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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휠체어 탈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사이클과 수영 뿐

by 선옥

걷다 보면 오른쪽 무릎이 아파오는 빈도가 점점 짧아졌다.
예전에는 한 시간을 걸어야 통증이 시작됐는데, 40분, 그리고 이제는 20분도 채 걷지 못하고 아파왔다.


잠시 앉아 쉬면 괜찮아졌지만, 통증이 사라지는 데 걸리는 시간도 점차 늘어났다.
원인은 항암과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에 의한 슬개골 괴사.


병원에서는 내게 계속해서 무릎을 사용하다 보면 관절이 무너지고 무너진 관절에 인공관절을 심기에 나는 너무 어리다 하셨다. 무릎에 하는 인공관절 수술은 고관절만큼 발달하지 않아 10년마다 재수술을 해야만 했고 스물한 살인 내가 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교수님께서는 인공관절을 심는다 하더라도 평생 휠체어를 타야만 할 수 있다 하셨다. 그렇기에 절대 뛰거나 걷지 말고 일단 지켜보자고 하셨지만 내 무릎의 통증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결국 수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인공관절을 넣는 수술이 아닌, 괴사 된 슬개골을 도려내고 내 장골에 튼튼한 뼈를 떼어 이식하는 방법이었다. 그 과정에서 담당 교수님도 바뀌었다.


이전 교수님은 관절 전문이었고, 새로운 담당은 근골격계 종양과 소아외상을 전문으로 하는 소아정형외과의 최은석 교수님이었다. 그렇게 빠른 시일 내로 수술 날짜가 잡혔다.


입원 후 진행된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눈을 떴을 때 내 오른쪽 다리는 붕대와 깁스로 꽁꽁 싸여 있었다.
깁스 너머로 전해지는 통증과 열감은 심했고, 누워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삼일이 지난 뒤, 간호사에게서 수술 부위를 셀프로 드레싱 하는 방법을 배우고 휠체어에 의지한 채 퇴원했다.


일주일 뒤, 실밥을 풀러 외래에 갔을 때 교수님은 잘 아물었다며 실밥을 제거한 후 내 무릎을 억지로 눌러 강제로 구부리셨다.


물먹은 나뭇가지를 비트는 듯한 고통에 소리를 지를 만큼 아팠지만, 교수님께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속으로만 씩씩거리며 참았다.


교수님은 태연하게 말씀하셨다.
“X-ray상 이식한 뼈는 잘 안착했네요. 한 달 뒤에 다시 보시죠. 그때까지 재활 잘하세요. 그때까지 무릎이 구부러지지 않으면 굳어버립니다. 아프더라도 꼭 하셔야 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 곧장 무릎 재활을 시작했다. 내 의지로는 도저히 접히지 않아, 교수님이 했던 것처럼 힘으로 무릎을 눌렀지만 통증에 몸서리가 쳐졌다. 정말 말 그대로 이 악물로 참아가며 무릎을 접어갔다.


너무 고통스러워 한번에 가동범위를 늘리지는 못했지만 조금이라도 늘리면 다음날 조금이라도 늘어있으니 참고 매일같이 늘려갔다.


한 달 후, 다시 외래에 가서 X-ray를 찍었다. 다행히 이식한 뼈는 크게 문제가 없었고 그동안 한 재활이 빛을 보이듯 무릎의 가동 범위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교수님께서도 “송수영 군처럼 모든 환자들이 재활운동을 잘해오면 좋겠다”며, 힘들었을 텐데 열심히 해왔다고 칭찬해 주셨다.


무릎은 어느 정도 접을 수 있게 되었지만, 빠져버린 근육 때문에 발을 딛는 순간 여전히 통증이 남아 있어 나는 여전히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교수님은 다음 외래를 한 달 뒤로 잡으면서, “그동안 걷거나 무릎에 무리가 가는 동작은 절대 하지 마세요. 대신 허벅지 근육을 키우려면 사이클과 수영을 하세요.”라고 권유하셨다.


그때부터 나는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한 채, 다닐 수 있는 수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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