최소한의 독자나 시청자가 확보된 버릴 수 없는 소재들이다.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이렇게 왕정이 유지되는 것을 보면 나름 장점이 있지 않을까? 몇몇 왕정주의자들의 주장은 매우 적극적이다. 왕정의 장점이 여러 가지라고 한다. 왕이 국가 내부적으로 구심점이 되어 국민의 결속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다. 항상 싸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정치가들보다 중립적이고 강력한 단합의 기제가 될 수 있고, 몇 년에 한 번씩 바뀌는 대통령보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국가를 외부에 대표하는 측면에서도 대통령보다 상징성이 높고 안정적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프랑스 국민의 ⅓이 국가적 통일성과 대표성 측면에서 대통령보다 왕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통계가 있다. 엘리자베스 2세 한 사람이 여왕으로 있는 동안 수상이 15명 바뀌었으니 일리가 없지 않다.


다른 논리도 있다. 자질의 문제다. 왕은 세습이므로 직업 훈련을 일찍부터 받는다. 그래서 일정 수준 이상의 교양을 갖추고 있고 법을 지키는 데 익숙한 믿을 수 있는 인물이다. 선출한 대통령처럼 도저히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불쾌한 충격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드물지만 객관적 입장에서 먼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시대를 앞서가는 식견을 기대할 수도 있다. 룩셈부르크는 군주의 현명한 정치와 외교 덕분에 독립 국가로 존속할 수 있었으며, 2021년 기준 1인당 국민 소득이 13만 3천 달러로 세계 1위인 국가가 되었다.


2024년 프랑스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하자 일부 왕정주의자들이 대통령제의 허점을 지적하며 언론에 출현했다. 그들은 대통령이 소수 국민의 지지만 받기 때문에 “역사적 지속성, 국가적 공정성, 위기 상황에서의 심판 역할 수행”이라는 세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한 때 15%라는 최악의 지지율로 떨어졌던 마크롱 대통령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드골 이후 프랑스 대통령의 자질은 계속 떨어지기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왕실을 유지하는 데 세금이 낭비된다고 불평하지만 따지고 보면 왕정은 경제적으로 이득이다. 영국에서는 공화정을 운영하는 것보다 3배나 싸게 먹힌다고 계산한다. 대통령 선거 비용을 들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긴 시간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엄청난 비용을 써가며 대통령을 뽑는다면 영국은 파산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뿐만 아니다. 왕실은 상업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크다. 왕실은 유지 비용의 평균 5배를 관광 수입으로 벌어 들인다. 크게 이득인 것이다. 대관식이나 결혼식 등 왕가의 행사는 세계적 관심을 끄는 대중적 이벤트로 자리 잡고 있다.


왕에 따라 다르지만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 유럽의 왕들은 대체로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다. 예컨대 엘리자베스 2세는 진지하게 일하는 군주였다. 매일 빨간색 가방에 넣어 배달되는 서류들을 읽고 사인했으며, 왕궁으로 매일 배달되는 300 통 편지를 처리했다. 보석이나 부동산으로 개인 재산이 있고 넉넉한 액수의 은행계좌가 있었지만 검소하게 생활했다. “설명하지 말고, 불평하지 마라.(Never explain, never complain). 증조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물려받은 가르침 덕분에 긴 기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조사에 의하면 영국 국민의 65%가 여왕에 우호적이었다.


여왕에게 해주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눈에 띄는 색상으로 투피스나 쓰리 피스 의상을 만들어주고, 자락이 날리지 않도록 스커트 아래 단에 납을 달아 준다. 모자는 바람에 날아가지 않는지 선풍기를 틀어 확인한 후에 쓰게 한다. 구두는 다른 사람이 먼저 신어서 편하게 길이 든 후에 신게 한다. 맨 손으로 악수를 해서는 안 되므로 늘 장갑과 핸드백을 준비한다. 행사장에 앉아 있을 때 바닥에 핸드백을 놓는 것은 매우 지루하다는 표시이므로 즉시 조처한다. 여왕이 말하기 전에 먼저 말해서는 안 되고, 눈을 똑바로 뜨고 오랫동안 마주 보지 말아야 하며, 절대 몸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접견하는 사람들에게 미리 알린다. 미국 대통령 영부인 미셸 오바마가 여왕의 등에 손을 대는 결례를 막지 못했지만.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는 일들이다.


프랑스인들이 영국 왕실을 미디어에 소개하는 것을 보면 몹시 부러워한다는 느낌이 든다. 너무 관심이 많다. 그리고 묘사의 언어가 대단히 정중하다. 왕을 단두대에서 처형한 콤플렉스 때문일까? 그렇게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프랑스가 왕정으로 돌아간다면 왕이 될 후보가 여러 명이다. 루이 14세의 두 아들에서 갈라져 나온 부르봉과 오를레앙 두 계열의 왕족들이 여러 명 살아 있다. 현재 ‘파리 백작’은 오를레앙 가에 속한다. 나폴레옹의 후손도 있다. 이들이 종종 TV 토크 쇼에 등장한다. 예전이었으면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을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저 사람들의 얼굴 어디에 국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권위가 있는 것일까? 도저히 알 수 없다. 함께 초대받은 시사 평론가, 역사가 등 패널이 왕손을 향해 잡스러운 질문이나 농담을 하고 같이 웃는 것을 보면 진지하게 다시 모시고 싶은 것 같지 않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왕을 단두대에서 처형했겠는가?


포스터 사진: 구글 이미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짐이 곧 국가다’: 잠깐! 그 말을 한 적이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