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오늘은 내 73회 생일이다.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길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주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을 기도드린다.
생일이어서 그런지 오늘은 어머니가 참으로 그립다. 어질고 부지런하셨던 우리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 몇 년, 어머니는 병환으로 고생하셨다. 그때 어머니는 "네가 있어 정말 좋다"라는 말을 나에게 하시곤 했다. 어머니 생전에 썼던 수필 한 편을 올린다.
중국 서안에 갔을 때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누었던, 온천으로 유명한 화청궁(華淸宮)을 구경했다.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장한가(長恨歌)’를 지어 두 사람의 뜨거운 사랑을 노래했는데, 목욕탕 안 벽면에 시 내용을 그린 그림이 있었다. 궁궐에 아름다운 미녀가 삼천 명이나 있었지만, 현종의 마음에는 양귀비뿐이었다. 양귀비는 임금의 사랑을 독차지했을 뿐 아니라, 아첨하는 사람들이 바친 뇌물로 많은 부를 쌓았고, 양 씨 집안의 형제들도 높은 벼슬을 얻게 되었다. 그때 세상 사람들은 ‘아이를 낳으려거든 딸을 낳아라.’ 했다.
비슷한 시기에 시인 두보(杜甫)도 ‘병거행(兵車行)’이라는 시에서 딸이 더 좋다고 노래했다. 수레는 삐걱삐걱, 말은 씩씩대며 출정하는 장병마다 활과 화살을 허리에 찼는데 부모 처자 총총걸음으로 뒤쫓으며 전송하고 그 통곡소리가 하늘 구름을 뚫어 오른다고 했다. 시는 이어진다. ‘어디서 세금 낼 돈 만들어내리. 참으로 아들 낳으면 나쁘고 도리어 딸이 좋음을 알았다.’고.
이 시들이 새삼스레 생각난 것은 새해를 맞아 ‘아들 만세’ 하던 우리 사회가 ‘딸이 더 좋아’로 바뀌었다고 신문과 방송에서 크게 뉴스거리로 삼는 것을 보고서다. 어느 국가연구소의 조사 결과에서 우리 사회는 딸을 더 원한다고 나왔다.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젊은 세대로 갈수록 더 딸을 원한다는 것이다. 임신 중에 성별 검사를 하여 딸이면 중절을 해 버려 초등학생 아들에게 여자 짝이 없다고 걱정하고, 중절 수술을 막기 위해 출산 전 성별 검사를 법으로 금지하던 나라에서 생긴 일이니 조선조 이래 최대 사변급 사건이라는 표현도 지나친 과장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가문의 대 잇기, 조상에 대한 제사와 부모에 대한 아들의 봉양 등 유교적 가치가 무너진 데에 있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아들 낳으면 기차 타고 딸을 낳으면 비행기 탄다는 유머가 오래전에 유행했는데 요즈음 들은 유머 중에 아들은 날(명절날, 제삿날, 생일날)에만 보고 딸은 때마다 본다는 말을 들었다. 실생활 속에서 ‘영화 같이 봐요.’, ‘백화점 같이 가요.’ 하는 것은 딸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아들 많은 집에서 외딸로 태어났다. 무척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인 전통이 강한 집안이었지만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 그랬는지 차별을 모르고 자랐다. 아버지의 딸 사랑은 유난해서 아들과 똑같이, 도리어 더 많은 관심과 혜택을 받고 자랐다. 대부분의 딸들이 아들에 비해 차별을 받던 시대에 살면서도 나는 딸이라서, 여자라서 좋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러나 결혼 후 이 땅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 참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아들을 선호하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철저하게 남성 중심적인 사회였다. 제일 뼈저리게 느낀 것은 아버지 장례 때였다. 문상객 대부분이 아버지와 아들들 손님이었다. 똑같은 교육을 받았지만 전업주부인 딸은 연락할 곳이 별로 없고 사위는 직장에 알리지도 않았다. 장인 장모상은 직장에서 챙기지 않았고, 구태여 알려 문상하게 하는 것은 남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했다. 줄을 잇는 아들들 앞으로 온 문상객들을 보며 ‘딸이 뭔가?’하고 생각했던 것도 벌써 이십 년 전 옛이야기가 되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이고 관습이 된 것이 불과 십 년, 이십 년 전에는 도저히 넘지 못할 벽같이 보였던 것이 참 많았다.
태어나서 당연히 아버지 성이 나의 성이 되는 나라에서 어머니 성까지 쓰는 ‘김박ㅇㅇ’라는 이름들을 보며, 수천 년을 이어오던 제도와 관습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들이 참 고맙다. 육아는 온전히 엄마 몫으로 보던 사회가 아빠도, 국가도 육아 책임이 있다고 바뀌게 한 것은 그런 앞선 사람들이 있어서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딸들이 이 사회에서 한몫을 할 수 있기에 딸이 더 좋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아들이 없고 딸만 있는 나를 아들만 있는 친구들이 ‘너는 딸이 많아 좋겠다.’고 부러워하기 시작한다. 아들 없는 나를 은근히 가엾게 여기던 친구들까지. 손자를 낳지 못하고 손녀만 낳아도 싫은 말 한마디 안 하고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며 기뻐하던 시어머니가, 아랫동서가 아들을 낳았을 때 그 아기 사진만 성경책에 끼우고 다니시는 것을 보며 동서가 부러웠던 적이 있다. 그러나 아들들만 낳고 딸을 낳지 못한 동서는 어버이날이나 생일에 아이들에게 예쁜 카드와 선물을 받는 나를 부러워하며 무심한 자기 아들이 ‘결혼하면 나아질까요?’하고 내게 묻는다.
딸이 더 좋다는 세상이 되었다고 뉴스거리로 삼는 것엔 그만큼 아들이 더 좋았다는 사회적 배경이 깔려 있다. 아들이 없어도, 딸이 없어도 섭섭한 것은 사실이고 다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사회 풍조가 아이를 하나 혹은 둘만 낳게 되면서 이제는 노후를 기대할 수도 없고 키우는 아기자기한 재미도 덜한 아들보다 딸도 좋다는 의미라고 본다. 날에만 보는 아들이라고 하지만 안부 전화도 자주 하고 주말마다 부모님 찾아뵙고, 자신의 60회 생일날 조촐한 가족 모임에서 늙고 힘없는 어머니께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하고 감사 편지와 봉투를 드리는 아들도 있다. 다만 옛날에는 당연한 일이던 것이 요즈음은 특별한 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요즈음 나는 친정어머니께 ‘네가 있어 정말 좋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늙고 병들어 약해진 어머니가 무심한 아들들만 있었더라면 얼마나 더 외로웠을까 하는 어머니의 속마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양귀비 같은 딸을 낳아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도 아니고, 전쟁터로 끌려가는 아들 때문에 애태워서도 아니고, 여자라서 피해 보는 일이 없어져 ‘딸도 똑같이 좋아’ 하는 세상이 오래오래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2010) 제 1수필집 《은하수를 보러 와요》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