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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숙경 May 20. 2024

오래 문밖에 세워둔 낮달에게

살구가 떨어져

살구가 떨어져


박숙경


하늘이 가벼워진 이유는

늙은 별을 내려놓듯 밤새

볼이 불콰한 살구 몇을 버렸기 때문


밤이 툭툭 터지는 바람에

놀란 쥐똥나무 꽃이 가득 뛰쳐나온 길을 걷다 보면

고향 집 뒤꼍으로 이어질 듯


참한 살구나무가

장독대 건반의 도, 레, 미를 손가락 끝으로 짚을 때마다

반음씩 굵어지던 살구


살구가 시큼 달콤 구르고 굴러 새끼들 입으로 들어가길 바라는

할머니의 채근은 아침으로 바뀌죠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어요

떨어져 애틋한 살구를 굽어보는 오월은 다정합니다


양손 가득 공손히

모셔온 살구는 할머니와 항렬이 같고요

시큰둥해지면 어디 에이드에 댈까요

잘 친 사기처럼 뺀질뺀질하게 최대한 말랑말랑하게


그러다 보면 몇 알의 달콤한 문장이 살구를 따라 발효되고요


바람 없이도 때가 되면 살구가

나뭇가지를 건너오듯이

나를 건너온 한 편의 시가

또 다른 나를 불러 다정하더라는 것, 요즘 알아가는 중이에요


-시집『오래 문밖에 세워둔 낮달에게』(달아실출판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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