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때 전교 꼴찌를 한 적이 있다. 바로 체육 시험에서 말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체육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체육은 나에게 내 몸을 힘들게 하는 노동 같은것이었다. 나는 좀처럼 뛰어노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여타 다른 초등학생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초등학교 때 점심시간만 되면 친구들은 운동장에 나가서 뛰어놀았다. 나는 그들이 뭘 그리 신나는지 이해가 어려웠다. 대신 나는 점심시간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는 게 나에게는 훨씬 재미가 있었다.
체육 시간에 체력 시험을 봤다. 윗몸일으키기, 빨리 달리기 등 다양한 종목을 시험 쳤다. 다들 시작점에서 출발해서 뛰어 나가는데, 나는 좀처럼 내 몸이 왜 이렇게 안 나가는지 몰랐다. 빨리 뛰어가고 싶었는데, 몸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출발과 끝이 빨랐지만 나는 출발점에 더 가까웠다. 그렇게 맨 마지막으로 결승선으로 들어갔다. 윗몸일으키기도 하나도 하지 못했다. 온몸에 근육이 없었던 것 아닐까. 지금 생각해 보니 말이다.
나에게 달리기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걸어갈 수 있는데 굳이 왜 몸을 빨리 움직여서 숨차게 뛰어가는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요즘 내 또래 친구들이 하나 둘 러닝크루를 가입하고 한강에서 뛰고 그것을 SNS에 인증한다. 다들 건강해 보인다. 나도 암 수술을 받고 한강을 자주 걸었었다. 물론 뛰진 않고. 걷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운동이었다. 나에게는 한 걸음 한 걸음이 힘겨웠지만, 나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그들은 평온해 보였다. 그래서 달리기를 해 볼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며칠 전 우연히, 내가 다니는 세브란스 암병원에서 홍보 포스터 하나를 보았다. '온코런'이라는 것이 열린다고 한다. 암병원에서 처음으로 주최하는 러닝 대회였다. 3km 걷기 코스와 5km는 달리기 코스가 있었다. 문득 최근 병원에서 나의 피검사가 좋지 않아 좀 더 운동을 하라는 것이 떠올랐다. 최근에 사실 회사 핑계를 대면서 운동을 하지 않았다. 야근도 하고 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헬스장도 잘 가지 않고 집에서 누워있기 바빴다. 그래도 병원에서 운동을 하라고 하니 온코런 러닝 대회에 지원해 보기로 했다. 수익금이 암병원에 기부된다고 한다. 기부도 하고 러닝도 하고 좋은 취지아닐까?
암 병원에 기부하는 마음으로 지원을 하였지만, 막상 3주 남은 동안 시간 동안 내가 과연 뛰어 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지원을 할 때 배짱을 부려 5km 달리기로 지원을 했다. 그꺼짓 꺼, 뭐 별 일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정도는 열심히 달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달리기를 시작하려고 하니 지레 겁이 났다. 몇 달 전부터 러닝을 좋아하고 해 보라고 계속 말한 지인이 생각났다. 그에게 연락해, 나에게 러닝을 입문시켜 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다음주에 만나서 같이 5km 러닝을 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를 만나서 5km 러닝을 시도해 보기 전에 우선 집 근처 아파트를 1km라도 뛰어보아야 겠다.
집에서 아무 운동화나 신고 문 앞을 나섰다. 한 번 달려보았다. 한 30초 뛰었나? 숨이 턱 막혔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대비해 패딩을 입고 나왔는데 너무 더웠다. 겉옷을 한 겹 벗고 마저 뛰어보았다. 너무 힘들어서 멈추었다. 달리기 시작할 때 애플 워치에 실외 달리기 측정을 눌렀는데 '에게 겨우 500m'를 뛰었다. 나에게 실망했다. 그래서 아파트를 한 바퀴만 뛰어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오르막길이 있는 아파트를 열심히 뛰어보았다. 그런데 평소에도 오르막길로 숨이 찼는데, 젠장 이렇게 뛰어 보니 무릎도 아프고 머리에 열이 너무 났다. 그리고 시계를 보지 않고 뛸 수 있는 만큼만 다짐하고 뛰었다. 나의 첫 0.7km 러닝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심각한 나의 체력이 주눅이 들었다. 러닝을 하려고 나갔는데 15분만 딸랑 뛰고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그 러닝을 나에게 추천해 준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15분 뛰었는데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아요'
그는 웃으며 답장이 왔다. 그가 나에게 만나기 전까지 숙제라면서 책을 한 권 추천해 줬다. 하루에 5분만 뛰어 보라는 책이었다. 나는 '하루에 5분으로 러닝이 되나?'라는 생각으로 그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읽으며 그래 5분만 매일 뛰어보자 생각했다.
