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글쓰기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by 권민정

《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괴테



마침내 성 베드로와 바울의 대축제가 다가왔습니다. 어제는 원형지붕의 조명과 성채(고대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건설한 엥겔스부르크성)에서의 불꽃놀이를 보았습니다. 조명은 동화의 나라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눈을 믿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최근에 저는 있는 그대로의 사물만을 보려고 합니다. 사물을 대할 때, 전처럼 있지도 않은 것을 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아주 굉장한 구경거리가 아니고서는 기쁨을 느낄 수 없습니다. 여행 중에 만난 장관 가운데 반 타스 정도는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것들도 지금의 장관에는 미치질 못합니다. 주랑과 교회, 특히 원형지붕의 아름다운 형상이 처음에는 불꽃 속에서 윤곽을 드러냈다가, 잠시 후에 이글거리는 한 덩어리가 되는 과정은 그지없이 장엄한 볼거리입니다. (p370)




괴테(1749-1832)는 이탈리아 기행기의 첫 문장에서 "새벽 3시에 칼스바트를 몰래 빠져나왔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테니까."라고 시작한다. 1786년 9월 3일 그는 이렇게 몰래 독일 땅을 떠나 1년 9개월 동안 이탈리아 전역을 두루 여행하면서 눈과 마음을 열고 새로운 세계를 마음껏 호흡하게 된다. 그의 나이 37세 때이다. 이탈리아는 괴테의 유년 시절부터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동경의 땅이었다. 괴테는 젊은 시절에 이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괴츠》의 작가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고, 바이마르 정부의 고위 관직을 맡아서 행정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사에 몰두하느라 그의 문학적 상상력은 점점 무뎌져 갔고 작가로서의 명성도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시인의 상상력을 옥죄고 있던 숨 막히는 일상으로부터 탈출한 괴테는 로마를 향해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다. 베로나, 비렌차, 파도바, 베네치아 등이 첫 번째 경유지들이었고, 1786년 10월 29일, 괴테는 그렇게도 동경하던 로마에 첫 발을 딛게 되었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로마였고, 로마를 향한 갈망이 하도 커서 로마에 도착한 이 날을 자신의 '제2의 탄생일'이자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 이라고까지 표현하였다.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 중에 커다란 관심을 쏟으며 몰두한 대상은 자연과 인간 사회, 그리고 예술이었다. 자연 대상에 대한 그의 관심은 기상학, 지질학, 동물학, 식물학, 광물학까지를 포함한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었다. 또 그는 민중의 삶에 주목하며 주민의 행동, 생활양식, 관습, 본질적인 특성들을 세심하게 관찰하였다. 로마에 체류하는 동안 괴테는 유명한 유적지를 빠짐없이 찾아다녔고, 건축물과 조각 작품, 그림을 감상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탈리아 여행 중에 괴테의 예리한 관찰의 눈은 주변의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미물일지라도 놓치지 않았고 또 기록하였다. 모든 대상에 대한 그의 세밀한 관찰력, 이것은 시인의 문학적 상상력과 연결되었다.


나폴리에서 괴테의 깨달음.

"북국인들은 날 때부터 어쩔 수 없이 생계 유지와 절약 생활을 강요당해 왔습니다. 북국 사람들은 비바람이나 눈보라를 피해 몇 개월동안이나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어야 합니다. 해마다 그런 계절이 어김없이 찾아들고, 사람들은 죽지 않으려면 살림꾼이 되어야 합니다. 이와는 달리 언제나 하늘의 축복을 받아온 남국인들에 대해 우리는 매우 엄정한 기준을 세워놓고 판단해 왔습니다. (중략) 부족한 상태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는 이들의 기본 성향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는 기후 때문입니다. 소위 나폴리의 거지라는 인간들은 노르웨이의 총독 지위쯤은 가볍게 경멸하고, 혹시 러시아의 황녀가 시베리아 통치권을 넘겨주는 영광을 베푼다 해도 일축해버릴 거라는 말입니다."


괴테는 푸르른 이탈리아의 하늘 아래서 문학적으로 풍성한 결실을 거두었다. 《에그몬트》 등을 탈고했으며 15년 간이나 묵혀 두었던 《파우스트》 원고를 다시 집어 들고 몇 장면을 써넣었다. 이탈리아 기행 이전의 괴테는 감정으로 세계를 해석했다. 그러나 기행 이후는 자연과 사물을 자기 내면의 감정 투사 대상으로 보던 시각에서 벗어났다. 자기의 감정, 도덕 판단을 잠시 유보하고 주관을 절제하며 사물에 내재한 형태와 질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인용한 글에서 '최근에 저는 있는 그대로의 사물만을 보려고 합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이탈리아 여행은 독일 문학의 발전 과정에서도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다. 이성과 규범을 거부하고 감정, 천재적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 18세기 독일문학운동이었던 질풍노도에서 고전주의로의 이동이다. 이탈리아에서 체험했던 고대 그리스 로마 예술과 르네상스 미술, 자연과 예술의 조화와 질서는 감정만으로는 불안전하고 형식과 절제가 인간을 완성한다는 깨달음에 도달한 것이다. 이탈리아 기행은 괴테로 하여금 고전적 균형과 성찰의 작가로 전환하게 하는 귀중한 체험이었다. 괴테가 조화와 균형의 고전미에 눈을 돌리게 된 이탈리아 여행 이후의 시기를 '독일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1787년 9월 12일 기록. 그는 "사랑하는 벗들이여, 저는 여전히 노력하며 사는 인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요즈음 저는 다시금 즐기는 것 이상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제 또 한 주가 지나가고, 저는 그대들에게 한 장의 편지를 띄웁니다."라고 쓰고 있다. 괴테의 이러한 모습은 《파우스트》에 나오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게 마련이다'라는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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