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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숙경 Apr 25. 2024

오래 문밖에 세워둔 낮달에게

늦장마

늦장마 / 박숙경



아직 새벽이 도착하지 않았으므로

문을 열기까진 잠시 기다려야 한다는 걸 

둥근잎나팔꽃은 안다

배경이 되어주기로 한 하늘이 자주 울기 때문이다


쥐똥나무는 무시로 가지를 꺼내 직박구리의 배를 채운다


속눈썹이 짧아 겁이 많던 시절

눈썹이 길어 슬픔이 깊다던 낙타의 슬픔을 부러워한 적 

있다

눈물의 크기는 슬픔의 무게와는 무관하게

둥글고 길며 가늘게 흐르는 냇물이 된다


지금은 밤새 서성이던 눈물을 말리는 시간

어둠의 궤도에 서서 울면 우주가 흔들린다는 말을

농담처럼 던졌는데 정말 우주가 흔들린 것 같고

비에 젖어 여름이 다 갔는데 장마는 되돌아와서 유행가

처럼 지루하고

사람들의 모퉁이를 허물어 얼룩을 새긴다


노랗게 부푼 뚱딴지꽃이 겨드랑이에 숨겨둔 나비를 꺼

내면

몇 절기節氣를 걸어온 바람은 흐린 하늘에 나비를 올려놓는다


오늘부터 부피가 늘어난 슬픔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표백제처럼 쏟아지리


-시집『오래 문밖에 세워둔 낮달에게』(달아실시선7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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