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예쓰 Jul 13. 2023

몇 년 느린 속도계

나의 속도를 찾기까지

  '느림', '뒤처짐' 등의 유쾌하지 않은 수식어가 최근 1년 전까지 내 인생 전반에 달라붙어 있었다. 


"왜 조금 더 일찍 깨우치지 못했을까?" 


  이유는 모르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나는 다른 친구들을 따라가고 있지 못했다. 말도 느렸고, 습득력도 부족했다. 나도 알고 있었지만 드러내고 싶지 않아 오히려 내가 엄청 남들보다 뛰어난 것처럼 행동하려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모든 것에 관심이 없었고 해보고 싶은 것이 없었다. 각 나이 또래마다 관심을 가지는 것들이 있는데, 나는 그런 것들이 전혀 없었다. "미래의 나는 멋질 거야"라고 되뇌며 아무 대책 없이 기연을 맞이할 준비만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지만, 나는 그 공부를 지겨울 만큼 안 했고 못했다. 암기하려고 노력해도, 시간을 많이 들여도 큰 소용이 없었다. 사실 공부를 못했던 이유를 합리화 아닌 합리화를 하자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청소년기는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가 상당히 중요하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람을 대하는 법을 학교에서 또래들과 시간을 보내며 배운다. 학창 시절 나는 친구가 아예 없는 왕따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들과 옛날이야기를 하면 그래도 항상 무리 속에 있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나는 친구들과 대화하는 법을 몰랐다. 아기가 옹알이를 하면서 입을 뗄 때까지에는 순차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정상적인 소통을 하기 위해 청소년기에 겪었어야 할 과정을 겪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본 기억이 없으며,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단순히 학창 시절 입안에 머금고 있던 다듬어지지 않고 다소 날카로운 느낌의 말은 많이 했지만, 그것은 소통이라 부르기 어려웠다.


  공부를 못했으니 자연스레 대학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고, 흔히 지방대라고 불리는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인서울을 하지 못했다는 주변 시선과 자격지심이 12시 정각의 하늘처럼 내 마음과 생각에 그늘을 만들었다. 


  어느 한 신병교육대대의 취사병으로 군 복무를 하게 되었다. 사회에서 전부 수상, 경력, 자격증 등 많은 것들을 이룬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로부터 자극을 받았다. 그 자극 덕분에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내 안의 속도계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속도계를 인지한 것도 잠시 전역 이후 처음 해본 주식에서 '초심자의 행운'을 겪고 난 이후 속도계가 아닌 계좌잔고에만 집중을 했었다. 0에서 1. 다시 1에서 0으로. 분산 투자 없이 공격적으로 했던 주식은 결국 실패했다. 그 이후 지겹도록 공부를 안 하고 못하던 내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실 100% 하고 싶다는 의지보다는 그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와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거부감이 더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TV나 유튜브 속 성공적인 이야기들을 들으면 공부를 못하던 사람이 수능 1등급, 공무원 합격, 고시 합격과 같은 결과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열심히 안한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 시기에 아무도 없는 대학교 기숙사에서 하루에 컵밥 1개와 초코파이 1개로 끼니를 때우며 1년간 열심히 공부했지만, 좋은 성적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 뭘까?". "나는 어떤 사람인 걸까?". "나는 왜 남들보다 느린 걸까?". 


  앞선 질문과 비슷한 질문들을 계속해서 던져보니 나는 나를 너무 몰랐다. 가장 좋아하는 색,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가와 같은 쉬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내지 못했다. 그 당시 여행 유튜버인 '빠니보틀'의 등장 이후로 각종 여행 영상이 유튜브에서 한창 유행하고 있었다. 우연찮게 그 영상을 본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해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 혼자 여행을 떠난 유튜버들은 자기가 누군지 정확히 아는 것처럼 보였고, 행복해 보였다. 살면서 그렇게 무언가가 해보고 싶어 잠을 못 잔 적이 없었는데, 여행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고 3일 내내 잠을 못 잤다. "여행 유튜버를 해보자!" 그날부터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고 알바를 다니며 여행경비를 모았다.

 

20년 넘게 멈춰있던 속도계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2022년 3월부터 7월까지 딱 4개월 동안 혼자서 아프리카 종단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지는 8개국. '튀르키예', '요르단', '이집트', '탄자니아', '잠비아', '짐바브웨', '남아프리카 공화국', '네팔'을 다녀왔다. 여행 유튜버로서의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많은 경험을 통해 시야가 넓어지고 자신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여행 중 '워크어웨이'라는 앱을 이용하여 튀르키예에서는 올리브 농장과 게스트 하우스에서 그리고 탄자니아에서는 아루샤의 NGO에서 봉사를 하였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죽을뻔한 적도 있고, 위험한 상황에 놓인 적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들로 인하여 내 안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속도계의 속도가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종단 여행을 통해 나는 속도와 관련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남들보다 느리고 뒤처져 있었다. 느리다는 의미가 단순히 행동이 느리다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면서 거쳐야 하는 단계들에 있어 남들보다 몇 단계 뒤에 있었다. 자신에 대한 이해, 학습을 하는 이유, 소통하는 방법, 부족한 경험 등 다양한 부분에서 말이다. 인정을 하고 받아들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그동안 부족한 자신을 자책하던 과거의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내가 내린 답은 다음과 같다.


  사람마다 각자의 속도가 있다. 받아들이거나 깨닫는 것 그리고 성장하는 속도 말이다. 남들과 달라도 혹은 느리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뒤로 후퇴하지 말고 천천히 앞으로 1보 전진하자. 너의 속도계가 남들보다 몇 년 느릴지라도.


  내 작가명인 리마페를 풀어서 쓰면 'live my pace'이다. 앞으로 브런치에서는 내 속도에 맞춰 사는 나의 삶에 대한 글을 작성해 보려고 한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 남들과의 비교 없이 나에게 집중하여 살다 보니 여러 가지 좋은 소식이 있었다. 특히 전공을 살려 J1 미국 인턴에 합격한 것이 가장 좋은 소식인 것 같다. 만약 이 글로 작가 신청이 합격된다면 1년 동안의 미국 인턴 생활기를 꾸준히 써보고 싶다. 감사합니다!!


1. J1 인턴 합격

2. J1 인턴 비자 발급 과정

3. J1 미국 인턴 생활기 (1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