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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드웬디 Jun 06. 2024

잔인했지만 행복한 여름밤

어제 휴일을 앞둔 여름밤은 참 예뻤습니다.

아침에는 긴팔 겉옷이 필요한 서늘한 공기인 반면,
새벽이 오기 전 밤에는 습기를 살짝 머금은 따뜻한 공기가 "아~ 딱 좋다!"를 연발하게 했습니다.

산책길의 짙은 흙냄새와 나뭇잎 냄새가 어우러지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는 느낌과 함께

한없이 눈물을 닦아내며 걷고 또 걸었던 작년 여름의 기억이 올라옵니다.

진흙 구덩이에 빠져서
올라가려고 할수록 발목이 더 푹푹 빠지고,
손에 잡히는 것마다 더욱 깊게 저를 내리꽂던 그때의 기억이 올라옵니다.

그리고 이내
그 지옥에서도 살아나온 제가 대견해집니다.

본인도 진흙더미를 잔뜩 이고서도
제 손을 잡아주겠다는 제 사람들이 더욱 고마워집니다.




아주 오래전 짝사랑하던 오빠를 포함하여 친구들에게 저녁을 대접하던 날도 여름밤이었습니다.

"요즘에는 바비인형 닮은 아이를 만나거든."​

자랑스럽게 말하는 말에 좋겠다고, 능력 있다고 치하를 하고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했던 날이 불쑥 기억에서 올라옵니다.

김형중님의 <좋은 사람> 노래를 들으며,
누가 또 내 이야기 막 가져다가 가사로 썼다면서 쓰게 웃었던 때의 풍경이 이렇게 또렷한데

이제 몇 년 후면 제 아들이 그때의 제 나이가 됩니다.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고 있는 저희 고딩이가 참 기특합니다.




변리사 2차 시험을 준비하면서
먹은 것보다 더 많이 토하고, 숨을 쉬지 못해서 10분에 한 번씩 독서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서 주저앉았던 그 계단이 선명합니다.

체력을 기르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부서져라 줄을 움켜잡고 줄넘기를 했던
그 신림동 골목길의 기억도 여름밤입니다.

조급해하지 말라고, 하다 보면 된다고 이야기하던 친구들의 말과 안쓰러운 눈빛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한 발 한 발 뚜벅뚜벅 그 길을 걸어 삶으로 '이루어 냄'을 보여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비록 그 자리에 주저앉아 친구들과 같은 길을 가지는 못했지만, 20년이 지나 지금의 저에게도 같은 말을 합니다.

"조급해할 필요 하나도 없어. 하다 보면 되는 거, 이제 정말 잘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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