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쏘다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나는 길에서 멈추었다. 코끼리를 목격한 순간, 쏘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분명히 들었다. 부려먹는 코끼리를 죽인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였다. 그것은 값비싼 거대한 기계를 파괴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피할 수만 있다면 절대로 죽이지 말아야 한다. 게다가 멀리서 저렇게 평온하게 풀을 뜯어먹고 있으니, 황소보다도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발정기’의 난폭성도 이미 누그러지고 있으니 사육사가 돌아와서 붙들어 매어놓을 때까지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해도 별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나는 코끼리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놈을 지켜보고 있다가 다시 난폭해질 기미가 없는지를 확인한 후 집으로 갈 작정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내 뒤를 따라오던 군중을 힐끗 쳐다보았다. 적어도 2천 명은 족히 되어 보였으며, 계속 불어났다. 이 조그만 구경거리에 들떠있는 행복한 얼굴들, 그들은 코끼리가 곧 사살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마술을 시작하려는 마술사를 보듯 나를 지켜보았다. 그들은 나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마술과도 같은 총을 들고 있으니 잠시 동안 지켜볼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었다. 갑자기 나는 결국 코끼리를 쏘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를 걸고 있으니 그 일을 수행해야만 했다. (pp37-38)
《코끼리를 쏘다》는 조지 오웰의 산문선이다. 총 5부로 되어 있는데 1부는 식민지에서의 날들, 2부는 문학과 정치, 3 부는 파리와 런던의 뒷골목, 4부는 일상에 스민 정치성, 5부는 유럽 문학에 대한 단상들로 구성되어 있다.
조지 오웰(1903-1950)은 이튼 스쿨을 나온 뒤 버마로 건너가 약 6년간 식민지의 경찰관 생활을 한 적이 있다. 1922년부터 버마 (지금은 미얀마)에서 인도제국의 경찰로 근무하다가 서구 제국주의의 허구성에 염증을 느껴 1927년에 경찰직을 사임하고 그다음 해부터 작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스탈린주의를 비판한 소설 《동물농장》과 미래의 전체주의 사회를 예견한 《1984》를 쓴 작가이다. 그는 서구 제국주의와 전체주의를 철저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하층계급 사람들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그들의 권익을 찾아주려 평생 노력한 작가였다. 그는 소설가인 동시에 빼어난 수필가였다. 그는 빈민가와 하층 노동자, 범죄자의 실제 상황을 잘 알기 위해 스스로 빈민촌에서 살아 보고, 하층 노동자와 함께 노동을 했으며, 일부러 경범죄를 저질러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다.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생각이 어떤지도 알고 싶어 했다. 그렇게 쓰인 수필은 궁핍한 생활 가운데서도 삶의 의지를 잃지 않는 이웃 사람들에 관한 생생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코끼리를 쏘다>는 오웰이 인도제국 경찰로서 겪은 실제 경험을 쓴 글이다. 이것은 소설과 수필의 중간 형태로 백인 지배자들의 권위 의식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를 뛰쳐나와 집도 부수고, 사람도 죽였지만, 지금은 조용해져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코끼리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수많은 원주민 군중이 주변에 모여들어 백인 나리가 코끼리에 대해 뭔가 극적인 행동을 취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원주민의 비웃음을 사지 않으려고 죽이고 싶지 않은 코끼리를 죽이게 되는 자신을 제국의 어리석은 꼭두각시로 비유한다. 제국주의가 식민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제도가 주인들마저도 끝없이 노예화시킨다는 사실이었다.
이 책 2부에 <나는 왜 쓰는가>라는 수필이 있다. 이 수필에서 먼저 작가들이 글을 쓰는 동기를 생계비를 벌어야 하는 요구를 제외하고 네 가지가 있다고 분석한다. 네 가지는 순전한 이기심과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과 정치적 목적이다. 순전한 이기심은 똑똑해 보이고, 남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죽은 후에도 기억되고, 어린 시절 자기를 놀렸던 사람들에게 보복하려는 욕망이라고 했다. 미학적 열정은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 혹은 말과 그것들의 적절한 배열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 하나의 소리가 또 다른 소리에 미치는 영향, 다시 말해서 괜찮은 산문의 견고함이나 좋은 이야기의 리듬을 아는 즐거움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했다. 세 번째는 역사적 충동인데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하는 욕망, 진실한 사실을 발견해서 후손들을 위해 그것들을 보존하려는 욕망이라고 했다. 네 번째는 정치적 목적인데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몰고 가고자 하는 욕망, 다시 말해 성취하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그런 종류의 사회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이라고 했다. 그 역시 이 네 가지 동기가 다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평화로운 시기에 살지 못했으므로 처음에는 처음 3가지 동기가 중요했지만 차츰 4번째 동기를 중요하게 생각한 듯하다.
“내가 과거 10년 동안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라고 이 글에서 쓰고 있다. 《동물농장》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의 전체로 융합시키기 위해 완벽히 인식하고 쓴 소설이다. 또한 오웰은 인간의 삶에 끼치는 전체주의의 위협을 첨예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가 사망하기 전 해인 1949년에 출판된 《1984》 가 그러한 작품에 속한다. 거대한 지배 체제하에서 저항을 기도하지만 결국 체제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파멸해 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그린 이 소설은 미래를 예견하였다. 21세기, 고도의 정보화 사회에서 오웰의 경고와 그의 통찰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뒤죽박죽,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어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