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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협 Mar 13. 2024

#김초엽 작가 2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작가와의 첫 만남은

소설이 아니었다.


22년 단풍이 붉게 타오를 때

나는 온통 그녀의 솔직 담백한  

글들에 푹 빠져 있었던 기억이 난다.


<책과 우연들>이라는

그녀의 첫 에세이를 통해.


그 후 소설로 꼭 다시 만나겠다, 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1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야

그녀의 소설을 접했다.


바로 두 번째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다.


그때 생긴 그녀와의 첫 접점이

이번에 또 하나의 점이 만들어지면서

이제는 아주 작은 선의 모양을 갖추려 한다.


◆ 책 읽다가 날것 그대로 쓰다  


'우리는 광막한 우주 속을 홀로 떠돈다. 하지만 안녕, 하고 여기서 손을 흔들 때 저쪽에서 안녕, 인사가 돌아오는 몇 안 되는 순간들... 그 짧은 순간들을 그려내는 일이, 나에게는 그토록 중요한 일이었다.(p322-3. 작가의 말)' - 공감이 간다. 우리 각자는 외롭게 떠도는 행성처럼 서로 다른 인식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접점이 생기면서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고 그리고 지인이 된다. 그러면서 다양한 선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관계 속 찰나들이 이 소설들에 가득 담겨 있다고 하니, 이제 그 속으로 Go! Go!  


<최후의 라이오니> '마지막 순간 나는 라이오니로서 셀의 손을 잡아 주었다.(p52)' - 인공지능의 발달이 결국에는 인간을 위협하게 될 거라는 부정적인 소식과 이전 산업혁명 시대에 겪은 것처럼 윈윈 할 거라는 긍정적인 예측도 있다. 김초엽은  이 소설에서 후자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과 기계의 감정적 교류가 가능해지고 신뢰 코드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나도 바라기는 여기에 한 표!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이야기를 이리도 흥미롭게 풀어갈 수 있나? <책과 우연들> 그 책을 보지 않았다면 그냥 천재 작가!로 알았을 거다. 이를 위해 얼마나 공부하는지 알기에 이 짧은 소설들을 그냥 대충 읽을 수가 없다.


처음엔 낯선 단어, 인물, 배경들이 열거되지만 읽다 보면 어느덧 그것들이 친숙해진다. 한 편의 영화를 본 것처럼 내 머릿속에 영상화되어 저장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긴 여운. 기발한 상상력만 가득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진한 인간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 마지막 소설 <캐빈 방정식>을 이제 막 읽었다. 그녀만이 줄 수 있는 대체불가한 상상력에 놀란다.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는 것들을 영상물도 아닌 글로 표현해 내는 김초엽 작가의 필력!에 또 한 번 놀란다.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위해 그와 관련된 책들을 독파한다는 그녀. 이 책에 담긴 일곱 편을 창작하기 위해 그녀는 얼마나 많은 책들을 읽었을까? 그 정성과 노력이 느껴진다. SF 소설이 아직 뭔지 잘 모르지만 대강은 이런 거구나, 느끼는 시간이었다.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언뜻 죽은 고목처럼 보이는 오브들은 이 행성 전체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땅 위로는 몸의 일부를 드러낸 채, 행성 자체로 기능합니다. 그들은 개체인 동시에 집단이며, 개체로서의 지성과 집단으로서의 지성을 모두 지닙니다. 집단으로서의 오브는 사실상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가지요... 그리고 이들의 생명 활동과 대사 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바로 대기 중의 루티닐입니다. 벨라타 생물들에게 그것은 정상적인 생태계 순환을 구성하는 주축이자 물질대사 고리의 중요한 요소이지요.


먼 우주에서 온 탐사선이 이 행성에 도착했을 때, 오브들은 탐사선에서 내린 작은 생물들을 면밀히 관찰했어요. 그리고 오브들은 곧 알아차렸습니다. 이 개체들은 다른 환경에 취약하고 지극히 생태 의존적인 생물이며, 심지어 폭력적이고 비도덕적이지만, 어쨌든 그들은 모두 자아를 가지고 생각하며 움직이는 존재들이라고요. 오브들에게 우리는 불청객이었지요. 그들은 우리가 단지 죽어가도록, 절망하도록, 혼적도 없이 사라지도록 내버려둘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연민할 줄 아는 존재였으니까요.


- 김초엽의 <방금 떠나온 세계, 오래된 협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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