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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탸탸리코 Jul 17. 2023

향기에 목이 돌아가네

내가 정말 사랑하는 향수 '크리드'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향수 혹은 향기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워낙에 어렸을 때부터 향수를 뿌려왔고 향수에 대한 좋은 경험도 많기에 나는 향수를 많이 좋아하는 편이다.

(체취가 강해서 향수를 뿌린 것도 있지만, 워낙에 좋은 냄새나는 거에 신경을 많이 쓴다, 안 씻고 다닌 것은 아니다)


엄마도 향수를 좋아하는 편이라, 아빠가 출장에 가면 항상 향수를 하나씩 사다주시곤 했던 게 기억에 남아있다.

(아빠는 애정표현이 많은 편이 아니었기에 이런 소소한 물질공세가 자주 일어났다)


성인이 되고 향기에 대해 정말 본격적으로 집착 아닌 집착을 하기 시작했다

첫인상에서 중요한 건 그 사람이 풍기는 향이라고 생각 하기에 나 또한 열심히 시도했다

물론, 본인에게서 좋은 향이 나기 위해서는 청결이 0순위다, 향수 또한 청결한 상태에서 뿌리는 게 가장 향이 오래가고 신선한 향을 남길 수 있기에 안 씻고 향수를 뿌리는 건 대게 역효과를 가져올 때가 있다.


사람에게서 나는 향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자극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을 처음 봤을 때 뿌렸던 향, 그 사람과 같이 가본 장소의 향 그리고 그 사람이 풍기는 향기가 잘생김도 이쁨도 귀여움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다른 이들이 나를 향으로 기억해줬으면 하는 열망이 강했다.


'향의 여정'은 꽤나 길고도 험한, 실패도 많았던 여정이었다

수년간의 실패 끝에 내가 향수 고를 때의 조건들은 아래와 같았다


남들이 많이 뿌리지 않는 향이어야 할 것

과하게 여성적, 남성적인 향수는 피할 것

잔향이 남았을 때 나 조차도 코를 킁킁거릴 것

시중에 복제품이 많은 향수는 피할 것


위의 조건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다듬어져 갔다.


처음엔 나와 너무 맞지 않는 향을 뿌렸다

돈이 없던 시절(지금도 없는 건 마찬가지다), 좋은 향이 나기 위해 닥치는 대로 내 코에 좋은 향을 뿌렸다

어쩌다 한번 나와 잘 맞는 향을 찾기도 하지만, 시도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정착하기보단 모험을 했다

이 여정 속에서 얻은 건, 좋은 향수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향의 교집합이었다



바로 코코넛이다.



내가 코코넛향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코코넛은 달달한 향을 내는데, 그 달달함 속에 포근함이 숨어있다

(맛도 훌륭하다)

코코넛은 이런 달달하고 자칫 묵직할 수 있는 특성 때문에 시트러스와의 결합이 좋다

너무 달달하다 보니 가끔은 그 향에 질리거나 느끼할 때가 있기에 레몬, 라임과 같은 시트러스 향과 같이 결합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피냐 콜라타가 생각이 나서 좋은 것도 있다)


대학생 때는 향수 대신 바디로션 혹은 바디미스트를 열심히 뿌렸는데 구매처는 대부분이 드럭스토어였다

그날도 마침 좋은 향이 있나 싶어 들린 곳에서 우연히 만난 코코넛향의 바디미스트가 첫 시작이었다.


그 바디미스트는 지금 정보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기억이 나질 않는데, 내 기억에 의하면 그 향은 코코넛과 바닐라(혹은 브라운슈가)의 조합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코코넛과 바닐라의 달달함 속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이 있었는데 조금 과하게 느끼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던 와중 트리헛의 코코넛라임향 바디로션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 쓰는 바디스크럽도 트리헛의 '코코넛라임', '코코콜라다'이다 둘 중 세일하는 걸 산다)

아무래도 로션의 제형 때문인지 라임의 향보다는 코코넛의 달달함이 더 묵직하게 느껴졌던 게 기억난다.


이 좋은 향을 찾고 나서 나는 정착을 선택하기보단 또 밖으로 돌았다

범상치 않은 향을 찾고 싶은 마음에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좋은 향을 많이 찾기도 했다

흔하지 않은 향을 찾기도 했다

(대게 흔하지 않은 향은 돈을 쓰면 된다)

하지만 나와 맞는 향을 찾진 못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좋은 향수를 찾고 싶은데 뭐 없을까 싶어 여기저기 인터넷을 돌아다니던 와중에 크리드의 '버진 아일랜드 워터'를 알게 되었다


크리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대표적인 니치향수 브랜드로 1760년경부터 시작하여 7대에 거친 크리드 가문의 유구한 역사가 있는 브랜드이다.

(천연재료의 함량도 높다고 한다)


유구한 역사가 있어서인지, 쳔연재료때문인지 엄청나게 비싸다

놀라울 정도로 비싸다

향이 정말 좋지만 비싸다

그냥 정말 비싸다.


가격이 너무나도 높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정말 주저했지만

질렀다.


