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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탸탸리코 Jul 17. 2023

찬란하고도 불안한

만으로 29살

2023년 1월 1일 30살이 되었다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를 이립, 30살이라고 한다.

20대를 뜻하는 방년, 40대를 뜻하는 불혹, 50대를 뜻하는 지천명은 많이 접해 보았으나 이립은 초면이었다


이립이란 단어가 초면이듯, 내 30살 인생도 초면이었다

어렸을 때 30살을 생각하면 적어도 10년은 걸리는 일이니 멀게 생각했다

30대는 진정한 어른 같았고, 내가 사회적으로 지위가 뭐라도 생겼을 거라 여겼다

(아니, 심지어 책 제목으로도 30대는 많이 쓰더라)

막상 30 입구에 들어가니 별거 없었다 옛날부터 어른들 말 틀린 거 하나 없다더니 진짜가 진짜였다.


30살이 되기 싫어 몸부림쳤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누군가 나이를 물어보면 30이라 대답하고 싶지도 대답할 자신도 없었다

그저 숫자일 뿐인데, 내가 그냥 태어나서 이만큼 시간이 지나버린걸 세아릴뿐인데 싫었다

(세상에 태어난 지 30년이 지났다는 것도 조금 놀랍다)

어영부영 30살로 반년을 보내니 28살이 되었다

기분이 좋았다 내가 20대라니 야호

근데 '에라이 여기 20대 있다 가져가라!'하고 주는 것만 같아서 짜증은 났다

30줄 되기 너무 싫었지만 한 달 두 달 세 달이 지나면서 체념했다

그러다 갑자기 28살이 되었다

28살로 19일 지내고 다시 29살이 되었다

(이쯤 되니 나랑 장난하나 싶었다)


내가 30살로 들어서기 싫었던 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나 자신이 꼴 보기 싫었다

뭐라도 하고 있을 줄 알았던 내가 뭐라도 안 하고 있어서 짜증 났다

갈피를 잡지 못한 나 자신이 미웠다

남들 다 하는 고민을 이제야 하게 된 나 자신이 기가 찼다

그래서 싫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는데 눈물도 고인다

(웃다가 눈물이 고이는 상황은 배를 잡고 웃는 상황이 아니고서야 그리 썩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나에게 *쿼터-라이프 크라이시스가 찾아왔다

방년 30세에.


난 운이 좋게 안전하고 나름 평탄한 삶을 살았다

사실 예중도 떨어져 보고

엄마랑 언니 없이 아빠와 할머니랑 외국에 먼저 나갔어야 했고

학교에서 은따도 당해 싸워봤고

재수도 했고

삼수도 했고

편입도 했다

대학원도 갔다

내가 말한 평탄한 삶이란 남들 다 하는(남들이 하는 것보다는 아마 시험은 많이 봤겠지만)것들을 못하고 살진 않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학업적으로 있는 길은 다 가봤다.

(대학원은 수료만 했다 <-중요)


근 10년이란 세월을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지내다 보니 학교밖의 현실이 존재한다는 걸 까먹었다

어떻게 그걸 까먹지 했는데 그걸 까먹더라

(인간이 진짜 망각의 동물이 맞는 것 같다)

학생일 때가 제일 좋다는 걸 30살이 되도록 몰랐다

30살까지 학교에 있었으니 알 길이 없었다

아니, 정신을 못 차렸던 것 같다.


인지 능력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항상 장래희망이 똑같았는데, 막상 장래희망에 도달해 보니 난 이건 못하겠다는 것과 적성에 맞지 않다는 걸 알았다

못하겠다 막상 생각하고 나니 생각보다 마음이 아팠다 쓰리기도 했다

마음이 아파 문을 닫아 버렸다

문을 닫으니, 열기 힘들었다

그렇게 28이 되고, 29살이 되고 30살로 넘어가니 나는 그대 로고 주변이 바뀌었다.


이미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니란 건 알았는데, 그냥 그 자체에만 집중하니 나름 행복하게 살아지더라 싶어 울타리 속에 숨어 알맹이 없이 2년이란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다.


이제 세상에 갓 나왔더니,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게 뭔지 몰라 남들 다 따는 자격증을 따려고 했다

싫었다

정말로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싫었다

계속 떨어졌다

왜 해야 하는지 몰라 열심히 하질 않았다 그리고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할 말이 없다.


내 삶이 권태롭다 생각했는데, 권태롭기만 한 게 아니라 위태롭기까지 했다

또 웃음이 났다 이번엔 웃음보단 눈물이 많이 나왔다.


고작 내 장래희망에 이렇게 매달릴 줄 몰랐다

찰나의 순간 직업일 뿐이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세상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다고, 이 따위 고민은 고민 중에 그나마 낫다고 내 마음을 달래 보았다.


세 번째로 시험을 망치고 나니 어처구니없게 머리가 가벼워졌다.


세 번째 시험을 망칠 땐 사실 회복하지 못할 줄 알았다

(사실 망한 건지 잘 본 건지 감도 안 잡혔다 그냥 망했거니 생각했을 뿐)

진짜 바닥으로 꺼져 사라질 줄 알았다

이거까지 못하면 난 진짜 인간도 아니다 인간 말종이다 멍청이다 생각했다

마음에 문을 닫아도 자존심은 있나 보다 싶었다


막상 시험을 보고 나니 점점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감명 깊게 뭘 본 것도 들은 것도 없던 터라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구렁텅이에서 나왔다는 게 놀라웠다.

(나 자신을 타이른걸 수도 있겠다)

여기서 더 밑바닥으로 가면 정말 시도도 못하고 끝나겠구나 생각했던 걸 수도 있다.


내가 그런 생각구렁텅이에서 나오게 된 건 지쳐서였을 수도 있다

더 이상은 뭔가를 기다리며 누군가가 도와주길 바라며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정신력 소모가 많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날 보며, 걱정하고 안절부절못하고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싫어서였을 수도 있다.


진정한 시작은 내 손으로 직접 하고 싶다는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

가족 중 누군가 이미 먼저 걸어 본길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걷는다고 해서, 그 길이 좋아 보이고 멋져 보인다고 해서 가고 싶진 않다 그냥 나만의 길을 찾고 싶다.


겁이 나고 앞이 막막하기도 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겪는 일이 이렇게 거지 같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너무 만만하게 봤나 보다.


사람은 인생 살아가며 한 번쯤은 굴러본다고 생각한다

그게 언제인지의 차이일 뿐, 한 번쯤은 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앞으로 나의 3n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길 다짐한다

(쉬는 거랑 멈추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찬란하게 앞으로 전진하며

내 인생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그래, 어차피 구를 거 젊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굴러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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