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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련 May 16. 2024

클로디아 랭킨, 『시민』(1)

Claudia Rankine, 『Citizen』(1)

I.


전자기기 하나 켤 힘도 없이 혼자일 때, 당신은 쌓인 베개 가운데서 과거에 머물러 본다. 당신은 대체로 이불로 몸을 감싸고 있고 집은 비어 있다. 때로는 달이 없고 창 밖으로 보이는 낮은 잿빛 하늘이 닿을 듯해 보인다. 구름의 밀도에 따라 어두운 빛은 더 어두워지고 당신은 메타포로 재구성된 무언가 속으로 몸을 던진다.


통로는 대체로 연상을 통해 이어진다. 당신에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 당신은 열두 살이고 화이트플레인 로드에 있는 세인트 필립과 존 학교를 다니며 당신 뒷자리에 앉은 소녀가 당신이 쓴 것을 따라 쓸 수 있도록 시험 시간에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여달라고 한다. 에블린 수녀님은 만점과 낙제점을 받은 시험지를 옷장 문에 붙여두곤 한다. 소녀는 가톨릭이고 갈색 머리칼이 허리까지 내려온다. 이름이 뭐더라: 메리? 캐서린?


그녀와 당신은 그녀가 부탁을 할 때와 나중에 그녀가 당신에게서 좋은 냄새가 나며 백인과 거의 비슷한 얼굴을 갖고 있다고 얘기할 때 빼고는 대화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녀는 자기가 당신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거의 백인 같은 사람의 시험지를 베낀 것이 그녀의 기분을 낫게 할 것이라고 당신은 짐작해본다. 


당신이 뒤돌아서 메리 캐서린의 시험지를 베낀 적은 없기 때문에 에블린 수녀님은 둘의 계략을 끝내 알아채지 못한다. 에블린 수녀님은 둘이 비슷하게 생각한다고 생각하거나 부정행위보다는 창피 주기에 관심이 많거나 당신이 거기 앉아있는 것을 본 적이 없나 보다. 


어떤 순간은 아드레날린이 심장을 향하게 하고 혀를 마르게 하고 폐를 막히게 한다. 천둥처럼 소리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하고, 아니, 번개처럼 당신의 후두를 때린다. 콜록. 그 일이 있고 나서 당신은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당신 스스로에게 이 말을 한 적이 있지 않은가? 당신의 친한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녀는 당신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당신을 그녀의 흑인 가정부의 이름으로 불렀다. 당신은 친구가 아는 흑인이 둘 뿐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결국 그녀는 그러기를 멈췄지만, 한 번도 그 실수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다. 당신도 그녀에게 그 얘기를 한 적이 없고(왜지?), 그럼에도 그것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이게 가정 비극이라면, 사실 그럴 만 하기도 한데, 이게 당신의 치명적인 결함일 것이다—당신의 기억, 감정의 그릇. 당신이 속상한 이유는 “흑인은 전부 똑같이 생겼다”는 순간이 반복됐기 때문인가, 누군가와 이렇게 가까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다른 사람과 당신을 헷갈렸기 때문인가?



일렁이는 감정 때문에 몸은 중요한 것이 된다. 맞지 않는 말이 상한 달걀처럼 당신의 입에 들어오고 블라우스 아래로 토가 쏟아지면, 그 축축함이 갈비뼈를 향해 위장을 끌어올린다. 돌아보면 당신만이 남아 있다. 맡는 냄새와 느끼는 감촉에 대한 역겨움은 당신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지 않다, 아직은, 에너지를 모으는 것도 하나의 과제이기 때문에, 그것에도 논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최근에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맞아, 근데”를 함축하는 문장에 비해 “맞아, 그리고”를 함축하는 문장이 갖는 이점에 대하여. 당신과 친구는 “맞아, 그리고”가  갈림길이 없는, 대안이 없는 삶의 증거라고 결론지었다: 당신은 몸을 일으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블라우스는 씻겨 있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고, 블라우스는 스웨터 아래에 있고, 피부에 느껴지며, 당신에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



I.


When you are alone and too tired even to turn on any of your devices, you let yourself linger in a past  stacked among your pillows. Usually you are nestled under blankets and the house is empty.  Sometimes the moon is missing and beyond the windows the low, gray ceiling seems approachable.  Its dark light dims in degrees depending on the density of clouds and you fall back into that which gets  reconstructed as metaphor. 


The route is often associative. You smell good. You are twelve attending Sts. Philip and James  School on White Plains Road and the girl sitting in the seat behind asks you to lean to the right during  exams so she can copy what you have written. Sister Evelyn is in the habit of taping the 100s and the  failing grades to the coat closet doors. The girl is Catholic with waist-length brown hair. You can’t  remember her name: Mary? Catherine?  


You never really speak except for the time she makes her request and later when she tells you you  smell good and have features more like a white person. You assume she thinks she is thanking you for  letting her cheat and feels better cheating from an almost white person.



Sister Evelyn never figures out your arrangement perhaps because you never turn around to copy  Mary Catherine’s answers. Sister Evelyn must think these two girls think a lot alike or she cares less  about cheating and more about humiliation or she never actually saw you sitting there.



Certain moments send adrenaline to the heart, dry out the tongue, and clog the lungs. Like thunder they  drown you in sound, no, like lightning they strike you across the larynx. Cough. After it happened I  was at a loss for words. Haven’t you said this yourself? Haven’t you said this to a close friend who  early in your friendship, when distracted, would call you by the name of her black housekeeper? You  assumed you two were the only black people in her life. Eventually she stopped doing this, though she  never acknowledged her slippage. And you never called her on it (why not?) and yet, you don’t  forget. If this were a domestic tragedy, and it might well be, this would be your fatal flaw—your  memory, vessel of your feelings. Do you feel hurt because it’s the “all black people look the same”  moment, or because you are being confused with another after being so close to this other?



An unsettled feeling keeps the body front and center. The wrong words enter your day like a bad egg  in your mouth and puke runs down your blouse, a dampness drawing your stomach in toward your rib  cage. When you look around only you remain. Your own disgust at what you smell, what you feel,  doesn’t bring you to your feet, not right away, because gathering energy has become its own task,  needing its own argument. You are reminded of a conversation you had recently, comparing the merits  of sentences constructed implicitly with “yes, and” rather than “yes, but.” You and your friend  decided that “yes, and” attested to a life with no turn-off, no alternative routes: you pull yourself to  standing, soon enough the blouse is rinsed, it’s another week, the blouse is beneath your sweater,  against your skin, and you smell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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