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거리는 몇 미터입니까?
어떻게 하다 보니 생일에 맞춰 고향을 내려가는 일정이 잡혔다. 아침 8시의 이른 기차표라서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살다 보면 어떤 생일은 생각지도 않은 이들까지 축하해 주어 고마운 마음을 한가득 가슴에 품고 지난 적이 있고 또 어떤 생일은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도 잊어버려서 한없이 씁쓸하게 지나갔다.
생일을 서로 챙겨주는 것이 어떤 심적 작용을 통해 이뤄지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그것은 메신저나 SNS에 누군가의 생일이 공지되었을 때 스스럼없이 선물을 할 상대로의 규정과 비규정.
왜 그때는 그 상대였는데 지금은 아닐까.
왜 그때는 그 상대가 아니었는데 지금은 맞을까.
얼마 전 읽은 불교의 교리에서는 모든 사람의 인연을 연기법에 입각해 조건과 상황에 따라 이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이것을 단어 그대로 본다면 사실 조금 서운한 내용이다. 하나 살다 보면 그것은 진리다. 시기에 따라 만나는 인연들은 시절이 지나면 변한다.
수많은 인연들 중에도 시기에 따라 마음이 가는 인연들이 있었다. 젊음의 전반을 함께한 솔메이트가 있었고 또 동경과 존경으로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상대가 있었다. 누구는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반사적으로 마음이 가는 상대였고 또 누구는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도 즐거워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들 역시 내게 그랬을까… 수천 장 남겨진 사진첩에서 보이는 그 시절 그 웃음과 표정들. 분명 그 순간은 계산 없이 서로가 함께였을 것이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그렇게 죽고 못살던 시절인연들은 생일이 되어도 딱히 서로의 안부를 묻지 않는다.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생일안부 따위 겉치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나 확실한 건 내버려 둔다면 그렇게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조건과 상황은 깊이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얼마 전 거래처분께 작은 선물을 담은 생일 축하메시지를 보냈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이모티콘을 주고받았다. 아마 내 생일이 되면 비슷한 인사를 주실 것이다. 관례적인 듯해도 마음이 작게나마 오가면 그것은 인연으로 이어져있다고 볼 수 있을까.
왠지 이번 생일은 조용할 것 같다. 경기 따라 소비력도 약해진 상태고 나 역시 그렇게 적극적으로 상대들을 챙기지 못해 생일안부를 기대할 상황이 아니다. 하나 이렇게 매번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인사는 더 소중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고 선물할 수 있는 사이. 그 거리감은 몇 미터일까? 가장 가깝게 두었던 그들을 얼마나 밀어내야 그 거리에서 서로를 축복해 줄 수 있을까.
‘아빠에게 무슨 선물을 줄까나~’
생일축하는 4살 아들의 재롱정도면 이미 리미트를 채워준다. 마흔의 생일에 있어 내가 바라는 선물이 있다면 단절되어 가는 인연들을 그 거리감 정도에서 서로 바라볼 수 있게 될 수 있게 되는 것. 서로의 삶의 무게를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를 밀어내세요. 당신을 온전히 지켜볼 수 있는 거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