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만은 그날 처음 알았다... 내가 바로 '거만한 바보'였다.(p15~9)' - <파인만!>이라는 책에서 난생처음 만난 리처드 파인만. 유시민 작가는 그를 만나 불편한 진살을 깨닫는다. 자신이 바로 '거만한 바보'였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 결국 과학 입문이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나이 들수록, 더욱 한 분야의 전문가일 경우 이렇게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마디 말만 듣고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내뱉었던 그 거만했던 내 모습들. 내 속에 있는 이런 거만의 덩어리들을 이런 책들을 통해 꾸준히 깎아내리라. 죽기 전에 이런 바보는 면해 보자는 각오로. 파이팅!
'다들 그런 것처럼 나도 수학이 어려워서 문과를 선택했다.(p20)' - 운명적 문과였다는 유시민 작가의 고백.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수학을 잘 했지만 인문이 좋아서가 아니라니. 나도 운명적 문과생이다. 그래서 묘한 동지애를 느낀다. 그의 과학 도전기에 애정이 더 가고 있다. 책을 바짝 당겨 보게 된다. 낯설고 이해가 잘되지 않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장애가 되진 않는다.
''부족인간' 호모 사피엔스는 모든 영역에서 '우리'와 '그들'을 나눈다.'(p186) - 작년 12월, 여기로 이사 오고 나서 이전보다 여러 가지로 감사한 것들이 많았다. 매일을 그렇게 보내고 있는데, 일주일 전부터 위층에서 소음이 심하게 들렸다. 늦은 저녁까지 아이 뛰는 소리가 몇 시간 동안 멈추지 않았다. 잠시 그런 거겠지 했다. 웬걸 며칠간 지속되는 것이 아닌가. 참고 참다가 경비실을 통해 좀 자중해 주길 부탁을 드렸다. 그 후 한두 시간 괜찮다가 다시 시작되었다. 뭘 좀 깔았는지 그전보다는 소리가 좀 약해졌지만 여전한 상태였다. 이 문장에 따르면 지금 나는 일면식 없는 위층 사람들을 급격히 '그들'로 나누고 있는 중이다. 이러다 보면 결국 싸움 밖에 답이 없다. 맨날 싸우는 정치판을 욕하면서 나까지 그런다면... 위층 아이를 '내 손자'로 보고 위층을 '우리'(이웃)로 보라고 한다. 쉽진 않겠지만 그렇게 해보자!
과학에 대한 새로운 지식과 애매하게 알았던 것을 명쾌하게 풀어주는 부분들이 많아서 필사를 쉼 없이 하면서 읽었다.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것은 수학 몰라도 행복하게,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마지막 부분의 말과 과학의 벽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나도 이제부터 과학 공부에 입문하려 한다. 조금씩 진지하게.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과학을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고 느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언지 짚어 보았다. 인문학의 가치와 한계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누차 말했지만 과학에는 옳은 견해와 틀린 견해, 옳은지 틀린지 아직 모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인문학에는 그럴법한 이야기와 그럴듯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인문학 이론은 진리인지 오류인지 객관적으로 판정할 수 없다. 그게 인문학의 가치이고 한계다. 한계를 넓히려면 과학의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가치를 키우려면 사실의 토대 위에서 과학이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에 대해 더 그럴법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면 과학과 인문학을 다 공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