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섬 》 장 그르니에
짐승들의 세계는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짐승들이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 그들은 대자연과 다시 접촉하면서 자연 속에 푸근히 몸을 맡기는 보상으로 자신들을 살찌우는 정기를 얻는 것이다. 그들의 휴식은 우리들의 노동만큼이나 골똘한 것이다. 그들의 잠은 우리들의 첫사랑만큼이나 믿음 가득한 것이다. (중략) 이놈은 한참씩이나 가장 좋은 자리를 물색하여 마땅한 곳을 정하고 나면 몸을 웅크리는 즉시 반쯤 잠이 든다. 그러는가 하면 어느새 깊은 잠에 빠진다. 마치 잠드는 각 단계를 계산이라도 하는 눈치다. 이제 그는 행복한 꿈으로 접어든다. 나무 위에 기어 올라가 앉아서 새 한 마리를 노려보는 꿈이다. (pp37-38)
《섬》은 장 그르니에의 제자인 카뮈의 헌사로 더욱 유명한 책이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는 카뮈의 헌사. 그는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그 저녁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섬》에는 8편의 에세이가 들어 있다. 인용한 문장은 <고양이 물루>에 나오는 문장이다. <고양이 물루>는 자신이 사랑하던 고양이 물루를 추억하며 쓴 글이다. 이 에세이는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을 번역한 김화영 교수는 그르니에의 문장을 "겨울 숲 속의 나무들처럼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서서 이따금 씩만 바람소리를 떠나보내고 그러고는 다시 고요해지는 단정한 문장들"이라고 했다. 그르니에 에세이가 지닌 진정성은 관조와 관찰에서 드러난다. 자신이 바라보는 대상에 대해 그저 관심과 애정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그는 지켜보고 관찰하고 사유한다.
고양이 물루는 태어난 지 1개월 되었을 때 화자의 집에 왔다. 화자는 고양이 물루의 몸짓, 시선, 잠, 움직임을 세심하게 바라본다 물루는 인간사회의 의무, 도덕에서 벗어나 자기 리듬으로 사는 존재다. 화자는 그 자유로움에서 인간이 잃어버린 삶의 방식, 즉 현재성을 본다. 화자는 물루를 통해 존재, 자유, 침묵, 타자성을 사유한다.
물루는 행복하다. 고양이 물루는 현재를 사는 존재다. 매 순간 그는 제 행동 속에 흠뻑 몰두해있다. 먹고 싶은 것을 보면 그는 부억에서 나오는 음식 접시에서 눈을 뗄 줄을 모른다. 그의 눈에 가득 찬 욕망은 치열하다 못해 벌써 음식 위로 튀어 올라가 앉는 것만 같다. 그가 무릎 위에 몸을 웅크릴 때도 제가 가진 모든 애정을 남김없이 쏟아가며 웅크린다. 화지는 스스로를 돌이켜보며 그냥 온전치 못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어 슬프다. 인간은 영원히 이뤄지지 않는 미래를 꿈꾸느라 현재를 잊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황혼 녘, 대낮의 그 마지막 힘을 다해 가는 고통의 시각이면 화자는 불안감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고양이를 곁으로 부른다. 물루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있다. 화자는 그의 몸 위에 시선을 가만히 기대어본다. 그러면 그가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믿음직스러워진다. 물루를 바라보면서 축복의 순간들을 생각한다. 지난 어느 날 저녁 포플러나무들 밑을 지나다가, 또 어떤 정오에는 햇빛으로 눈부신 들판 앞에서, 달빛 비치는 폐허에서. 물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화자는 물루의 말을 듣는다.
“나는 저 꽃이에요. 저 하늘이에요. 또 저 의자예요. 나는 그 폐허였고 그 바람, 그 열기였어요. 가장한 모습의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나요? 당신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고양이라고 여기는 거예요. 대양 속의 소금 같이, 허공 속의 외침 같이, 사랑 속의 통일 같이, 나는 내 모든 겉모습 속에 흩어져 있답니다. "
이 문장은 고양이 물루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존재론적 사유의 핵심일 것 같다. 그르니에는 인간중심주의를 정면으로 해체한다. 인간이 자신을 중심이라 믿는 순간 타자는 자동으로 '대상', '아래의 것'이 된다. 대양 속의 소금은 바다 속에 녹아 있지만 사라진 것이 아니고, 허공 속의 외침은 허공에 흩어지지만 의미를 남기고, 사랑은 둘을 하나로 만든다. 즉 나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너무 넓어져서 보이지 않는다. 이 에세이의 4에는 물루의 죽음이 나온다. 그르니에는 물루의 죽음 이후에도 그 존재는 사라지지 않고 세계 전체로 확산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화자가 아테네로 여행을 간 며칠 동안 (물루는 화자의 어머니와 지내고 있었다.) 물루는 집을 비우더니 며칠 만에 돌아왔다. 그런데 다리는 절고, 눈에 피가 맺히고, 몸뚱이에는 총알이 박힌 꼴로 돌아왔다. 치료를 받았지만, 한쪽 시력을 잃고 고양이는 불구의 몸이 되었다. 이대로 두면 더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상황이다. 화자는 물루를 안락사시키기로 결심한다. 안락사하기 위해 병원 가는 길에 그에게 “도대체 인간은 무슨 특권을 가졌기에 짐승들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단 말인가?”하는 생각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생각뿐이다. 그는 병원에 갔고 물루는 강제로 자루 속에 담긴다. 수의사는 고양이를 자루 밑바닥 쪽으로 밀어 넣고는 끈으로 묶었다. 그 자루 위로 주사를 놓기 위해서. 고양이는 너무나 겁에 질려 있어 어둠 속에 갇힌 채 몸을 움직일 생각도 할 수 없다. 화자는 정원 한구석 커다란 월계수 아래에다가 구덩이를 파고 죽은 물루를 묻어 준다.
화자는 물루를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는 장면이 슬프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말이 무력해지는 장면이 선명하게 남는다. 사랑과 폭력. 사랑은 폭력과 함께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계속하게 하는 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