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책 뒤에 있는 그들의 해설. 작품을 수학공식처럼 풀어가는 것이 싫었고, 게다가 도처에 어려운 단어가 외국어처럼 들어가 있어 난해했다.
어렵다. 그들의 글'
그런 나의 편견을 완전히 박살 낸, 그래서 더욱 고마운 책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다.
낯설었던 그가, 그것도 한참 전에 8년 동안이나 나에게 써 온 편지들을 나는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
이제서야 단숨에 그것들을 읽었다.
그가 나를 얼마나 애정(독자로서) 하며 썼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소장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이정일 작가 책 따라 읽기>는 이번 신형철로 마무리하려 한다.
다음은 <신형철 따라 책 읽기 : 지금은 구간, 나에겐 신간>이다.
바람 부는 대로 가보려 한다. 가다 보면 길이 있겠지!
◆ 책 읽다가 날것 그대로 쓰다
'여기 묶은 글들은 내 8년 동안의 생명 중 일부를 주고 바꾼 것들.(p6) - 신형철의 말이 위로가 된다. 오늘도 나는 책을 읽는다. 뭔가 느껴지는 그 순간을 날것 그대로 글로 담아본다. 이것이 내 생명 같은 시간들을 투여하는 일임을 그가 알려주었다. 이렇게 계속 켜켜이 쌓아서 가보는 거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
'대상들의 운명이 실제로 어떻든 간에 더 중요한 것은 그것들에 우리가 어떤 심리적 태도를 취하는냐다,(p63)' - 결국 해석력이 핵심이다. 이것을 키우는 데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책이다. 그러기에 책의 선정에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무수히 많은 책들이 하루에도 나오고 있는데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요즈음 나에게는 작가들의 산문 속에 나오는 책들을 우선으로 선정하고 있다. 박준으로 시작해서 김훈으로 마무리한 <낯선 작가 따라 책 읽기>, 소설에 대한 나의 태도를 달리해준 이정일 작가, 그의 책 따라 읽기는 최은영으로 시작해서 지금 이 책으로 네 번째로 마무리하려 한다. 낯선 작가를 만나 그의 글을 읽으면서 신뢰가 쌓여간다. 그러면서 그의 책에 담겨 있는 또 다른 낯선 작가와 책의 신뢰도도 함께 올라간다. 이런 책 선정 묘한 즐거움을 준다.
<1부 : 슬픔에 대한 공부, 슬픔> - 신형철은 세월호 사건과 갑작스러운 아내의 수술을 겪으면서 슬픔을 공부하기로 한다. '이제부터 내 알량한 문학 공부는 슬픔에 대한 공부여야 한다.'면서. 그 후 그가 만난 책, 에세이, 영화, 노래에 담긴 슬픔은 이전보다 더 크고 깊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제야 보이기 시작하는 슬픔의 세계... 여기에 담겨 있다. 슬픔! 인생이라면 피할 수 없는 것인데 너무 무심했었다. 나의 슬픔도, 타인의 슬픔도 모른 채 살아온 그 무심했던 나날들이 떠올라 낯이 뜨거워진다. 한편으로는 위로도 받는다.
'시는 매근한 해답을 쥐여주기보다는 예리한 질문을 던지는데 소질이 있는 예술이다.(p266) - 그래서 시가 어렵구나. 시인조차도 알 수 없는 답. 그래서 함께 고민해 보자며 세상에 던진 그 시적 언어가 바로 시인 것이다. 암기 위주의 공부를 해 온 나에게 사지선다가 아니면 여전히 당황스럽다. 그것도 주관식으로 물으면 더욱더. 그렇지만 오히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시일 수 있다. 문제를 풀다가 약간만 모르면 뒤에 있는 해답지를 봐버렸던 지난날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질문의 답이 없는 시다. 주눅 들지 말자! 계속 시를 읽다 보면 시심의 깊이가 더해질 것이니. 내 삶의 깊이도.
<부록 : 추천 리스트> - 그냥 끝내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나에게 벅찰 정도로 낯선 작가와 책들의 소개가 있었다. 그런데 거기다가 이 부록을 또 담았다. 그의 열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진정성은 이럴 때 쓰는 단어이리라. 개인적으로 책 추천에 대한 갈증이 크게 있었는데 이번에 완전히 해소된 느낌이다. <신형철 따라 책 읽기>로 한 여름을 지내보려 한다. 2010년에서 2018년 사이에 나온 책들을 그가 읽고 평한 것이 대부분이기에 <지금은 구간, 나에겐 신간>라는 부제도 붙였다. 기대된다.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독서로 여행을 대신하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지만 삶이 이지경이 된 것에 불만은 없다. 내게는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보다는 읽지 못한 책에 대한 갈급이 언제나 더 세다. 그러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마이 소울 시티'가 어디일까 떠올려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가본 곳이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생각을 시작하자마자 소설 속의 한 장소가 떠올랐는데, 도무지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자고 결심했더니 코끼리만 생각하게 된 꼴이다. 도리 없이 '그곳'에 대해서 쓰기로 한다. 그래, 나의 '소울 시티'는 무진이다.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1964)의 배경인, 아니, 그 소설의 주인공인 그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