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일이지만 그보다 먼저 나에게 그동안 익숙했던 시간과 공간을 얼마쯤 비우고 내어주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p14)' - 시~작! 익숙했던 것을 내려놓는 다짐이, 훌훌 털어버리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시작을 했는데도 제자리를 뱅뱅 돌고 있는 느낌이 계속되는 이유다.
시인의 삶. 거기에 맺어진 다양한 맛이 가득한 글들. 짧지만 그 속에 뭔가 모를 '뭉클함'이 숨겨져 있다. 필사하기를 오늘은 잠시 멈춘다. 내 마음속에 오롯이 담아 그것을 음미하고 싶어서.
<선물 -수경 선배에게> - 수경? 아~ 허수경 시인!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 박준 시인과 친분이 깊었었구나. 언제가 그녀에 대한 글을 좀 깊게 다룬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 검색도 해가며 꼭 읽어야지 했는데 그동안 잊고 있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좋아하는 이에게 좋아하는 것을 건네는 법'이라는 박준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벌써 11월 산문까지 왔다.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것처럼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그러기에 지금이, 오늘이 더 소중한 이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미 타계한, 나에게는 낯선 유명 시인들의 이름을 보게 된다. 박준 시인의 마음에 시 방울들을 떨어뜨려주었을 그들의 시도 궁금해진다.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살아오면서 상처가 되는 말들을 종종 들었습니다. 내 마음 안쪽으로 돌처럼 마구 굴러오던 말들, 저는 이 돌에 자주 발이 걸렸습니다. 넘어지는 날도 많았습니다. 한번은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상대가 나를 걱정하고 생각해주는 사람인지, 그래서 해온 조언인지. 아니면 나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면박을 주기 위해 하는 말인지. 앞의 경우라면 상대의 말을 한번쯤 생각해보고 또 과한 표현이 있다면 솔직하게 서운함을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뒤의 경우라면 그 말은 너무 귀담아듣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자격은 나를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걱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만 가질 수 있으니까요. 빛과 비와 바람만이 풀잎이나 꽃잎을 마르게 하거나 상처를 낼 수 있지요. 빛과 비와 바람만이 한 그루의 나무를 자라게 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