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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관 Oct 15. 2024

분수

       

여름은 쏟아지거나 솟구친다. 낮잠이 그렇고 지키지 못한 약속들도 떠오른다. 신록은 손 대 볼만큼 어여쁘지만 8월의 암록(暗綠)은 징그러울 정도로 극성스럽다. 뱀 때문은 아니더라도 뻗쳐오르는, 제 힘을 주체 못하는 수풀엔 들어가기 머뭇거리게 된다. 신록은 제 미래에 골똘한 열여섯, 초록은 느물거리는 40대다. 여름은 여성들 차림새가 아찔해지는 시절이라서 남성의 극성스러움을 염려하는 것이다.      

파초 잎이 비 듣는 소리를 내는 바람에 창밖 밤비를 알았다는 백거이(「야우」)는 없고 마당도 없고 유리창만 있는 아파트환경이라서 흘러내리는 빗물만 볼 뿐이다. 그것들은 흐느끼며 흘러내리는 몸짓으로 보이다가 ’와락‘ 끌어안는 연인으로 보인다. 왜 있잖은가 물방울이 가까워지면서 합쳐지는 모습 말이다. 부사가 구박받더라도 여기서 ’와락‘ 말고는 없다. 불볕 없는 동산을 통해 분수로 가는 동안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리는 초록이 징그러웠다. 초록보다 배우 오광록이 어울린다(명예훼손 의도 없다).     

분수의 끝을 사랑했다. 솟구쳐 오르다가 힘이 빠지면서 허공에서 멈칫하는 무중력상태, 희망과 실망이 뒤바뀌는 순간의 감정 말이다. 힘겨울 때는 어차피 떨어질 것이라고 체념했다가 중력에 반항하는 몸짓이라고 희망을 가져보았다. 삶을 무난하게 산다면 실(희)망이 변덕일 테고 무언가를 끝없이 추구하는 사람에겐 재도전의 계기일 것이다. 분수의 끝을 미화하다가 펌프라니 생뚱맞지만 세상은 그런 안 보이는 힘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많았다. 능력부족을 알아채고는 비겁하게도 펌프라는 후원자를 아쉬워했었다. 오늘의 내가 싫어지면 내가 이제 성장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은 천국이 아니다. 선퇴(蟬退)처럼 버려야 성장한다.     

조무래기들의 깔깔거림과 물소리가 합창한다. 사진 찍으려다가 멈칫했다. 빈 그네를 찍다가 아이들 엄마가 지금 뭐 하느냐며 달려온 적 있었는데 빈 순간에 찍었으니 당연히 내 핸드폰엔 아이들이 없었고 그이는 머쓱해서 돌아갔다. 엄마들이 분수 주변 벤치에 수건 들고 기다렸다. 아이들 물놀이를 본인들도 간접체험하는지 수다가 분수 같았다. 본의 아니게 엿들었는데 대화의 범위가 가족을 벗어나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해소했으니 오늘 저녁 식탁등이 유난히 밝다고 생각할 것이다. 젖어서 몸이 다 보이는 아이들, 특히 여자아이들 엄마는 칼끝 경계를 세울 테니까 가동 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끝나자 아이들은 엄마라는 사랑의 분수에게로 달려갔다. 어른의 엄마는 고요한 호수인데 녀석들에겐 놀아주는 분수인가보다. 감싸면 가시도 보드라워질 것 같은 타월로 아이를 품에 안았다. 달려가는 아이들, 환해지는 엄마들, 노을을 준비하는 하늘. 


******

야우(夜雨)....................... 백거이     

早蛩啼復歇 殘燈滅又明(조공제부헐 잔등멸우명):

초가을 귀뚜라미 울다가 문득 멈추고, 새벽의 등불이 꺼질 듯 다시 밝으니

隔牕知夜雨 芭蕉先有聲(격창지야우 파초선유성):

창밖에 밤비 내리는 줄 알겠네, 파초 잎 빗방울 소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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