나는 그제야 책과 유튜브에 러닝 잘하는 법을 찾아보았다. 겨울에는 춥다고 껴입고 나가긴 하지만 뛰는 순간 몸에 열이 오르니 가볍게 여러 겹을 챙겨 입을 것. 그리고 신발도 가급적 러닝화를 신을 것. 그리고 오버해서 빨리 뛰지 말고 말할 수 있는 속도로 천천히 뛸 것. 나는 이론을 빠싹 머리에 입력했다. 그리고 신발장을 뒤져 몇 달 전에 나에게 '언젠가 러닝 하면 신어야지' 하며 사놓고 그대로 모셔 둔 러닝화를 꺼냈다. 그날이 왔기 때문이다. 러닝화를 신고 러닝 할 날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종아리에 근육통을 느끼며 다시 아파트 현관문을 나섰다. 러닝의 장점을 하나 발견했다. 운동 시작이 그냥 현관 문만 나오면 바로 시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문이 열리자마자 어제 오르다가 포기한 아파트 근처 공원까지 뛰어갔다. 그곳을 5바퀴만 돌려고 했다. 페이스고 뭐고 모르겠다. 그냥 숨 막혀 죽을 정도로 올라오는 나의 호흡을 조금은 가다듬으며 둘 째날은 겨우 1km를 뛰었다.
와! 내 인생 첫 1km 러닝이었다. 누구는 겨우 1km 뛰었다고 비웃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0km에서 1km로 는 것이다. 어제보다 두 배 성장한 거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나는 1km를 뛰었다. 전 날은 15분이 걸리던 것을 13분 정도 걸렸다. 내 기록이 이렇게 팍팍 줄다니 뿌듯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1.5km를 도전해 봤다. 이제는 심장이 터져 죽을 것 같은 것을 조절할 수 있었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천천히 뛸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독였다.
집 밖으로 나가 잠깐 뛰고 돌아오는 그 짧은 20분이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이전까지 헬스장에서 영상이나 음악을 들으며 다리만 움직이는 그런 러닝에서 그날 공기가 바뀌는 야외에서 강아지 산책하는 사람과 흥얼거리는 사람들을 마주치는 야외 러닝이 매번 다르게 느껴진다.
그렇게 나는 일주일간 2km까지 늘렸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3km를 도전해 봤다. 나름 제대로 된 km가 된 것 같아 장소를 바꿨다. 강 근처로 갔다. 맞바람이 부는 강바람을 느끼면서 정말 힘들게 뛰었다. 러닝 바지가 딱히 없어서 청바지를 입고 뛰었다. 집에 가서 갈아입고 올 수 가 없었기에 그냥 바로 온 것이었다. 내가 나를 믿고 새로운 길에서 3km를 뛰었고, 평소 집 근처의 빽빽한 빌딩들이 아니라 탁 트인 강에서 뛰니 3km를 금방 뛸 수 있었다.
어라? 내가 3km를 뛰다니! 스스로 놀라웠다.
그리고 드디어 러닝 전도사 지인을 만나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5km 러닝을 시도 해 보는 날. 나는 지레 겁을 먹었다. 오늘 첫 5km 도전, 너무 떨린다고 말이다. 그런데 옆에서 거의 걷듯이 말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걷다가 뛰다가 풍경 보다가 앞으로 나아갔다. 혼자만 뛰다가 누군가 옆에서 계속 잘한다고 숨을 쉬라고 그냥 앞으로 같이 가자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힘든 것을 느끼지 못했다. 어느새 반환점이 왔다. 내가 벌써 2.5km나 뛰었다고? 싶었는데 반환점을 찍으니, 다시 내가 온 길을 돌다 가며 예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5km를 처음 완주한 나는 너무나 희열감을 느꼈다. 혼자라면 할 수 없었을 5km를 이렇게 같이 뛰다니! 뛰다가 돌아가려고 했던 나를 계속 응원해 준 사람이 있으니 끝낼 수 있었다. 애플워치의 5km가 적힌 숫자를 보며 나는 너무 기뻤다. 자랑스러웠다.
나는 그와의 특훈을 마치고 온코런까지 남은 이 주일간 매일같이 3km를 뛰었다. 몸이 너무 안 좋은 날은 2km만 뛰었다. 뛰다가 문득 깨달은 것도 있다. 보통 뛰다 보면 옆구리가 아프지 않은가? 내가 뛰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자주 뛰진 않았지만, 뛰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옆구리가 아픈데 나는 그게 없다. 그래서 논문들을 찾아보니 뛸 때 위나 소화 기간이 횡격막을 치거나 아니면 위가 흔들려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위가 없으니 그 옆구리 통증이 없나?라는 생각을 했다. 위전절제 수술이 장점이 된 것 같았다. 진짜인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드디어 온코런, 암 생존자들을 위한 러닝 대회 당일이 되었다. 사실 하루 전 날, 나는 러닝 대회에 처음 나가다 보니 뭘 입고 뭘 준비해서 가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혔다. 유튜브와 블로그에서 긴 레깅스에 가벼운 바람말 이를 입으란다. 예전에 필라테스한다고 사 둔 레깅스를 입어봤다. 뭔가 몸이 조이는 느낌이고 뒷부분이 민망했다. 그 위에 짧은 반바지를 입었다. 이제야 좀 낫다. 그리고 바람막이도 얇은 것을 챙겼다. 핸드폰 넣을 벨트 같은 주머니가 있으면 좋은데 매일 손에 들고뛰었으니 그냥 이렇게 갔다.
