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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협 May 14. 2024

#최은영 작가

밝은 밤

소설에 대한 나의 태도를

달리해준 이정일 작가!


그의 책에 담긴 소설 읽기 그 첫 번째는

바로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이다.


3년 만에 이 책을 낸 그녀는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그 힘든 시기를 온몸으로 겪고

다시 용기를 내 쓴 책이다.


한층 기대가 되는 작가의 말대로

이 책은 나에게 오래간만에 느끼는 뭉클함을,

나도 모르게 몇 번이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주었다.


희령!

강원도 어디일 텐데 아무리 찾아봐도

검색되지 않는 작가가 만든 작은 도시.


이 책을 다 읽고 내 마음의 액자에

사진 하나가 담겼다.

'나와 언니, 할머니와 증조할머니가 손잡고 서 있는'

소설 속 가족사진이.


내 마음의 레코드에도 문장 하나가 녹음되었다.

'내게 누군가가 있다!'라는 위로의 속삭임이.


짙은 어둠이 깔린 밤 일 찌라도

밝게 볼 수 있다! 밝은 밤일 수 있다!


◆ 책 읽다가 날것 그대로 쓰다


이정일 작가를 따라 소설을 읽어보려 한다. 뭔가 대단한 것을 바라기보다는 한 작가가 그리는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려 한다. 거기에서 나를 발견하고 나의 부족을 채우는 퍼즐 한 조각을 얻을 수 있다면 만족이다. 뭐라고 글로 표현하지 못해도 좋다. 이정일 작가의 말대로 그냥 주어지는 그 느낌을 켜켜이 마음에 쌓아가려 한다. 그러다 보면 분명 지금보다 나은 나를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14페이지. 희령에 내려온 화자(나, 지연)가 머물게 된 아파트와 그 주변이 묘사되고 있다. 나도 모르게 노트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것을 따라.


'할머니와 재회했을 때... (p24)' - 나의 외할머니가 갑자기 떠오른다. 고등학교 시절 뇌출혈로 와병하시다가 소천하신 할머니. 나는 어릴 적 할머니의 사랑을 먹고 자랐다. 그래서 지금껏 살아오면서 어던 상황 속에서도 나의 자존감이 흐려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 할머니를 이 문장을 접하기 전까지 거의 잊고 살아온 나를 보고 놀랐다. 이렇게 무심할 수가. 어버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하늘에 계신 할머니께 전하고 싶다. '불효 손자. 용서하세요. 그곳에서도 저를 응원하고 계실 할머니! 사랑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잊지 않을게요. 그 사랑!'      


이야기의 전개가 재미있다. 화자인 지연의 상처를 그냥 쭉 풀어가지 않는다. 그렇게 했다면 뻔한 스토리로 진부할 수 있었겠다 싶다. 역시 최은영 작가다. 그녀는 지연이 닮은 증조모의 이야기를 구체적이고도 리얼하게, 어쩌면 더 길게 묘사하고 있다. 이 두 이야기는 나중에 어떻게 한 점에서 만날까? 더욱 궁금해진다.    


'언제부터였을까. 삶이 누려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 일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다음 단계로 가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느껴진 것은.(p156) - 최은영 작가가 얼마니 힘든 시기를 겪었는지를 보여주는 문장이다. 이 과정이 없었다면 이런 삶의 진수 같은 문장이 나올 수 없다. 이 나이 먹도록 나는 아직도 이런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삶을 일더미로, 서바이벌 게임으로 느끼고 싶지 않다. 무엇을 위해 비굴함도 무릅쓰고 지금껏 일했는가? 돈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는 시선이 나에게 필요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끝없이 치르는 서바이벌 게임을 이제 멈추어야 하다. 용기 내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은퇴가 찾아온 것은 복이다. 이제는 삶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 부득이하게 이런 삶을 치르고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과 지인들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나는 오늘도 책 읽고 글 쓰면서 나를 짓고 있다.  


'내게는 지난 이 년이 성인이 된 이후 보낸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 시기의 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누가 툭 치면 쏟아져내릴 몰주머니 같은 것이었는데. 이 소설을 쓰는 일은 그런 내가 다시 내 몸을 얻고, 내 마음을 얻어 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p341) - 이 책이 2021년에 나왔지만 2024년인 지금도 도서관에서는 예약대출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나도 그랬다. 그렇게 아직까지 널리 읽히는 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작가 스스로가 이 소설을 쓰면서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거의 1년을 글을 쓸 수 없었다던 그녀가 결국은 그것을 이겨내고 뚫고 나온 것. 거기에 함께한 반려가 이 책이었으니 이것을 읽는 나 같은 독자에게도 그 회복력은 영향을 크게 미친다. 관계 속의 나를 돌아보면서 치유가 된다.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그는 끝까지 할머니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저도 사과받지 못했어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그 말을 하고 말았다.

저를 속이고 다른 여자를 만났다는 걸 제가 알게 되었는데도 도리어 제 탓을 했어요.

......

"미안해, 미안해, 소리지르고는 그게 사과래. 할머니, 제가 바랐던 건 진실한사과였어요."

"안다, 내가 알아."

......

"어떻게 살았어요. 할머니? 그런 일을 겪고 어떻게 살 수 있었어요?"

나는 참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눈물을 흘렸다.

"언젠가 이 일이 아무것도 아닌 날이 올 거야.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그럴 거야."

할머니가 말했다. (p229)


- 최은영의 <밝은 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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