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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도 Mar 11. 2024

파리에서 소매치기당한 썰

그런데 이제 마음을 소매치기당한...

런던 출장 일정이 끝난 후 휴가 겸 파리에 가보기로 했다. 태어나서 유럽은 처음인지라 떨리는 마음이 컸다. 무엇보다 여태 들어왔던 소문들을 (예-런던의 날씨와 음식은 최악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불친절하다 등등..) 직접 확인해 볼 생각에 기대가 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문과는 완벽하게 반대의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물론 중간중간 비가 내리곤 했지만, 런던은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해를 쨍쨍 비추어주었고, 음식은 너무나 맛있었으며 프랑스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다.

화창한 모습의 런던


 파리를 떠올렸을 때 드는 생각 중 하나는 바로 그 유명한 소매치기일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 국경을 가로지르는 유로스타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짐칸에 있는 내 가방은 괜찮을는지 괜히 걱정되어 여러 차례 캐리어를 확인하기도 했다.


*Tip: 유로스타 안에선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기차 티켓이 10만 원 이상이라 소매치기가 들어오기도 어렵고, 중간에 정차하는 역이 없기 때문에 가방을 훔치더라도 멀리 도망가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20킬로가 넘는 내 32인치 캐리어를 들고 도망칠만한 강심장 소매치기는 없었을 것이다.  


파리북역에 도착했을 때도 수상한 사람이 있을까 두리번거리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는데 올림픽을 앞두고 파리 치안 강화중이어서인지, 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상한 사람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며칠 후 시내 지하철에서 티켓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어린 서양 아가씨가 펑펑 울며 바닥에 주저앉아 매고 있던 백팩과 에코백을 뒤집어엎으며 손을 벌벌 떨며 물건을 찾고 있었다.

아마 귀중한 소지품을 소매치기당한 모양이었다.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옆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까지 손이 떨리며 공황이 올 지경이었고, 그 이후로 지갑과 핸드폰은 주머니에 넣어 손에 꼭 쥐고 다녔다. 항상 주변도 잘 살피고 다녔는데 다행히 수상한 사람은 마지막날까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Tip: ‘그래도 내가 먼저 조심하는 게 낫지, 방심은

금물‘ 차원에서 적어보자면:

1. 신용카드는 여분으로 한 장 더 챙겨서 호텔 금고 등에 넣어두고

2. 핸드폰은 손목 스트랩 정도에만 걸어두면 충분할 것 같다.

3. 여권은 굳이 챙겨 다닐 필요 없다. 택스리펀 신청도 휴대폰에 찍어둔 여권 사진이면 충분했다.

4. 현금은 런던/파리 2주 내내 1원도 쓰지 않았다. 굳이 큰 금액을 현금으로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특히 런던은 많은 곳에서 현금을 아예 받지 않으니 참고.


그리고 서울에 돌아온 지금, 파리에서의 5박 6일을 돌이켜보면 좋은 기억뿐이다. 이렇게 나쁜 기억 하나 없이 좋은 기억만 남은 도시도 처음이다.


미술품에 관심이 없는 나조차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람했던 오르세 미술관. 고흐의 자화상을 보았을 땐 눈물을 흘렸다. 이런 경험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예술이란 자고로 보자마자 오는 삘이 중요한 거지! 미술사를 알고 보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라고 외치던 나였는데 매우 반성하며 그의 인생을 더 알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그렇게 올 상반기 목표(중 하나)는 미술사 공부가 되었다.

아직도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날 울린 고흐 아저씨.


매 끼니 근사한 브라세리에 가서 호화로운 식사를 하는 것 대신, 동네에서 내가 좋아하는 재료가 들어있는 바게트 샌드위치를 사서 간단히 때우거나 마트에 가서 요거트를 사 먹곤 했다. 덕분인지 주변에 파리를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음식이 너무 짜고 느끼해서 입에 맞지 않아 고생했단 얘길 많이 들었는데 전혀 겪지 못했다.

 여행을 할 때 "지금 아니면 내가 언제 여기에 와보겠어!"라는 마음으로 낯설고 싫은 것도 억지로 먹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먹고, 골라서 하는 게 최고다.


봉쥬르! 멕씨! 실부플레! 빠흐동! 이 네 마디만 할 줄 알아도 사람들은 마법처럼 친절했다. 오히려 내가 쭈뼛쭈뼛 부끄러운 프랑스어 발음으로 봉쥬르 하며 다가가니, 봉쥬! 유 스픽 잉글리시? 라며 내게 먼저 영어로 말해주기도 했다.


친절한 아저씨는 내 샌드위치에 넣을 치즈를 대신 골라주기도 했고,

동네 빵집의 마담은 '빵이 너무 맛있어요, 한국에 가져가서 가족들과 함께 먹고 싶어요. 포장을 잘 부탁드립니다' (구글 번역기를 사용했다)라는 말에 카운터 밖으로까지 나와 정말 고맙다며 한참 수다를 떨다가 서비스로 맛있는 슈까지 세 개나 쥐어주시고, 빵은 진공포장 해주셨다. 전화번호도 주고받았다. 이렇게 나도 파리지앵 친구가 생겼다!


사람들이 불친절할까 봐, 말 한마디 잘못해서 타지에서 불호령이라도 떨어질까 봐 작게나마 걱정했던 나 스스로가 웃겼다. 정말이지 내 마음을 소매치기당해버렸다. 에펠탑에도, 파리라는 도시에도 아무런 로망이 없던 나였는데 이렇게 완전히 빠져버렸다. 벌써 다음 재방문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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