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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협 Mar 27. 2024

#허수경 작가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시인 박준이

나에게 소개해 준 작가!


그의 책 <계절 산문>에 나온

'선물 - 수경 선배에게'라는 글에서.


오늘 소개하는 허수경의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에도

이 글이 담겨있었다.


역으로 읽었다면 허수경 시인이

박준 시인을 소개해 주었을 터이다.


책 읽다가 이런 묘미를 발견할 때면

누구처럼 '유레카'라고 외치고 싶다.


이렇게 연이 되어 읽다 보면

첫 낯섦은 곧 친밀함으로 바뀌어 간다.

마치 오랜 친구였던 것처럼.


책 읽기, 이래서 놓을 수 없다.


다음은 허수경이 소개해 준

이문재 시인의 책이 기다리고 있다.


◆ 책 읽다가 날것 그대로 쓰다  


'물질이든 생명이든 유한한 주기를 살다가 사라져갈 때 그들의 영혼은 어딘가에 남아 있다.(작가 소개 글 중에서)' - 작가 소개 글이 짠하다. 그녀의 말대로 지금 그녀는 사라져 갔고, 그 영혼은 이 책에 남아 있기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서 커피를 한잔 끓여 마시고 그길로 제일 일찍 오는 버스를 타고 연구실로 매일 간 적이 있다. 아무도 없는(p32)' - 이렇게 매일 그녀의 새벽을 깨우게 한 것은 백 년도 훨씬 전에 나온 책들이다. 거기에 있는 빵 굽는 한 여인의 사진을 보고 허기를 느낀다는 그녀. 조금은 엉뚱해서 정겹다. 그 허기가 지금 나에게까지 전해진다. 꼬르륵꼬르륵.


이 책에는 여덟 편의 편지가 담겨 있다. 수신인들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녀의 선배, 선생, 벗 들이기에. 그러다 보면 허수경이 소천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소천하신 분들의 소식도 접하게 된다. 이럴 땐 뭔지 모를 애잔함이 느껴진다. 메멘토 모리!


'<동백꽃>(p212) - 소설이나 산문을 읽다 보면 동백꽃이 자주 나온다.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그 장관에 취한 글들이었다. 허수경의 글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이 꽃은 지지 않고 '제 그늘에 저를 던진다'라는 것을. 난 아직 이 광경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1999년에 뒤늦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같은, 독일인이 자신의 과거를 직접 진단하는 글이다.(p251) - 나는 이것을 영화로만 그것도 어렴풋이 본 기억이 난다. 큰 아이가 이 책을 사서 읽는 것도 알았지만 그렇게 관심을 두진 않았었다.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인 독일인이 담담히 들여다본 나치 시절. 그것이 궁금해져서 조만간 읽어 보려 한다.    


허수경은 열악한 발굴 현장에서 김혜순의 시집을 읽고, 박준은 선배인 허수경이 그리워 그녀의 고향 진주에 갔다가 올라오는 길에 그녀의 시집을 읽는다. 시인들도 누군가의 시를 읽으며 그들의 고난(苦難)한 삶에 위로를 받고 있구나. 나에게 아직 시가 많이 어렵지만 꾸준히 읽다 보면 어느덧 이런 정 깊은 반려가 되어 줄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김혜순 시인이 궁금해서 도서관에서 그녀의 이런저런 책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 69세인 그녀가 등단 45년 만에 세계의 첫 주목을 받았다는 기사를 접했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 소식이다. 축하드립니다. 나에게는 무명한, 이런 유명한 시인들을 알게 해 준 허수경 시인에게 감사한다.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


기숙사에 살 때, 내 방에서 내려다보이는 풀밭으로 토끼들이 자주 나타나곤 했다.


...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기숙사로, 비록 당근 때문이지만 찾아오는 녀석들이 참 예뻐서 나도 모르게 욕심을 내고 말았으니...... 녀석들 중 두 마리의 목에다 리본을 달아준 거다...


어느 날 나는 기숙사 주차장에서 차에 치인 토끼를 보았다. 그리고 푸른 리본도 보았다. 나는 또 욕심을 내다가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이다. 내 것이라고 표시하기, 얼마나 가소로운 욕심이었는가, 마치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 것이라고 표시되기를 바랐던 그때의 눈먼 나처럼....


- 허수경의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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