러닝은 1조부터 5조로 나뉘어 있었다. 1조는 매우 빠른 분들 페이스로 나뉘었는데 나는 내 페이스가 그냥 가장 느린 것을 알기 때문에 5조로 갔다. 1시간 내에 5km를 끝내고 돌아와야 한다. 그렇게 출발점에 서서 다 같이 뛰기 시작했다. 페이스메이커 두 명이 5조의 풍선을 달고 달리기 시작했다. 출발이 조금 빠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최대한 그들 뒤를 바짝 쫓아갔다. 평소에 내가 뛰던 속도보다 조금은 빨랐다. 그러나 곧 계단과 오르막길이 나왔다. 페이스메이커는 걸으라고 외쳤다. 다른 러닝 코스도 이렀는지 모르겠지만,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출발해 안산을 찍고 오는 코스인데, 산 길과 오르막길이 많았다. 등산과 러닝의 중간이랄까. 처음에는 신나서 파이팅을 외치며 출발하던 우리 5조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침묵 속에 묵묵히 뛰고 있었다. 끝 없는 오르막길 속에 우리는 묵묵히 앞으로 나갔다.
그때 '파이팅!'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힘을 냈다. 나는 순간 내가 너무 느리게 달리는 게 아닐까 싶어서 뒤를 돌아보았는데 내 뒤로 숨을 헐떡이며 다 같이 힘을 내는 이들이 보였다. 나 혼자만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앞으로 묵묵히 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반대편에서 오는 온코런 티셔츠를 입고 달려오는 사람이 보였다. 아니! 반환점을 찍고 벌써 돌아오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고 다시 뒤돌아 보았다. 진짜였다. 아직 반도 안 왔는데 벌써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다니 말이다. 세상에. 순간 우리 조는 웅성웅성해졌다. 벌써 찍고 오는 거야? 우리는 살짝 사기가 꺾였다. 그래도 이게 기록하는 대회가 아니니까 우리의 속도는 느려도 5km를 찍고 오는 것을 목표로 마음을 다잡았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5km를 다녀오는 것으로 말이다.
어느 새 반환점이 보였다. 세브란스 병원에 다닐 때 매일같이 오던 안산 맨발 걷기를 하는 황톳길이었다. 반환점에서 도장을 손등에 찍어주었다. 반환점까지 열심히 달려왔단 증표이다. 이제 온 만큼 돌아가면 된다. 반환점을 돌고 있을 때 연예인을 마주쳤다. 그녀도 이 러닝 대회에 참여한 지 몰랐다. 힘들지만 열심히 웃으며 달려 나가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자극을 얻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촬영 중인 다른 암생존자들도 마주쳤다. 얼핏 생로병사에서 러닝 하는 암 생존자들을 촬영한다는 것을 들었다. 러닝하고 있는 암 생존자들을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힘들게 숨을 내쉬고 있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우리는 마치 암을 진단받고 꾸준히 이겨내고 있는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어느새 출발 했던 지점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경기를 끝마치고 하나 둘 줄을 서서 메달을 받고 있었다. 그들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결승 지점을 통화하고 나니 눈물이 살짝 맺혔다. 내가 이걸 해내다니 말이다. 나는 결승선에서 사진을 몇 번 찍고, 결승 메달을 받는 줄에 섰다. 나의 첫 러닝 대회 메달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메달과 함께 각종 기념품을 선물 받았다. 너무 목이 말라 거기 안에 들어있는 두유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사실 엄청 땀을 흘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등산을 더 많이 한 것 같은 온코런 러닝 대회. 내 인상 첫 러닝 대회였다.
사실 '대회'였다기 보단 암 생존자들이 섞인 우리 모두가 파이팅 하며 같이 헤내는 시간 같았다. 누가 더 빨리 들어오나를 경주하는 것 보단 말이다. 속도가 느리지만 조금씩 천천히 걸어서 돌아오는 참가자들을 기다려 주는 주최 측이 고마웠다. 그리고 암생존자였던 색소포니스트가 공연을 했다. 각종 건강 관련 된 경품 추첨도 있었다. 내가 다른 러닝 대회는 안 가봐서 모르지만, 이런 건강 관련 된 경품을 주기도 하나 싶었다. 또 세심하다고 느낀 것이 암 생존자들은 하나씩 가져가라며 연세 두유세트를 선물로 줬다.
나는 무거운 선물들을 들고 거의 풀린 다리를 끌고 집으로 복귀했다. 집에 도착해서 땀이 흠뻑 젖은 러닝 옷들은 벗고 씻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내가 5km를 뛰었구나. 그것도 몇 백명의 사람들과 같이. 내가 너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너무 행복했다. 암 생존자로서 5km를 이렇게 뛰어낸 것에.
뛰는 것은 온전히 나를 믿고 해야 한다. 내 다리, 내 심장 그리고 내 마음을 말이다. 끝까지 달리는 것은 온전히 내 의지이고 그리고 힘들지만 버텨내고 조금씩 가다 보면 끝나있는 게 러닝이다. 암 환자라서, 암 생존자라서 못 하겠다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 러닝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