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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관 Mar 08. 2024

생인손

봄이 온다. 춥다는 게으름의 핑계가 사라지고 있다. 결심은 손닿지 않는 등짝에 파스를 붙이는 일이다. 몇 장을 버려야 해내고 환부를 빗나가니 효과도 없었다. 봄이 온다. 젖은 눈 밟는 뽀드득 소리가 비 젖어 찰박거린다. 겨울비는 빙판을 만들고 눈을 사칭하는 악역이었다. 봄이 온다하지만 무언가 스미는 예감이고 또 무엇인가가 멀어지는 느낌이다. 실업자 된 방한용품 입간판을 동료인양 바라보곤 했다. 계산대에 물건들을 올려놓는 당신을 보며 통장을 떠올렸다가 계산원의 손놀림에서 생계를 떠올렸다. 잔고가 그득하다고 랑만의 봄인 것은 아니지만 통장이 배부르면 풍경을 만끽할 수는 있다. 절경을 즐기는 걸 "눈부르다"고 하련다.      

자신은 흡족하지 않은 작품인데 매력 있다는 독자에게 미소를 보내는 일을 곱씹었다. 시인의 타락은 타인의 평가 속에 안주하는 자세다. 전위적이라는 상찬에 거기로 몰두하는 행태일 테고 수사법을 도두보았다 해서 핍진(逼眞)은 외면하고 수사에만 치중하는 꼴이다. 진정 창조자라면 독자(타인)의 기대를 뒤집는 작품을 해내야한다. 이렇게 허풍떨지만 칭찬에 힘을 얻을 때가 많았다.     

재능도 없이 부지런해서 산문집을 냈다. 지인들의 덕담을 어쩌다 만난 행운,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 여겼다. 재주도 없이 덕담 들으니 행운이다. 그것들을 소중히 갈무리해두면 가슴이 캄캄해질 때 촛불이 되어줄 것이다. 고립감에 시달렸는데 사무치게 고마운 분들이다. 행운도 노력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바보같이 더 욕심을 내서, 독자들이 내 작품을 읽고 세렌디피티를 떠올리면 행복하겠다. 그것에 우쭐거리면 어른의 "우쭈쭈"에 방글거리는 갓난쟁이 꼴이다. 겸손도 반복되면 더 칭찬해달라는 욕심으로 느껴져 비위 상한다. 각설하고, 고마운 분들이 많다.     

시를 매만지다가 세상에서 가장 못된 여자에게 빠진 남자가 되었다. 부모는 제 아이들이 우애 깊기를 바라지만 내 시는 서로 달라서 밀고 등 돌리는 사이이기를 바랐다. 비슷비슷한 것들끼리 몰려있다면 예술이 아니고 컬렉션(collection)이다. 몰개성에 빠진 자신을 갱신하고 타협하려는 나태함을 배신하는 게 참 예술 아닐까. 그러나 꼭 하나는 생인손 같은 아이가 있어서 끌어안고만 있었다. 그 아이들이 퇴고지옥으로 초대했다.     

봄의 문장은 내가 만든 생크림케이크다. 입맛에 맞는다고 베어 물다간 보여줄 게 없어진다. 남들도 그거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 장갑은 눈사람을 기억하고 내 모자엔 부사 같은 망나니들이 스미어 있을 것이다. 재연배우처럼 캐릭터 없는 봄을 내놓고 싶진 않다. 매화 목련 벚꽃이 난생 처음인양 드러낼 것이다. 애써 피우고 져버리니까 꽃은 상심이 잦은 것들이니 곱게 맞아주련다. 꽃샘추위는 꽃잎 떨어트렸다는 죄책감의 몸부림이다. 위로하는 봄, 그미의 춘수(春瘦)가 데워질 때까지 기다려주는 봄이 목련 가지 위에 앉아있다. 손이 따듯한 귀신처럼.

Jamie Hei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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