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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관 Jun 01. 2024

길들여지는 것

 

마음은 미백치약 광고처럼 하얗(아름답)게 돌아오지 않았다. 버거운 관계들은 만능절단기만큼 시원시원하게 잘라지지 않았다. 시원찮은 시편을 서양 철학자를 들먹이며 상찬하는 평론가는 전문가 뉘앙스라도 풍기지만 안부를 덮어놓고 칭찬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속없어 보였다. '잘 지냈을 거라고 믿는다'는 인사가 좋다. 인간은 젠체해봐야 변성기를 피할 수 없는 존재일 뿐이다. 농담 같지만 가죽 보호왁스와 화장대 영양크림은 다를 것 없다. 보호왁스와 영양크림 정도는 구분하고 싶다. 이런 것들은 삶의 메시지 같은데도 주물거리는 마사지일 뿐이다.       

연애유지, 성취에 관한 숏츠 레서피(shorts recipe)가 난무하는 세상이지만 저녁엔 마늘을 먹지 않는 일이 더 이지적이다. 그거 먹은 남자와 딮키스할 여자는 없다. (숏츠에서 들은 멘트다). 비아그라로 여자에게 행복을 주겠다는 남자는 차마 말 못하겠다. 사랑받으려면 잘 씻어야한다.     

니체 식으로 지껄임, 명랑, 쾌활보다 조금 가라앉은 태도가 있어 보이기 때문은 아니고 숫기 없는 탓이다. 어지간하면 시시덕거리거나 크게 웃지 않는다. ‘요즘 어떠세요’라고 물을 때 ‘신나고 행복해요’ 하면 흔치 않아서 낯설다. 반면에 ‘되는 일 하나 없다’고 한숨 쉬었다가 돌팔이 충고를 잔뜩 들었다. 불행에 길들여졌다는 말에서 불행은 처참이 아니라 담담함, 지극함에 가깝다. 이걸 긍정적 불행이라 말해도 될까. 나대지 않는 걸 불행(무슨 일 있을 것)이라 오인 한다. 

롯데리아에서 햄버거 말고 1,500원짜리 아이스크림 주문하면 사장도 아닌 알바 눈치가 보이고 고급 갈비집에서 저렴한 불고기 시키는 것도 돈 쓰고 눈치먹는 일이다. 자신이 불행에 길들여진 것도 모르면서 엄살을 겸손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말을 줄였을 때 겸손하다는 말을 들었다. 플라톤은 '비극은 여자들이나 좋아한다'고 했단다. 고대 그리스의 멘트다. 비극을 보면서 제 운명에 대한 공포를 배설하는 것이다. 배설하면 시원해진다. 길들여짐은 한마디로 태도다. 커다란 바위가 가로막았다고 절망할 일 아니다. 미켈란젤로는 대리석 덩어리 앞에서 그 안에 형상이 들어있다고 믿었다. 그 형상이 삶의 평온 아닐까. 어떻게든 꺼내야한다.      

대설 예보에 스노우타이어로 교체했는데 접촉사고 나면 어떻게 할까. 기상청보다 제설작업을 안 한 시장에게 다음 선거에서 두고 보자는 협박이 효과적일 것이다. 작금의 나태가 미래의 실패를 낳을 거라며 나는 나를 협박하며 살았다. 바람은 막을 길 없지만 돛은 조정할 수 있다. 벌을 따르면 꽃을 만날 것이고 파리 따라가서 뭘 볼지는 명약관화다. 숨을 잘 참는 해녀가 큰 전복을 잡는다. 성공은 잊어도 되지만 실패한 일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브레히트) 

      

Inge Schu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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