50ml를 구매했다

양 자체도 작지 않고 가격도 그나마 조금이나마 저렴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놀라운 건 난 대부분의 향수를 블라인드로 구매한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사고 싶은 향수의 후기글을 보며 선택한다

난 대담하게 크리드 또한 블라인드로 구매했다.


구매하기 전 수많은 후기글들을 보며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단어는

'살냄새', '코코넛' 그리고 '휴양지'

(위에서 말했다시피 잔향은 나에겐 중요한 요인이었다)

향수는 단일노트를 가진 향수가 아닌 이상 일정 시간이 지나면 처음의 향은 날아가고 결국 베이스노트만 남게 되는데, 이 베이스 노트가 얼마나 나의 체향과 잘 어울리는지에 따라 나에게 맡는 향이 되고 어색한 향이 되는 것 같다

버진 아일랜드 워터의 후기들 중 다수가 살냄새를 말했다.

(사실 다수가 아닐 수 있다 내가 그냥 꽂혀서 기억왜곡 시킨 걸 수도 있겠다)


사실 나에겐 크리드와 살냄새 1,2위를 다투는 향수가 있는데 바로 르라보의 '어나더 13'이다.

(이 향수에 대해서는 나중에 각 잡고 작성하도록 하겠다)


버진 아일랜드 워터는 약 4월경에 샀는데

천생연분이었을까? 4월에서 5월로 넘어가는 선선하고 따듯한 설레는 계절과 딱 맞는 향이었다

계절도 설레었지만, 이 향기 자체가 설렘을 주었다

마치 이 향기랑 혼자 로맨스 뚝딱 찍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50ml는 눈 깜박하니 사라졌다

내가 대게 한 향수만 주야장천 뿌리고 다니는 습성도 있긴 하지만 이건 써도 너무 썼다

그때의 나는 그냥 '코코넛' 자체였다

남이 내 향을 맡건 말건 내 코에 너무 좋았다.


더 어이없는 건 50ml를 다 쓰고 나서 재구매를 한 것이 아니라 또 밖으로 돌았다

사실 바로 사기엔 비쌌다

그렇게 '버진 아일랜드 워터' 없이 2년을 지내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엔 100ml로.


100ml의 가격은 날 불편하게 했지만 내 마음에 안정을 주었다

이 용량은 빨리 바닥을 보이지 않을뿐더러 한번 이 향을 겪었기에 남용하는 짓은 하지 않겠다는 나의 결의와 카드가 합의했다


그리고 500ml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행히 500ml는 내가 살 수가 없는 가격이었다 하지만 언젠간 살 거다 언젠간.

(사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슬픈 건지 기쁜 건지 모르겠다)


'버진 아일랜드 워터'의 노트는 이러하다


탑 노트: 멕시코산 라임, 베르가못, 열대 과일

미들 노트: 코코넛 밀크, 코코넛 워터, 재스민, 화이트 플라워

베이스 노트: 통카 빈, 화이트 머스크


처음 뿌리면 아무리 생각해도 괌의 해변에서 썬베드에 누워 피나콜라다를 마시고 있는 내가 생각난다

(난 엄마 배속에 있을 때 괌을 가보았기에 실제로  본 적은 없다)

달달함만 있는 것이 아닌 탑노트에 있는 라임과 열대과일의 향이 상큼함을 준다

마치 피나콜라다에 있는 파인애플을 씹어 먹는 것처럼 말이다

(상쾌함이 아니라 상큼함이다)

상큼함이 지나가면 코코넛의 달달함이 라임을 잡아둔다

이 모두 지나가면 잔잔한 부드러움이 나의 체향과 남게 된다.


이미 50ml를 순식간에 써버렸던 기억이 있기에 이젠 남발하는 대신 팔꿈치 안쪽, 귀 뒤 (혹은 목) 그리고 양어깨에 뿌린다

'버진 아일랜드 워터'의 힘은 코코넛향과 라임향이 날아가고 난 다음에 있기에 옷에 뿌리는 것은 최대한 피하고 몸에 뿌리고 있다.


본인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대부분 본인들은 모른다 그래서 내가 아는 잔향은 내가 향수를 뿌렸던 곳에 코를 박고 킁킁거려야 알 수 있지만, 남들이 맡는 내 잔향은 사실 어떤지 모르겠다

내 코에 맞는 내 취향에 맞는 향이라 내가 좋아하는 건지 진짜 나에게서 나는 향이 좋은 건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 향수를 뿌리면 어디 나가서 꽤나 좋은 답변을 받곤 한다.


항상 중성적인 향을 고수했는데, 이 향은 노트만 보면 오히려 '여성'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여성분들이 많이 구매하는 듯하다

하지만 오히려 남성들이 뿌렸을 때 반향이 있을 것 같다.


향수는 특히나 본인의 취향의 결과물일뿐더러 향수를 아예 뿌리지 않는 사람도 많다

더군다나 가격대가 높은 향이 뭐가 필요하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건 맞다 굳이 비싼 향수 필요 없고, 향수 자체가 필요 없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 살아가는데 문제는 없다

(그 대신 악취는 조금 문제가 될 수 있다)

단지 나에게 주는 시간의 기억이 좋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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