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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채현 Nov 15. 2023

홍의 소녀

2023 아르코문예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작

홍의 소녀 4화

아침부터 매미가 귀를 찢을 듯 울어댔다. 냇가에서 물놀이하던 아이들은 배가 고파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은봉아, 해지기 전에 산에 가서 망개이파리 좀 따 온나.”

“그건 어데 쓸라고요.” 

“그걸로 주먹밥을 감싸면 쉬지 않고 오래 가거든. 나가서 싸우지는 못해도 이런 건 나서서 도와야지.” 

“예, 후딱 댕겨오겠심더.”

은봉이는 개똥이와 함께 야미산에 올랐다.

“은봉이 히야, 참말로 의병이 되고 싶나?”

“하모.”

“내는 무섭다. 왜놈들은 도깨비같이 머리에 뿔 달리고 눈알이 빨갛고 그런 거 아니가?”

“울 아부지가 왜놈들은 덩치는 작아도 사납게 생겼다더라.”

망개잎이 든 자루를 메고 마을로 내려오는 길이었다.

“히야, 배가 살살 아프다. 똥 누고 올게.”

아랫배를 움켜쥔 개똥이가 저만치 뛰어갔다. 그런데 이내 허둥거리며 되돌아왔다. 무슨 일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히야, 히야, 저, 저기…”

말을 잇지 못하고 개똥이는 바위 너머를 가리켰다. 은봉이는 살금살금 바위로 다가갔다. 개똥이가 손가락으로 바위 아래를 가리켰다. 뭔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둘은 납작 엎드렸다. 수상한 사람 둘이 세간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마을 길을 가리키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간자다. 간자.”

“히, 히야, 그, 그럼 우짜노.”

은봉이는 재빨리 개똥이의 입을 막았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개똥이는 그 자리에 바위처럼 굳어버렸다. 은봉이도 가슴이 벌떡거리는 마찬가지였다. 

“가자. 빨리 알려야 한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마음은 십 리 앞을 내달리는데 몸은 굼벵이처럼 더뎠다. 엎어지고 미끄러지면서 겨우겨우 마을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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