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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관 Apr 01. 2024

거리

단골은 간판을 보지 않는다. 가는 길의 냄새와 불빛이 초대하는 대로 따라가기에 그렇다. 보는 것보다 장소를 느끼는 것이다. 농담 하나 해볼까? 얼굴에 홀려 결혼했다는 사람도 오랜 세월 정들면 얼굴이, 미모가 안 들어온다고 하더라. 거듭해서 농담 해볼까? 아내는 내 단골이니까 어디에 있어도 느낀다. 거리도 초월한 존재다. 얼굴 안 보면서 대화해도 그 감정 높낮이를 알아채고 반응할 수 있다. 

     

처음 간 외국음식점 메뉴판을 훑는 동안의 가벼운 망설임 같은 것들이 생의 동력이 되고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만들었다. 음식에 실망하면서 자신을 탓하고 주방장을 욕했다. 메뉴 점치는 게 직관까지 필요할 것이겠냐만 꼬치꼬치 물을 수 없었으니 자신의 감이 빈약한 근거다. 가게 분위기와 냄새로 파악해야한다. 역사가 되풀이되며 참사가 일어나듯이 사건 사고들을 보면 인간은 경험에서 배우는 일이 불가능한 것 같다. 나처럼 번번이 실패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낯선 곳에는 가지 않는다는 경험치만 얻었다. 망설임, 변덕 같은 것들을 즐기는 일도 괜찮다. 어처구니없음조차 즐기는 사람이 고수다. 내 경험치는 거리두기다. 망설이면 소심함으로 보일 테고, 이유를 붙여대면 구차하게 보일 것 같아 속으론 불안하면서 담담한 척 했다.     


경계하면서 풀을 만끽하는 거리, 사자가 달려들어도 도망갈 수 있는 거리두기가 생존방식이겠다. 내가 불안, 자폐 같은 생의 포식자들로부터 도망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통찰력이 부족해서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그걸 냉소주의라 포장하며 건들거렸다. 잘 모르고, 살아오는 내내 만사를 겁내던 겁쟁이였다. 냉소적 태도가 드러날 때는 지쳤구나 하면서 나를 달랬다.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과 대화하면 쉽게 지쳤고 그를 조롱하고픈 마음을 참느라 힘겨웠다. 자신과 흡사한 사람을 보면 반갑다가도 불안해진다. 졸렬함 미욱함 따위를 비추는 거울 앞에 설 때의 감정 말이다. 타인들이 지겨울 때가 많았다.    

 

새벽 고갯길을 과속하는 사람은 브레이크를 믿는 게 아니라 자신의 환멸을 확신하는 것이다. 죽어버려도 좋다는 심리라면 그는 염세주의자일까. 제트엔진 추진력을 확신하기에 떠오르는 비행기는 브레이크가 없다. 비행기처럼 살고 싶었고 그처럼 목적지와 귀환이 분명한 삶을 살고 싶었다. 분명함을 고집하는 것도 불안한 탓이다. 강자들의 태도는 무덤덤함이다.

     

슬픔을 감추는 일이 아니라 분노를 참는 게 어려웠다. 화는 자신이 지쳤음을 전달하는 방법이 미숙한 증거다. 슬픔 분노와 거리두기, 허약한 것들의 생존방식은 거리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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