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멧돼지 목욕탕

by 권민정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 날, 북한산 자락에 살고 있는 친구가 사진 1장과 문자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오늘 새벽에 갇혔나 봐. 아침에 총성 소리도 들었어.” 명절에 밝은 내용이 아니라 미안하다면서 보낸 것은 철창에 갇힌 멧돼지 사진이었다.


친구는 나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20여 년 가까이 살다가, 몇 년 전 북한산이 눈앞에 보이는 곳에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친구네 집 바로 앞에는 산으로 갈 수 있는 오솔길이 나 있다. 동쪽으로 북한산 산등성이 보이고, 서쪽까지 이어져 작은 산이 자리하고, 그 가운데 남쪽 산언저리 좁은 비탈길이다. 아침, 낮, 저녁 빛이 다르듯이 산길을 오르는 이의 뒷모습도 다르다. 어둠이 걷히기를 기다렸다는 듯 미명에 혼자 길을 나서는 노인, 매일 아침 다정하게 손잡고 건강을 챙기는 중년부부, 호기심 가득한 아이와 함께 오르는 젊은 엄마와 아빠, 애완견과 산책을 즐기는 사람.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정오 즈음이 되면 사람은 뜸해지고 길 양 옆 나무들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쉬게 된다.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된 풍경, 사진작가인 친구는 그런 그림 같은 풍경을 보내주었다.


이사한 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아침, 밤에 신기한 것을 봤다며 어젯밤의 일을 이야기했다. 밤 2시경, 잠이 오지 않아 마루에 있는데 베란다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꾸르륵꾸르륵.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 밖을 내다보니 어둠 속 풀밭에 덩치가 큰 뭔가가 뒹굴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멧돼지였다. 그 주위로 또 다른 큰 멧돼지가 있고 새끼가 3마리나 더 있었다. 아기돼지들과 엄마 아빠돼지 한 가족인 것 같았다. 돼지들은 한참을 놀다가 사라졌다.


친구는 해가 뜨자 바로 그곳에 가보았다고 했다. 오솔길 입구 가까이 있는 그곳은 물이 촉촉하게 있고 부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곳이었다. 진흙 목욕을 했는지 땅은 여기저기 넓게 파여 있고 풀들도 많이 뽑혀있었다. 아파트가 생기기 전 계곡의 샛길이었는지 물길이 남아있어 땅이 항상 젖어있다. 그곳이 멧돼지들의 목욕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파트 단지가 생기기 전에는 깊은 숲 속이었을 것이다. 등산하는 사람들이 북한산을 가더라도 등산길로 주로 다니니까 숲 속에서 멧돼지와 마주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멧돼지들은 마음 놓고 그곳에서 목욕을 하고, 풀을 뜯어먹으며 놀다가 갔을 것이다.


멧돼지들은 주로 밤에 왔지만 때때로 저녁때나 새벽에도 나타나 주민들과 마주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그곳에 철 담장이 생기고 덫이 만들어지고 가로등을 세워 밤을 대낮처럼 훤하게 불을 밝혔다. 동네에는 허락받은 포수가 있어 총으로 멧돼지를 죽일 수 있다. 이곳에 와서 돼지가 어슬렁거리다가는 철창에 갇히고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벌써 많이 잡히고 죽었는데도 멧돼지들은 아직도 밤이면 찾아온다. 마치 실향민이 고향을 그리워하듯이 멧돼지들은 자기들의 목욕탕을 잊지 못하는 것일까?


친구는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혹시 또 멧돼지가 목욕을 하러 왔나 밖을 내다보게 된다 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되면 멧돼지의 야간 목욕탕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 주었다. 보름달이 훤히 떠 있는 밤중에 돼지가족이 진흙에서 뒹굴며 장난치는 모습은 친구가 이전에 산책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만큼 아름다웠다.


우리가 만일 산책하다가 멧돼지를 만난다면 정말 무서울 것이다. 무서울 뿐 아니라 그 돼지가 공격한다면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 사람에게 멧돼지는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야생동물이다. 없어져야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백두산 호랑이도 그랬을까? 옛날 백두산에 갔는데 호랑이를 만났다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여우는 어떤가. 무덤을 파고 사람의 간을 먹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여우도 없어져야 하는 존재였다. 거기다 그 가죽과 털을 팔면 많은 돈도 생겼으니 보이는 대로 총으로 쏘아 죽였다. 그런데 왜 지금 와서 멸종되어 버린 호랑이를, 곰을, 여우를 복원하려고 그렇게 애를 쓰고 있을까.


코로나19로 지금까지의 일상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병에 걸려 고생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전 세계가 전쟁 같은 위기 속에서 살았다. 직장을 잃고, 사업은 망하고,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이 모든 재앙의 원인이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훼손되고 생물종의 감소로 생태계 균형과 자정능력이 저하된 때문이라 한다. 우리가 야생동물들이 사는 서식지에 길을 내고 나무를 베어내어 생태계를 훼손하는 바람에 그 동물들의 몸에 붙어살던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에 침투한 것이 코로나 팬데믹의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사스의 경우에는 박쥐에서 사향고양이, 메르스는 낙타, 그리고 코로나19는 천산갑을 거쳐 인간에게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생태학자들은 계속 경고를 해왔고, 코로나사태를 맞은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더 이상 동식물의 서식지를 파괴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동료와 가족이 죽는데도 그 목욕탕을 잊지 못해 또 찾아와서 철창에 갇히고, 결국 총에 맞아 죽고 마는 멧돼지를 생각하면 답답하다. 농장에서 키우는 돼지에게 열병이나 옮기고, 농사꾼의 작물을 망가뜨리기나 하는 무익한 멧돼지이니 없어질 때까지 다 죽여도 좋은 것일까. 우리와 야생동물인 멧돼지가 가까워진 것이 결코 멧돼지 탓도 아닌데. 야생동물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은 정말 어려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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