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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도 Aug 14. 2023

2023년 6월 발리 여행-4

꾸꾸루꾸와의 만남

사누르는 발리가 관광 산업을 시작할 초창기에 개발된 곳이라고 한다. 점차 발리 전체가 관광지화 되기 시작하며 꾸따, 스미냑 등과 같은 지역이 비교적 최근에 발달하였는데 그 덕인지 지금의 사누르는 다른 지역보다 조용한 동네가 되었다. 주 고객은 대게 휴식을 찾아온 사람들이며, 다른 지역들보다 물가도 저렴하면서 서양식 음식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사누르는 발리섬 남쪽에 위치한지라 석양은 볼 수 없지만 바닷가에서 보는 일출이 장관이라는 정보에, 이튿날 첫 일정으로 5시 30분에 일어나 해변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눈을 뜨니 이미 6시가 지나 푸릇푸릇 해가 뜨고 있었다.

해는 내일도 뜨니까, 우리는 오늘의 조식이나 먹으러 가자. 어메니티로 제공된, 그마저도 마음에 쏙 드는 라탄 슬리퍼를 신고 슬렁슬렁 식당으로 걸어갔다. 식당은 벽 없이 탁 트인 공간이었기에 바로 옆 잔디에서 올라오는 새벽 풀내음이 향긋했다.


먼저 제공된 커피는 너무나 발리스러운 작은 주전자에 이곳의 상징, 시나몬 스틱이 함께 나왔다. (풀빌라의 이름이 까유마니스였는데 그는 인도네시아어로 시나몬, 계피라고 한다.)


심지어 커피도 정말 맛있었다. 직원분을 붙잡고 커피 이즈 쏘 굳! 쌍따봉을 날렸다.

세상에, 너무 예쁘잖아! 주전자 사진만 대여섯 장을 정신없이 찍던 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짝꿍이 이 멋진 분위기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잔디밭쪽만 자꾸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었다.


나: 왜 그래?

짝:... 저기 꾸꾸루꾸가 있어.

나: 그게 무슨 소리야? 꾸꾸루꾸라니?


이 친구, 혹시 너무 피곤해서 아직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짝: 저기 작은 새가 있는데, 다쳤나 봐. 꾸꾸루꾸라는 소리를 내면서 못 움직이고 있어

나: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애처롭던 꾸꾸루꾸. 한참을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눈을 씻고 보니, 정말 테니스공보다도 작은 새가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이따금씩 작게 '꾸꾸루꾸.. 꾸꾸루꾸..'라는 울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직원분들은 꾸꾸루꾸의 존재가 이미 익숙한 듯, 지나가다 허리를 숙여 그를 잠깐씩 보살펴주었다.



체크인할 때 조식은 뷔페식이 아닌 알라카르트 (A la carte, 단품 메뉴)로 제공된다는 이야기에, 조식 뷔페를 사랑해 마지않는 나는, 기대 없이 주문한 인도네시아식 나시고렝과 오믈렛의 맛에 큰 감동을 하며 진실의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식사를 마쳤다. 후식과일은 방으로 보내달라고 부탁드렸다. 우리 빌라의 아늑한 썬베드로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수박, 파파야, 멜론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달콤했던 파인애플. 썬베드와 색조합도 완벽하다.

배가 불러 도저히 수영복을 못 입겠다고 손사래 치는 나를 뒤로 하고, 짝꿍은 수영장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기 시작했다. 오, 꽤 잘하는데? 개헤엄에서 자유형 그리고 접영까지!? 알고 보니 아기스포츠단 출신이라고 한다. 질 수 없지, 또 하찮은 승부욕을 뽐내며 나도 입수. 하지만 그제야 고백했다.


'나 사실... 맥주병이야.'


따라서 이번 발리여행에서는 SNS에서 본 멋진 언니들처럼 수영복을 입고 예쁜 사진이나 남길까 싶었다. 그러나 짝꿍의 교육열은 남다르다는 걸 간과했다. 이번 여행에서 개헤엄정도는 마스터하고 싶다는 나의 목표에 이미 진지해져 버린 짝꿍의 눈빛. 음-파-음-파-부터 팔동작, 다리를 젓는 방법까지 세세히 일러주며 갑자기 호랑이 교관 선생님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한 바탕 수영 극기훈련을 당하고, 썬베드에 누워 따스한 해를 쬐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타코, 나초 등의 멕시칸 음식을 좋아하지만, 서울에선 너무나 비싸기에 자주 먹지 못하기에 점심은 근처 멕시칸 식당으로 정했다. 이번 여행에서 참 좋았던 건, 우리 둘 다 '발리에 왔으니 무조건 발리 음식만 먹어야 해!'라는 집착이 없었던 것이다. 그저 그날그날 마음 가는 대로, 그리고 그 나라 만의 퓨전 음식이나 그들이 재해석한 외래 음식도 경험해 보자 라는 가치관이 일치했기에 가능했다.


애피타이저로 시킨 치즈나쵸. 전직 뉴요커였던 짝꿍이 말했다. "뉴욕에 버금갈 만큼, 아니 뉴욕보다 맛있다!"


부른 배를 움켜쥐고, 근처 유명 젤라또집인 마시모 Massimo (발리 맛집, 사누르 맛집, 디저트 맛집 등의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1등으로 나오는 곳이다.)에 갔는데 헐, 줄이 길어도 너무 길다. 줄 서는 걸 싫어하는 우리는 잠시 고민 끝에 배도 부른데 잠시 기다려보지 뭐 라는 생각에 줄에 합류. 그런데 앞에 서있는 호주 대가족이 아이스크림을 구경한답시고 줄을 이탈하고 끊임없이 사람들의 발을 밟으며 돌아다녀서 이미 나는 폭발 직전이었다. 맛없기만 해 봐라. 한참 후 받아 든 젤라또는 맛있었지만, 10여 분간 줄을 서서 먹을만한 맛은 아니었다. 젤라또는 어차피 맛있다! 그 집이 그 집이니, 근처 다른 젤라또 집에 가서 먹는 걸 강력추천한다. 볼에 땀이 세 방울 맺힌 채 악에 받친 얼굴로 젤라또를 먹고 있는 나의 사진은 아직도 우리의 웃음버튼이다.



까유마니스 풀빌라가 좋았던 건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내까지의 셔틀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래봐야 차 타고 10분 남짓인 거리인데 큰길을 건너야 하기에, 손님 배려 차원에서 차량을 준비해 준 것 같다.

분노의 와플콘을 먹으며 빌라 측에 데리러 와달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한시라도 빨리 나흘간 허락된 우리 집에 가고 싶어 발을 동동 굴렀다.


시원한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밴을 타고 빌라로 이동하는 길.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기사님이 말했다.


기사님: 이부, 애프터눈티 한 잔 하시겠어요? 뭘 드시고 싶으신지 말씀해 주시면, 방에 준비해 드릴게요.

나: 오 마이 갓. 혹시 커피 있나요? 아이스로요.

기사님: 물론이죠! 아이스커피로 두 잔 해드릴까요?


할 수만 있다면 그를 헹가래라도 쳐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국인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수혈은 오후 필수 아닌가.

방에 차려진 애프터눈티 세트 한 상. 여기가 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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