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텀 히말라야 산행기_6
아침은 생각보다 상쾌했다. 전날의 증세는 아직 남아있었지만 하루를 쉬어간다는 심리적 여유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몸이 가볍다. 크리슈나는 오늘의 일정에 대해 4000미터 이상의 고산에 적응하기 위한 약간의 트레이닝데이라고 전날 얘기했다.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마을 앞의 계곡을 건너 맞은편 강가푸르나호를 보기 위해 나섰다. 호수조망을 위해서는 200미터 정도의 급한 경사언덕을 올라가야 하는데 이것이 고도에 대한 적응훈련인 셈이다. 하나 훈련은 생각보다 힘들다. 오히려 트레킹에 비해서 훨씬 급격한 경사를 타야 하기 때문에 10분도 채 되지 않아 겉옷을 허리에 묶고 등줄기는 축축해졌다. 한 시간 정도를 올라 채자 오른쪽으로 강가푸르나호가 보인다.
안나푸르나 서킷을 걸으며 산맥이 내는 적막한 울림 속에서 가끔 자연의 굉장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게 강가푸르나의 협곡에서 눈이 무너져 내리거나 눈사태가 나거나 할 때라고 한다. 그렇게 녹아내린 눈이 모여서 흘러든 호수가 이 강가푸르나호다. 호수 뒤로는 5000미터 이상의 빙하들이 자리하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 물빛은 전형적인 석회호색인 불투명 에메랄드색이다. 호수를 구경하며 다시 코스에 올라서며 마주치는 서양트레커에게 '이건 연습코스가 아니야'라고 농을 건네자 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올라선 전망대에서 왼쪽으로는 강가푸르나호를 조망하고 오른쪽으로는 여태 걸어온 피상쪽의 협곡을 바라보니 매일 느끼지만 역시나 그 비현실적 풍광에 다시한번 놀란다.
마을로 하산한 뒤 일정 중 처음으로 야크고기를 먹어본다. 야크고기가 들어간 카레였는데 보통의 카레보다 더 진한 식감이다. 며칠의 일정으로 피로는 제법 누적되어서인지 오랜만에 낮잠을 충분히 자고 저녁이 가까워질 때 즈음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물론 상대적인 것이겠지만 열악한 마을에서도 아이들의 눈은 반짝인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망설임 없이 포즈를 취해주는 순수함이 좋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 마을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소와 염소들, 건강하고 다부져 보이는 마을청년들과 그걸 구경하는 트랙커들. 일상적인 마낭의 풍경이다. 날씨는 오후가 들어서 역시나 스산함이 몰려왔다. 차를 한잔 하며 몸을 녹이기 위해 레스토랑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오늘은 어제에 비해 투숙객이 적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이유에서인지 왠지 조금 청승맞아졌다. 그래도 뭐 이런 무드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는 또 많지 않겠는가? 한참을 앉아 음악과 풍경을 즐기고 숙소로 들어왔다.
분명 이 고산에서의 밤하늘은 환상적인 풍경을 보장할 텐데 왠일인지 며칠 동안 밤에 바깥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야간에는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기도 하고 혹시나 컨디션문제 또는 안전문제를 생각해서 숙소를 떠나지 않았지만 오늘은 옷을 여미고 한번 나가보았다. 하나 어째서 인지 매일 오후부터는 구름이 끼고 오늘도 역시 밤하늘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흐릿하나마 보이는 별의 숫자는 한눈에 파악될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아쉬움을 안고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해본다.
트레킹을 한 지 4일째. 해발 3500미터 정도의 고산지대속이다. 그간의 마을에 비해 비록 규모가 있는 마을이긴 하나 밤이 되면 어둠과 안개가 자욱하다. 외롭다고 여기면 한없이 외로울 풍경. 하나 이렇게 고립되며 스스로 지워버리고 비워버리는 건 두고 온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재정립시킨다. 어쩌면 이런 종류의 여행은 도피성이라고도 볼 수 있고 '히말라야 트레킹'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붙어있지만 나 자신의 상황은 그렇게 웅대하지 못한게 사실이다. 간절히 무엇이라도 부여잡고 일어나기 위해서에 가까웠으므로 그 추상적 바람이 내 삶에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쩌면 일정의 하이라이트에 들어서기 이전인 이 날 밤에 나는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이것은 동화처럼 내 삶을 바꿔주지 않는 ‘과정’ 그 자체의 과정이었던 것을. 그러나 '의미'로써의 이 여정은 내 삶 전반에 명확히 채색된다는 것을.
7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