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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관 May 13. 2024

줄어드는 것


집이 세 채라는 자랑을 들었다. 독을 많이 머금은 독사가 부자인지, 집 지을 거미줄을 잔뜩 챙겨둔 거미도 부자인지 묻고 싶었다. 거미가 나뭇가지 사이에서 바람에 부러지지 말자고,  포기하진 말자고 양쪽을 거미줄로  붙들어준다고 생각한 적 있다. 꽃이 지각하면 벌나비도 다른 꽃으로 가버리고 수분도 못해 열매를 잉태하지 못한다. 그러니 어서 피어나라고 가지마다 옮겨 다니며 부리로 두드리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는 박새 곤줄박이는 집이 있고  결혼도 했을 것이다. 이파리들 사이로 보였다가 순간 안 보이는 고것들이 마술사 같다. 마술의 매력은 틀림없이 눈속임인데 거기 속는 자신을 신기해하는 지점에 있다. 결국 자신에게 매혹당하는 셈이다. 전문가가 기만당했다면 더 크게 좌절할 테지만 현명한 사람은 자신 내부를 들여다보며 흥미로워할 것이다. 매사에 자신만만했던 자신을 눈가림한 것이 무엇일까 궁금할 테다. 자만조차 흥미롭게 들여다보는 사람이 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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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햇살이 길어지면 사랑할 시간이 남을 것 같고 또 서둘러 해가 짧아지면 사랑이 부족한 게 아니라 사람이 그립다. 읽던 책이 깔끄러워서 희미한 갈색자국을 남긴 커피잔을 바라보았다. 시집은 고급 청승 편집샵(編輯shop)에 가깝고 허풍 백화점이기도 하다. (마시려고 들었는데 비어버렸을 때엔 사늘해지는 게 싫어서 유리컵을 사용한다. 커피가 줄어드는 모습에서 책의 페이지가 넘어간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비누나 샴푸처럼 실용적으로 줄어드는 것도 있다.(비누는 제 몸이 야위는 걸 느끼며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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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하니 외려 목이 칼칼해서 쥬스를 찾았다. 콜라 대신한다고 산 무알콜 맥주가 멀뚱하게 모여 있다. 한 캔 마시고는 제쳐두었더랬다. 분전함 때문에 방문했던 전기기사분께 권했더니 황급히 사양하더라. 누구라도 서늘한 것들을 품고 있게 마련인데 호기심인양 거듭 물으면 냉장고를 활짝 열어놓는 셈이다. 스스로 닫을 수도 없는, 문 열린 냉장고는 어떤 감정일까. 이런 까닭은 아니고 냉장고 문을 연채로 찾는 걸 싫어한다. 찾을 걸 미리 정하고 가능하면 얼른 꺼낸다. 그런데 집이 여럿이면, 실거주 의무사항이라면 그이는   식구들을 어떻게 나누려나 궁금해진다. 독사는 싫고 거미도 부담스러운데 부럽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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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려고 셔츠 입는데 단추가 느슨해졌다. 이별 권태 같은 이미지들을 덧씌우려다가 이렇게 헐겁게 사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았다. 대충 사는 사람은 헐렁이가 아니라 욕망 같은 것들을 털어낸 상태를 유지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별 앞에 구질구질하고 한 번의 상처가 끝내 아물지 않는 사람을 편들어주고 싶다. 자기애 이기주의 원망 이런 게 뭐 그리 나쁜가. 그러나 둘 중 누군가가 매달리기 시작한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이 아니게 된다.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랑하는 능력의 전제조건이다. 그거 하나라도 붙들어야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또 오죽하겠나.  알랭 드 보통의 말과 같이 우리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 넣어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다. (『불안』,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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